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어린양을 따르려면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마태 17,13)

by 어엿봄

12월 13일 대림 제2주간 토요일, 오늘 우리는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의 희생과 봉헌을 기억하였다. Lucia는 "빛"을 뜻하는 이름이다. 그녀는 그리스도께 자신의 동정을 봉헌하고자 결심하였으므로 결혼을 원치 않았고, 약혼자의 고발로 옥에 갇혀 결국 순교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양을 따르기 위해서 각자가 걸어가야 할 길이 있는데, 그녀는 자신에게 펼쳐진 동정 순교의 길을 용감히 걸어 나갔던 것이다.

보라, 이제 순결한 예물, 정결한 희생 제물인 용감한 동정녀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양을 따른다.

요즘 나의 길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했다. 앞으로 나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이제 공부도 마쳐가는데 지금까지의 이 여정이 내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이런 질문들이 끊임없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워서 참 시끄럽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러다 어제, 갑자기 나의 길에서 그저 오늘의 몫만큼 걸어가면 충분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길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공부를 다 마치기 전에 갑자기 인생이 끝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냥 언제 어디서든 주님이 부르시면 기쁘게 응답할 수 있도록 늘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평범하리만큼 최선을 다하는 게 나의 길을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

단,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는 나의 길을 즐길 때 언제나 신나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지는 않을 것이란 점! 많은 예언자들이 진리를 따르는 길에서 세상의 오해와 박해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세상을 구원하러 직접 인간의 몸을 취하고 오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아 결국 십자가에서 생을 마감하셔야 했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니란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삶은 힘든 거다. 힘들기 때문에 보람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의 그늘진 얼굴에 빛이 비치기를 소망한다. 내가 매일 마주해야 하는 지치고 아픈 얼굴들이 나에게 선물처럼 느껴진다. 참으로 감사하다. 사람들의 부유함이 아니라 가난함에 함께 어울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 마음이 괴롭고 아프다. 몸은 점점 지쳐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을 이 눈물로 진척한 땅에서 찾기로 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언제가 될지 모를 나의 마지막 순간에 그간의 마음 졸임과 깊은 고민들이 허무하게 다 사라져도 괜찮다. 그냥 괴로워하며 아파했던 만큼 사랑으로 달궈졌던 내 심장만큼은 천천히 식기를. 그 꺼져가는 온기와 함께 은은하게 주님 찬미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완전히 내가 사그라드는 그 순간 잔잔한 사랑의 여운 속에서 주님께서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시듯, 내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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