오늘을 살라는 말은 단지 하루씩만 살아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그렇게 하루씩, 어떤 날은 5분씩을 견디며 살았다. 그 5분들이 쌓여 하루가 되고, 그렇게 버틴 하루들이 쌓여 수년이 됐다. 그런데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쌓은 시간의 탑 위에 올라서 뒤를 돌아보면, 남는 건 허무뿐이지 않을까. 나는 오래 사는 하루살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빨리 늙고 싶었는데, 나이 들어보니까 좋을 게 없어.”
소주에 새우깡을 안주 삼아 말씀하시던 외할머니의 쓸쓸한 얼굴이 가끔 떠오른다.
'할머니, 나도.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아.'
이제야 그 말의 무게를 조금은 알 것 같은데, 할머니께 대답을 돌려드릴 수는 없다.
편히 살고 싶어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벌기 위해 더 오래 일하고, 그렇게 얻은 돈으로 위로받는 삶. 나는 그런 삶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약속된 내일은 허상일 뿐, 내게 확실하게 주어지는 것은 오늘뿐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오늘을 잘 살아내려면 결국 나만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다른 사람이 정한 목표와 기준을 따라간다고 해서 삶이 충만해지지는 않는다.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다면 어떤 성취도 공허하다. 만족스러운 삶이란 본인이 원하는 것을 알고,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선택할 때 가능하다. 그래야 비교의 소모에서 벗어나고, 기회비용에 대한 미련도 버릴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운 건 ‘아님 말고’라는 태도였다. 한때는 ‘이거 아니면 안 돼’라는 집착이 나를 몰아붙여 뭔가를 이루게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소모시켰다. 그런데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훨씬 많았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노력은 필요하지만,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고집을 내려놓을 때 삶은 더 유연해진다. 중요한 건 한 번의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그 선택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나만의 기준이다.
또, 지나온 일은 거기 두고 올 줄도 알아야 한다. 어떤 선택이든 아쉬움은 남기 마련이다. 하나를 얻는다는 건 다른 하나를 포기한다는 뜻이고, 후회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수업을 며칠 빠졌다면, 지금 진도부터 따라가야 한다. 처음부터 다 복습하려 하면 지금 것도 놓치고 더 뒤처지게 된다. 삶도 마찬가지다. 아쉬움은 충분히 느끼되 거기에 머무르지 말 것. 지금 할 수 있는 걸음을 내딛는 것. 그게 오늘을 살아내는 방식이고, 남은 가능성을 지켜가는 방법이다. 지나간 선택에 흔들리지 않고, 그 선택이 데려다 놓은 지금의 삶을 불완전한 채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다면, 언젠가 또 다른 기회 앞에 설 수 있다.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지면, 삶은 한결 더 견딜 만해진다. 세상이 단조롭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붙잡으면 다시 빛나기 시작한다. 자산만이 아니라 감정도 분산투자가 필요하다.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나무는 사방으로 균형 있게 자란다. 일, 운동, 가족, 친구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배우고 싶은 것들로 일상을 채워야 한다. 마음을 열어 둘수록 삶은 단단해지고, 기댈 곳도 많아진다.
얼마 전, 내가 무심코 “인생은 원래 힘든 것”이라고 말했을 때 한 선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인생은 즐거운 거야. 잠깐 진지하고 우울할 수도 있는 거지.” 그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때 알았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어딘가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자리, 이 하루가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천국이라는 것을.
인생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고난과 행복, 그리고 그 사이의 평범한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는 뭔가를 증명하거나 이루는 것보다, 하루라도 더 기쁘게 보내는 것이,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 작은 추억을 쌓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믿게 되었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조용하지만 단단한 하루. 그 하루가 쌓여 나를 만들고, 그 기억들이 어려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게 내가 바라는 삶이다. 그리고, 지금 이 오늘이 그 시작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