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마태 13,16)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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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마태 13,10-16)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이 씨 부리는 사람의 비유에 이어 오늘 말씀이 이어지고 있다. 끝까지 희망을 저버리지 않으시는 주님께서 왜 깨닫지 못하는 이들, 즉 가진 것이 없는 자의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 예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사실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었다(마태 6,19-21 참조). 그렇다면 저 가진 것이 없는 자는 하늘에 보물을 쌓지 않은 자들이 아닐까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사실 겨자씨나 누룩과 같아서 처음엔 작지만 나중엔 점점 커진다(마태 13,31-33). 하늘에 쌓는 보물은 처음엔 보잘것없어 보여도 점점 더 풍성해져서 그 나라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중요한 건 보물을 쌓는 우리들의 마음가짐과 행동이다. 만일 우리의 눈이 그 작은 겨자씨와 누룩의 가치를 알아보고 또 우리의 귀가 그 숨은 의미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가졌기 때문이다.
탈렌트의 비유에서 주인은 똑같이 한 탈렌트씩 종들에게 맡겼다가 나중에 돌아와서는 많이 벌어들인 종들을 칭찬하고 주인이 두려워한 탈렌트를 땅에 묻어두었던 종에게서는 그것을 빼앗아 가장 많이 번 이에게 준다(마태 25,14-30).
씨앗은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는 땅을 만나야 한다. 차라리 좋은 땅에서 많은 열매를 맺어 충분히 수확하지 못한 다른 이들에게 나눠지는 것이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좋은 땅은 행복해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기꺼이 열매를 나누고자 할 것이다.
사랑이 넘친다면 그것을 나누는 일이 크게 어색하고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한 마음을 잠시 느껴보았다. 내가 보고 듣는 것들 모두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저 감사하기. 열매의 수량과 행복의 크기가 아니라 그저 뿌려지는 씨앗을 품을 수 있음에 감사하기. 때론 단순함이 비유를 넘어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