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마태 24,44).
태양은 여전히 세상을 환히 비춘다. 파랗고 맑은 하늘은 여전히 끝없이 펼쳐져 있어 내 지친 일상을 위로해 준다. 무거워진 몸과 마음을 기댈 곳이 필요할 때면 나는 언제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럴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한동안 내 마음을 대변해 줄 어떤 표현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는 차라리 나 자신을 잃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누구인지 가끔 헷갈릴 때 그저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가 마주한 오늘 하루라는 시간이 어떤 기다림이어야 하는지 나는 진실로 알지 못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 24, 42-44)
반복되는 일상의 나른함조차 내게 무게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깊은 한숨을 내쉴 때마다 그 무게의 한 톨이라도 덜어내고 싶은 것이다. 시간의 추에 걸려 겨우 겨우 끌려가는 느낌이 들 때, 다 잊어버리고 버려버리고 싶었던 나의 얼굴을 문득 바라보고 싶었다. 저 높고 파아란 하늘에 비친 나의 얼굴 말이다. 그러나 다시 눈을 감는다. 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저 느끼고 싶어서다. 지금 나의 숨과 나의 온도를 느끼고 싶다. 차갑게만 느껴지는 내 두 손이 담아내지 못할 살아 있는 숨과 영혼의 온기를 그저 조용히 느껴보고 싶다.
나의 기다림은,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의 복잡함을 뚫고 지나가는 내 현존 자체일 것이다. 기다림엔 대상이 있다. 나는 내 구원의 이름을 기다린다. 내가 부를 그 이름이 나의 이름 또한 불러주길 기다리며 웃으리라. 당신이 오지 않아 초조하고 불안한 기다림이 아니다. 당신이 언젠가는 올 것을 알기에 설레고 기쁜 기다림이다. 나른함의 무게에 짓눌리게 되는 내 일상에서 나는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을까? 나의 어떤 기다림을 당신은 기다리고 있을까?
며칠 전 문득 나에게도 보호자가 있단 생각에 안심이 들었다. 찬 바람에 시렸던 손과 발끝부터 번지던 온기가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항상 그 따뜻함을 느끼진 못할 것이다. 다시 나는 내 차가운 심장을 붙들고 눈물을 뚝뚝 흘릴 것이며, 어깨를 짓누른 일상의 무게에 쓰러질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보호자, 내 구원자의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를 날이 오리란 것을 믿는다. 때문에 나는 웃으며 기다린다. 나의 깨어있음은 그렇게 나의 미소로 표현될 것이니 나의 말과 글은 그저 한 순간의 미소이길 바란다.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간 그 따뜻함을 기억하며 나는 어둡고 차가운 밤들을 보낼 것이다. 그렇게 나의 기다림을 작은 미소로 수놓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