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마태 9,30)
한 열흘 전부터 다초점 안경을 쓰기 시작했는데 적응이 꽤 어렵다. 자꾸 흘러내리는 안경테를 조정하러 갔다가 시력검사를 받고는 노안이 시작되어 다초점 렌즈로 바꿔야 한다는 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 가면 그때 안경을 새로 맞춰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불편함이 계속되고 또 안경사가 열심히 나를 설득하여 어쩔 수 없이 큰돈을 지출하고 말았다. 원래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곤 하지만 이게 진짜 내 눈의 수준에 맞게 잘 설정이 된 건지 확신이 안 선다. 울렁거리는 땅과 흐릿해지는 중간 시야에 답답함이 커졌다. 사실 내 시력은 크게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양쪽 눈 차이가 있어서 안경을 벗으면 불편함이 있었다. 자세하게 정확하게 보아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성격이라서 늘 선명한 도수를 선호해 왔다. 그러다 근래의 경험을 하면서, 시각장애인들의 삶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
닫힌 눈 그리고 깜깜한 세상에 그들을 갇혀있지 않다. 더 섬세한 다른 감각을 이용해 그들은 세상과 소통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 개인이 마주하는 어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의 눈은 무엇에 어두운 것일까. 주님께서는 당신 종들의 눈을 밝혀주러 오신다는데, 나의 세상은 언젠가 완전한 빛으로 가득해질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그 눈먼 이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예, 주님!" 하고 대답하였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마태 9,28-30)
주님의 말씀이 내 앞길을 비춘다. 나의 신앙의 눈이 활짝 열려 세상이 빛났으면 좋겠다. 속상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끔 뉴스를 검색해 보기가 두렵기까지 하다. 꼭 남의 일이 아니더라도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두고두고 후회가 되거나 억울한 일들이 있어왔다. 뭐가 어떻게 어그러진 것인지 그 세부적인 것이 보이지 않아 나는 답답했다. 더 선명한 렌즈로 정확하게 잘잘못을 따지고 싶을 뿐이었다. 땅이 울렁거리고 중간 시야가 흐릿해져 답답한 건, 이것이 사실은 어떠한 매개체에 의해 굴곡된 현상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치 못나 보이는 세상의 모습이 진짜인 것처럼 이해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왜곡되는 대상의 진실에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내면을 가득 채운 빛이 그 대상의 솔직한 얼굴을 비춰주기를 소망한다. 흐린 구름들을 제치고 땅을 비추는 태양빛이 참으로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