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 (마태 7,24)
졸려서 바로 자고 싶지만 그래도 대림시기 동안 묵상글을 적기로 한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로 한다. 오늘 하루가 정말 길었다. 해야 할 일도 많았다. 내일도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정이 있는데 벌써 겁이 난다. 제발 이번 학기에는 자유 시간을 좀 더 갖고 싶었다. 그래서 새롭게 외국어 공부도 시작했고 또 읽고 싶은 글들도 저장해 두었건만 몸이 버텨내질 못하는가 보다. 수면 시간만큼은 줄이지 않기 위해 애쓰다 보니 취미생활을 즐길 만한 시간을 따로 빼기가 어렵다. 그나마 공동체 생활에 시간을 많이 내지 않으므로써 겨우 맞춰가고 있지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아직도 균형을 맞추며 돌봄의 실천을 배워가는 이때다. 이 과정에서 불안정함을 느껴가는 가운데 오늘 주님의 말씀은 다시 나를 "마음의 실천"을 어떻게 안정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로 이끌었다.
당신의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란다 (마태 7,24 참조). 내가 감당해야 할 피로와 고뇌를 받쳐주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다. 힘 있는 말씀, 생명을 낳는 말씀 그리고 주님 자체이신 태초의 말씀이 그 어떠한 모양새의 나도 든든하게 받쳐준다. 그런데 도무지 모르겠단 말이다. 분명히 내 안에서 살아 있는 살, 따스한 온기를 품은 생명으로 느껴지는 주님의 마음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나의 구체적 일상 안에서 실천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사랑의 실천이라는 표어가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여정 중에서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나의 집은 반석 위에 지어졌을까 아니면 모래 위에 지어졌을까? 나는 슬기로울까 아니면 어리석을까?
슬기로운 이의 집은 반석 위에 세워져 튼튼하다.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그런 단단하고 또 튼튼한 집이다. 그러니 그 차가운 비와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대는 강한 집은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릴 작은 이웃을 품어주고 보호해 주는 따뜻함으로 가득하다. 그 따뜻함은 자기 자신과 또 남들까지 끌어안으니 참으로 값진 돌봄이 그 집 안에 있다. 사실 그 집이 그 험한 시간과 공간을 견디도록 해주는 건 단단한 지반일 것이다. 나는 다시 나의 주님을 부른다. 많은 고민들이 가득하고 또 피로감이 깊어져 흔들거릴 때 나는 그분 위에 걸터앉는다. 꼼짝할 수 없어 그저 주저앉는 것이다. 아니 아예 대자로 누워버린다. 나의 맘과 몸을 다시 살리신 그분의 뜻에 온전히 맡기니 나의 불안정한 하루들이 축복된다. 복된 불균형과 복된 불안! 내가 마주하게 되는 자신의 모든 상태 그리고 내 이웃들의 모든 상태가 그 자체로 복스러워진다. 주님께서 받쳐주시니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비록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잠시 바람결에 몸을 맡긴 풀잎들의 춤사위니, 궂은 날씨도 두렵지가 않다. 축복된 그 작은 춤사위, 그것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은 그저 나의 땅 위에 쓰러져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