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책이 조금이라도 상하지 않게 조심히 다루며 읽는 버릇이 있었다. 눈에 든 구절을 옮겨 적는 습관조차 없어 늘 북마크를 꽂아 두기만 하고 덮어 두어야 했다. 어딜 좋아했는지 기억도 못한 채. 나 이만큼 읽었어요, 하고 그저 물건짝 취급하던.
배보다 배꼽이라고, 책보다 책갈피가 좋았다. 너무 예쁜 필름 갈피를 장당 3천 원씩이나 주고 사 정말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만 꽂아 두고. 아무 거나 넣어 둘 순 없었다.
지금은 최대한 책에 흔적을 남기려는 버릇이 생겼다. 볼펜으로 밑줄을 긋고, 특히 기억하고 싶은 문장엔 형광펜을 칠하고. 가끔은 끝부분을 접어 두기도 한다. 꼬질꼬질한 책이 좋아졌다.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갈피로 쓰기 시작했다. 쓰다 만 쪽지, 언제 산 건지도 모를 꼬깃꼬깃한 영수증, 가끔은 실쪼가리도. 그저 문장만 눈에 들어오면 될 일이다.
그러니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책으로 보아야겠다. 책갈피는 나의 눈물, 웃음, 분노. 사이사이 끼워 둔 마음을 훑다 보면 좋아하던 장면이 떠오르겠지. 미운 건 미운 대로, 좋은 건 좋은 대로 사랑스러울 테니까.
너는 내 손길로 꼬깃꼬깃해진 책이 되어라. 그리고 우리로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보자. 나 또한 기꺼이 너의 문장이 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