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그냥 내버려 두세요.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13,30)

by 어엿봄

요즘 좀 많이 바쁘다. 그러다 보니 묵상글 쓸 시간을 못 내는데 그래도 오늘 몇 자 남겨보련다.


오늘 주님께서는 하늘나라를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린 사람에 비유하신다(마태 13,23-30).

원수가 밤에 몰래 뿌리고 간 가라지가 자라 점차 모습을 드러내자 종들은 걱정하며 모조리 뽑아버리고 싶어 하지만 주인은 그러다 밀까지 뽑을 수 있다며 수확 때까지 기다리라 한다.


난 흑백이 분명한 걸 선호했던 것 같다. 좋음과 나쁨 즉, 선과 악이 분명한 나의 세상을 살았다. 가라지들이 자라는 게 두려워 노심초사했고 어떻게 해서든 다 뽑아내려 하다 보니 밀밭을 쑤시고 다니기 일쑤였다.

가라지가 더 자라면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나는 간절히 누군가의 도움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아침에 묵상하며 문득 내 예민함을 두고 한 발자국 멀리 그러나 가까이 계셨던 부모님이 떠올랐다. 툭 건들면 스러져 버릴까 그저 멀리서 믿어주는 게 최선이셨단다.

나는 세상이 날 건들지 않았으면 했지만, 그래서 늘 제발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소리 질렀지만, 사실 누군가는 내 밭을 돌보아주길 바라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가라지를 골라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으니까.


난 괜찮다고 말하고 환히 웃는 모습 뒤에 감추었던 슬픔과 외로움이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세상으로 하여금 내게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는 것도 잘 안다. 나는 세상이 이해하고 쓰다듬기에 너무 예민했다.


어쩌면 원수가 뿌리고 갔다는 그 가라지가 완전한 악은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원수는 내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힘이 없어서 늘 어떤 수단을 찾는데 그게 가라지였던 것이다.

나의 밭엔 어쩌면 아주 좋은 밀과 그저 그런 그러니까 그냥 좋은 가라지가 있던 건지도 모른다. 가라지 덕에 어쩌면 밀이 더욱 민감하게 주위를 돌아보고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자 최선을 다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래서 선악이라는 이분화된 논리는 잊어버리련다. 그저 좋거나 아님 더 좋거나 그 차이일 거다. 세상 역시 좋거나 아님 그보다 더 좋은 우리들이 함께 사는 곳이라면 그냥 살 만한 거다.


그저 밭의 생태를 믿어주고 기다려보자. 그 인내와 믿음은 큰 사랑일 테니 그 사랑이 아니었더라면 나의 예민함은 나를 버텨주고 키워내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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