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증의 시대에 살고 있다. 책을 한 권 읽어볼까 싶어 온라인 서점에서 리뷰를 찾아보면, 대다수가 구매 인증에 가깝다. 별 다섯 개짜리 평가에 "구매했어요! 기대됩니다!" 같은 짤막한 글이 이어진다. 그러나 정작 책을 읽고 남긴 진짜 감상은 드물다. 후기(後記)가 아니라 선기(先記)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읽기도 전에 남기는 리뷰라니. 기록이 소비의 연장이 되어버린 시대,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얼마 전, 지인이 말했다. "인스타가 나라를 망치고 있어." 처음엔 웃어넘겼지만,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생각을 나누기보다 경험 인증을 남기느라 바쁘다. 책뿐만이 아니다. SNS에 올라오는 여행 사진,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 유명 맛집의 한 접시. 순간을 즐기는 것보다 남기는 것이 먼저가 되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정작 그 순간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고등학교 때 숙제로 읽었던 돈 드릴로의《화이트 노이즈》가 떠올랐다. 당시에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서인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책이다. 정확한 줄거리는 희미하지만, 소비주의를 조롱하는 작품이라는 건 명확하게 남아 있다. 마트의 긴 진열대 사이를 카트를 끌고 서성이는 주인공의 모습. 소비는 단순한 경제적 행위가 아니라, 현대인의 정체성과 불안, 심지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삼켜버리는 거대한 문화적 흐름이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우리는 교묘하게 스며든 마케팅에 둘러싸여, 유행이 밀어붙이는 대로 소비한다. 광고 문구와 브랜드명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르고, 마트의 환한 조명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신성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모두가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 할 것 같은 착각. 그 흐름에 휩쓸리다 보면, 내 취향과 생각은 점점 흐려진다. 새로운 것을 사고, 경험하고, 기록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금세 또 다른 것을 찾아 헤맨다. 만족감은 짧고, 허전함은 금방 따라온다.
소비가 의미를 만들어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남는 것은 순간적인 만족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나만의 취향을 발견하는 일이다. 취향은 유행을 좇거나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취향은 단단해지고 흔들리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소유나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스스로의 기준을 찾아가는 경험이 필요하다.
취향을 탐색하는 데는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 하지만 반드시 무겁고 부담스러운 여정일 필요는 없다. "이번엔 실패 없이 꼭 완벽한 맛집을 찾아내겠어." 하는 집착보다는, "여기는 이런 느낌이구나. 저기는 저렇구나. 나는 이쪽이 더 좋네." 이렇게 가볍게 경험하며 탐색하는 것이 오히려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식이다. 중요한 건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그 선택이 쌓여 만들어지는 나만의 감각이다.
오랜만에 돈 드릴로의《화이트 노이즈》를 떠올렸다. 책을 다시 찾아보던 중, 2022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 오늘 하루를 마치면 그 영화를 볼 생각이다. 그때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 무심코 흘려보낸 장면들을 다시 들여다볼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어떤 흐름 속에 있는지, 무엇을 소비하고 무엇을 남기고 있는지 생각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