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루카 11,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루카 11,13)
청하면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기억하였다. 가장 좋은 것을 골라서 주시겠단다. 그 마음이 참 고맙고 따뜻해서 나 역시 그분 닮아 가장 좋은 것을 내어 주고 싶은 하루였다. 오늘은 주일이라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이지만 평소처럼 일어나서 오전 6시에 집을 나섰다. 그리고 약 오후 4시까지 정확히 20.13km를 걸었다.
가끔 손님들이 온다. 잠시 가이드의 역할을 할 순간이다. 제한된 시간 안에 중요한 장소를 여러 군데 방문하기 위해 나는 요래 저래 머리를 굴리며 계획을 짠다. 완벽하게 계획대로 진행이 되는 날은 당연히 없고, 여러 변수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그 책임감 때문에 늘 긴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을 좋아한다.
첫째,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둘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걸 좋아한다.
셋째, 사람들이 감동받은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오늘의 손님은 내가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대접해주고 싶은 한 친구였다. 그녀가 살아온 그 역사의 수고로움을 잘 알기에 나는 최선을 다해 잘해주고 싶었다. 가장 좋은 것을 골라서 듬뿍 채워주실 주님의 마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기도했다. 나 역시 그러한 마음으로 이 귀한 시간을 지낼 수 있기를.
우선 날씨가 좋았다. 요즘 이상하리만큼 많이 덥지 않은데, 태양은 여전히 뜨겁다 하더라도 그늘에서의 그 선선함을 실컷 즐길 수가 있었다. 또 버스를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무슨 콜을 넣은 것도 아닌데 제 때에 딱 맞게 와서 편하게 이동했다. 그리고 방문하려고 했던 순례지들 외 다른 작은 성당들까지 여유 있게 들러 기도할 수 있었다. 시간이 남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끝으로 아침으로 먹은 크로와상, 점심으로 먹은 한식 그리고 간식으로 먹은 젤라또 모두 맛있었다.
손님들을 모시고 나갈 때면 의례히 버스 시간표와 성당의 미사 시간표를 수시로 확인하고 이동 스케줄을 변경한다. 특히 주일에는 미사 시간대에 방문하게 되면 다 둘러볼 수가 없기 때문에 잘 따져 움직여야 한다. 또 간식 시간과 화장실 이용을 잘 챙겨야 한다. 쇼핑 시간도 당연히 중요하고 또 사진을 찍으며 편안히 볼 수 있게 개인 시간도 줘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밥이 맛있어야 한다. 한편 날씨가 꽤 더울 땐 이동하며 쉽게 지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그늘이 있는 곳을 따라 걸어야 하고, 길의 상태도 (로마 길은 대체로 울퉁불퉁... 무릎과 허리가 아프신 분들 주의 요함) 따져 봐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볼거리 많은 길보다는 관광객이 별로 없는 즉, 구글이 알려주지 않는 길을 선호하는데 그런 길로 손님들을 모시고 갔을 때 나름 반응들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경당들을 열어 보일 때엔 함께 그 감동을 나누게 되어 정말 뿌듯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우리가 방문하는 성지들의 역사만 전달하는 게 아니고, 이곳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 나누는 것 같다. 특별히 오늘 나눈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어 적어보련다.
첫째, 무솔리니가 로마 제국의 영광을 되찾고자 Via del Fori Imperiali 재건 확장 공사를 하면서 그곳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을 모두 외곽으로 내쫓았는데 거주지조차 제대로 마련해주지 않았다. 그의 과한 욕심에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어야 했다.
둘째, 유대인 게토 지역 외에도 가끔 로마 시내를 걷다 보면 길바닥에 금색의 작은 사각형 표식을 보게 되는데, 거기 보면 나치에게 끌려가 죽임 당한 유대인들의 신상이 적혀 있다. 이곳에 살던 아무개의 출생일, 체포일, 사망일과 장소. 언젠가 본 것 중엔 생후 1개월짜리 아기도 있었다. 그 짧은 생애를 기억해 주는 마음이 있다.
셋째,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돌아가시고 산타 마리아 마죠레 대성전에 묻히셨는데, 며칠 지난 어느 저녁 지역 공동체의 교황님 환영 행사가 있었다. 그분이 이 지역에 묻히셨음에 반가워하며 함께 모여 기도하며 그분을 기리는 그 마음이 참 아름다웠다.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로마를 오늘 마음에 품었다. 복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접을 마쳤다.
좋은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고 싶다. 내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면 가능할까? 아니, 내가 좀 더 좋은 사람들에게 마음이 열리면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으로는 개인 맞춤으로 주제가 있는 순례나 여행 가이드를 하면 참 재밌을 것 같단 생각을 한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구상을 해봐야겠다. 일단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그만 자련다. 내일은 손님은 잠시 다른 단체 일정에 맡기고 나는 도서관에 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