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선샤인을 보다가 필기체로 흘겨 쓴 편지가 나오는 장면에 매료되었다. 언젠가 스타 강사 이지영 선생님의 만년필 소개 유튜브 영상을 보았을 때의 필기체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 필기체를 배웠지만 그 이후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아 지금은 그때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그 멋진 필기체를 보고 나니 다시 연습하고 싶어졌다. 캘리그래피가 스티브 잡스의 성공에 일조한 걸 보면 그 섬세한 곡선과 유려한 흐름, 만년필로 쓰인 필체는 단순한 문장을 넘어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배우다 만 취미생활이 도무지 셀 수가 없다. 피겨스케이팅, 스키, 수영, 테니스, 피아노, 아코디언, 바이올린, 서예, 미술, 만화, 프랑스 자수, 필라테스, 요가, 락클라이밍 등 수많은 것을 시도했지만, 어느 하나 만족스러운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무엇이든 한술에 배부르고 싶어 했다. 대충 노력하고 결과가 성에 차지 않으면 실망하곤 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처음부터 잘하는 것을 좋아했다. 처음부터 감이 오는 것들이 있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이제는 안다. 한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는 것을.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은 시간이 걸리며, 경지에 다다르는 것은 한순간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중요한 것은 목표에 도달하는 것보다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불어를 공부하고 있고, 필기체 연습도 하려 한다. 이참에 피아노도 다시 배워볼까. 지금부터 무언가를 시작하면, 50쯤에는 능숙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를 기대해 보는 즐거움이 있다.
삶은 단순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경주가 아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느끼는 작은 성취와 기쁨이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한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과정 속에서 느끼는 기쁨과 성장,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할 나 자신을 상상하면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