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3주일(기쁨 주일)] 질문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마태 11,6)

by 어엿봄

오늘은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음을 기뻐하며 희망과 설렘의 분홍빛으로 치장하는 대림의 셋째 주일, 기쁨 주일이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분의 탄생을 우리는 소리 높여 환호하며 글로리아를 부를 것이다.

기뻐하여라. 거듭 말하니,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여라. 주님이 가까이 오셨다.

분홍 장미의 향을 맡았다면 더 좋았을 오늘이었는데, 아쉽게도 기회는 내게 오지 않았다. 현재 지내는 공동체 주일 미사 시각이 조금 늦어 평상시엔 외부로 미사를 나가곤 하는데 오늘은 날이 춥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늦게 일어나서 공동체 전례에 참석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아침 식사를 하고 방정리를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서 방 정리라도 하면 기분이 상쾌해질까 하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만사가 귀찮아서 겨우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조금 쉬다가 워드 작업을 하다 보니 두통이 너무 심해서 결국 다시 쉬어야 했다. 나의 기쁨 주일은 이렇게 약간의 짜증과 귀찮음으로 범벅되어 훌쩍 지나가버린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감옥에 갇혀 있다. 얼마 후에 목숨을 잃을 터이니, 아무리 사막의 예언자로서 올곧게 살아왔다 한들 그 공포와 두려움을 뿌리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목소리로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해 왔다. 그의 삶 전체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어쩌면 그 인생의 죽음이라는 결정적인 순간을 앞두고는 속에서 의심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마태 11,3)

참 역설적이다. 기쁨을 노래하는 오늘 우리는 의심하는 세례자 요한을 만났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어떤 것도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니 의심과 두려움이 솟아난다. 그 의심과 두려움의 뒤에 기쁨이 따른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마태 11,4-6)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보이는 게 하나 없는데, 주님은 일하신단다. 주님이 누군가를 사랑하여 보살피신단다. 내 의심과 두려움으로 가리어진 눈에게 나의 귀는 말한다. 주님의 말씀이 여기에 있다. 힘 있는 그분의 말씀이 살아계신다. 그 말씀이 나를 위로하고 다독일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나의 의심과 두려움은 조금씩 잦아들어갈 것이다. 내가 만일 질문하지 않았다면 답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이 나의 귀를 통해 내 마음을 울리니 당장 내 눈으로 보지 않아도 괜찮다. 애초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이 요구된 게 아니었다. 눈이 가려 불안하고 답답해도 내 목소리가 남아 있는 한 나는 질문할 수 있으니 행복한 자다. 당신의 복음을 듣는 나의 귀가 있어 나의 의심을 몰아내리니, 그때 나는 더욱 행복할 것이다.


나의 질문이 당신을 향했으면 좋겠다. 내 몸이 짊어진 수고 그리고 또 마음으로 감당해야 하는 노력 같은 것들에 너무 많은 힘을 들일 때가 있다. 모든 질문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 그러나 먼저 나는 당신을 알았으면 한다. 당신이 없이 나는 존재할 수 없기에 나는 우리의 관계 안에서 당신을 느끼고 찾고 싶다. 나에게 당신은 누구인지, 나는 당신의 의미를 내 안에서 발견하고 싶다.


당신의 말씀이 나를 채우면, 그때 당신은 내가 품었던 나 자신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주실 것이다.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마태 11,10-11)

오늘 복음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의 당신은 누구시냐는 질문에 답을 주시고는 이어서 그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까지 주신다. 그가 한평생 걸어왔던 고독한 예언자의 길을 확증해 주신다.


때로 나의 불안은 나 자신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 다시 시선을 주님께로 향한다. 그분이 이토록 가까이 오시니, 기쁜 오늘이다. 당신께 내 마음을 드높이면 당신은 대답하실 것이다. 당신에 대한 의심뿐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한 의심까지도 잠잠하게 하실 말씀이 내 마음에 내려올 것이다. 그리고 흔들리는 나를 당신이 바로 잡아 주실 것이다. 나의 이름을 부르시는 그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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