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e what fun is for you.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설명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번엔 "재미"에 대해 재정의해 볼까 한다.
“엄마, 심심해.”
어렸을 때 매일 밤 엄마가 나를 재우려 눕히면 습관처럼 내뱉던 말이었다. 엄마는 내가 하는 말 중 이 말이 가장 무서웠다고 했다. "소금 쳐라, 간장 쳐라" 같은 시시한 농담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않는 나이가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그 말을 달고 살았다.
유학 시절, 숨 가쁘게 달리다 찾아온 방학이면 도시는 유령처럼 고요해졌다. 모두가 떠나고 홀로 남겨진 그 낯선 여유를 나는 어찌할 줄 몰랐다. 감당할 수 없는 빈틈을 견디다 못해 애꿎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심통을 부리곤 했다.
"아, 심심해. 뭐 재밌는 거 없을까?"
지금 생각하면 참 대책 없는 투정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내 삶의 여백을 스스로 채울 줄 모르는 아이였다.
나에게 재미란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재미란 뭘까. 나는 무엇을 재미있다고 느낄까.
누군가는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즉흥성에서 생의 활력을 얻기도 하지만, 나에게 그런 영역은 영원히 알지 못할 미지의 세계에 가깝다. 나는 통제 범위를 벗어난 상황을 마주할 때 즐거움보다는 긴장과 피로를 먼저 느낀다. 그래서 나에게 재미란, 무질서 속으로 몸을 던지는 일이 아니라 견고하게 설계된 질서와 안전망 안에서 예상치 못한 발견을 마주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나의 재미는 언제나 확실한 기반 위에서 시작된다.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나 리스크가 제거된 상태. 재미를 느끼기 위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전제 조건이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와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가 제거되어 있을 때, 비로소 나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얻는다. 여행 계획표에 빈틈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몇 시에 기차를 타고, 어느 골목의 식당에서 무엇을 먹을지 미리 정해 두는 일은 나를 구속하는 규칙이 아니라, 내가 안심하고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지도다. 발밑의 땅이 단단하다는 확신이 있을 때, 나는 숨을 고르고 풍경을 바라본다.
이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나는 무작위로 휩쓸리기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의도적으로 탐색한다. 촘촘히 짜인 큰 틀 안에서 깊이 파고들거나 성실하게 나아가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나에게 해방감을 준다. 궤도 위를 충실히 걷고 있다는 감각이 있을 때, 나는 비로소 세상을 탐험하고 있다는 자유를 느낀다.
역설적이게도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세렌디피티 (serendipity)’는 바로 이 질서의 끝에서 피어난다. 모든 것이 소란스럽고 불확실한 상태에서 마주하는 의외성은 수습해야 할 과제에 불과하지만, 정돈된 길 위에서 만나는 변수는 나에게 뜻밖의 선물이 된다. 철저히 준비한 여행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름 없는 작은 소품샵이나, 코끝을 스치는 고소한 빵 냄새에 이끌려 들어간 베이커리가 알고 보니 숨겨진 맛집이었을 때 느끼는 희열 같은 것들. 내 삶의 궤도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나는 그 변수 앞에서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체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나를 대범하게 만든다.
결국 나에게 재미란, 안전하게 설계된 울타리 안에서 만나는 새로운 우주다. 탄탄한 질서라는 스케치를 정성껏 그려두고, 그 위에 예기치 못한 우연이 더해져 근사한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재미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