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2주간 목요일] 가까이 보아도 아름다운 나라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마태 11, 12)

by 어엿봄

집으로 돌아오며 내 발걸음이 스쳐 지나는 길바닥에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쓰레기들을 보았다. 저 길 끝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내 시야에 들어온다. 멀리서 바라봤던 이 길은 참 아름다웠다. 조금 더 멀리, 높은 언덕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더 예쁘겠지? 아주 아주 높은 상공에서 지구를 바라봤을 땐 정말 감탄이 나올 것이고. 나란 사람 역시 거리를 두고 본다면, 좀 더 친절하고 따뜻하지 않을까? 내가 아주 가까이 느끼는 나 자신은 무심하고 차갑고 또 버리고 싶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세심하게 느껴보는 나의 약점들이 나를 참 아프게 한다. 그러다 문득 몇 해 전 자연철학 시간에 본 동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사실 수업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이때 온몸으로 느낀 전율은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 인간은 우주의 크기도 가늠할 수 없지만, 자기 자신의 크기도 가늠할 수 없다. 멀리서 보아 아름다운 것이 있지만 사실 가까이 보아도 아름다운 것이 있다. 저 넓은 우주에 비해 우리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생각하면서도, 나는 우리 존재의 귀함을 떠올렸었다. 내가 알 수 없는 세상은 저 넓은 우주만이 아니라 나의 작은 세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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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Image_2025-12-11-21-44-22_005.jpeg Universe Size Comparison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8Are9dDbW24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 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이사 41,14)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마태 11,12)

그렇다. 나의 하늘 나라는 이미 내 안에 와 있는데 나는 그 하늘 나라를 못살게 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를 벌레와 구더기 취급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작음을 나는 사랑하지 않아서 내 눈에 잘 보이는 작은 먼지들을 두고 스스로를 탓하고 구박해 왔던 것 같다. 그렇게 나를 살리고 가꾸길 바랐던 내 주님의 나라는 나에게 완전히 오지 못했다. 멀리서 보든 가까이서 보든 그 나라는 아름답다. 쓸모가 없고 또 못난 조각들 사이에 잔꽃이 피어나는 그 길은 아주 자세히 보면 더 아름답다. 눈으로 관측할 수 없는 크기의 웅장함 혹은 미세함이 아름다움을 살리니, 나의 나라는 내가 끌어안을 수도 없을 존재의 어마어마함이 아주 작은 구석구석의 생명까지 보살피는 곳이다. 그러니 평안해져라. 아프고 또 슬퍼서 눈물 흘리는 날이 있더라도 깨끗하게 씻어내고 다시 맑은 눈으로 그 나라를 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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