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군중이 가엾구나." (마태 15,32)
몸이 불편하고 또 말 못 할 아픔을 지닌 이들을 어루만지며 그들을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그들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그분의 손과 발을 통해 움직이며 살아난다. 마음이 살아있다. 연약한 아기를 떠올렸다. 우리 인간의 살을 취하신 그분께서, 우리의 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그분께서 사랑을 주신다. 그렇게 그분의 마음 끝에서 아픔이 나아 새 생명이 솟아난다.
그 가엾어하는 마음은 사실 튼튼하지 않다. 약해서 조금만 아파도 쉽게 눈물 흘리는 그 자체로 가엾은 마음이다. 누군가의 고통 앞에 냉정하게 자신의 길을 갈 강단이 없는 아주 약한 마음이다. 굶주리고 있는 저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현실적인 계산을 하지 못하는 그런 가난한 마음이다. 겨우 숨을 내 쉬는 갓난아기를 살포시 끌어안는 조심스럽고 따뜻한 마음이다. 아기의 심장에 귀 기울여 그 옅은 박동에 함께 진동할 줄 아는 섬세한 마음이다.
가끔 너무 완고해질 때가 있다. 내가 알고 체험하는 것이 전부라도 되듯이 나는 내 기준에 맞춰 누군가의 세상을 평가한다. 그가 어떤 고민을 했고 또 정성을 쏟았는지 알지 못한다. 뛰는 심장 부여잡고 얼마나 달려온 건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럼에도 내 기준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실망하고 짜증 내는 내 모습에 아찔한 오늘이었다. 아기의 고운 숨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 보드라운 살결을 쓰다듬어 주지 못한 나의 굳은 마음이 부끄럽기만 하다. 뭐가 서러운지 울고 있는 아기를 만나면 달래주고 싶다. 어차피 나의 논리가 통하지 않을 터 그저 그 아기를 꼭 껴안고 그 존재의 빛나는 약함에 경배하고 싶다. 그게 바로 진정한 성탄의 기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