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간 월요일] 공감의 기도

"내가 가서 그를 고쳐주마." (마태 8,7)

by 어엿봄

백인대장은 겸손했고 참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수하들을 거느리면서 자신의 종들을 섬세하게 보살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소중한 종 하나를 살피고 함께 아파한 마음은 그 자체로 값진 기도가 되었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마태 8,5-11)

누군가의 극심한 괴로움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것이 사실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앓아누운 나의 형제 혹은 자매가 신음하며 생의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을 때, 그가 얼마나 아픈지 이해하기 위해서 허리를 숙여 그에게 내 귀를 갖다 대고 또 내 손을 내밀어야 한다.

사람이 되신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몸을 취하시고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진 우리 각자의 고통을 당신 것으로 삼으셨다. 사랑하여 닮고 닮아서 사랑하는 그 값진 교환의 여정을 통해 그분은 우리의 고독한 싸움터에서 든든한 아군이 되어 주셨다. 누군가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여 섬세하게 살피고 돌볼 줄 아는 사랑의 마음, 그 마음은 또 다른 소중한 마음을 알아보니 예수님은 오늘 백인대장의 청을 마음으로 들으신다. 예수님이 감탄하셨던 그의 기도, 즉, 그저 한 말씀만 하신다면 자신의 종이 나으리라는 믿음의 청은 사실 그 소중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괴로워한다. 자기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고독한 싸움터에 뛰어들었다. 하느님은 우리를 많이 사랑하신다는데, 사실 우리 인간은 생명의 주인이신 그 절대자의 영원한 사랑보다는 내가 오늘 처리한 업무에 대한 칭찬 한 마디에 목 말라 한다. 내가 맡은 소임들을 통해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지 않으면 나는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 어떤 조건도 없이 그 어떤 관계의 설정도 없이 나를 나 자신으로 알아주고 사랑해 줄 누군가가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깊은 불안감에 다시 고독한 싸움터에서 신경을 날카롭게 하며 연장을 든다. 그런데 사실 이 싸움의 대상은 우리 자신이 아닐까?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다. 나에게 쏟아지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들여 나는 그 사랑의 가치를 알고 돌볼 줄 안다. 백인대장은 자신이 맡은 직무의 소중함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먼저 돌보고 살필 줄 알았다. 타인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이전에 자신 스스로에 대한 책임과 애정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었으리라. 그래서 그는 작은 종의 괴로움을 마치 자기 자신이 겪는 것인 마냥 아파하고 힘들어했을 것이다. 그 공감의 바탕은 사랑으로 탄탄하게 다져져 있었을 것 같다. 태초에 나를 사랑했던 그리고 또 지금도 나를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 나를 위해 울어주고 또 남을 위해 울어주는 공감의 기도를 올려본다. 작게 속삭이는 나의 노래에 주님은 당신 그 아름다운 울림으로 화답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