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7일] 나의 족보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마태 1,16)

by 어엿봄

아무것도 하기가 싫을 때가 있다. 요즘 들어 정말 삶의 맛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현저히 떨어진 체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주말부터 아무리 쉬어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기운이 없어서 도통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동안 너무 바쁘게 지내왔는데 아마 이 몸으로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웠나 보다. 겨우 주어진 일정을 소화하며 최대한 많이 쉬려고 했다. 천천히 걷고 힘들다 싶으면 잠깐 멈춰 섰다. 평상시 목적지에 구글이 계산하는 시간보다 더 빨리 도착하는데 걷는 거리를 최소화하고 전철이나 버스로 이동했다. 덕분에 지금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마태오복음 1장의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듣는 건 언제나 진부하다. 누가 누구를 낳았다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하루를 다 마치고 따뜻한 물로 씻다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이 내 몸을 낳아준 부모님과 또 조부모님, 증조부님, 고조부님 등등... 내가 만나보지도 못했고 또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는 나의 조상님들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내 선조들의 역사가 어찌 됐든 내 핏속에 흐르고 있다.

가끔 나의 모질고 차가운 마음에 스스로 상처입을 때면 나는 엄마를 떠올리곤 했다. 우리 엄마는 이웃을 따뜻하게 보살피고 챙길 줄 아는 사람이기에, 내 유전자 어느 한 구석에 그 친절한 피가 흐른다고 생각하면 괜스레 위안이 되었다. 늘 그 유전자를 내 삶 속에서 일깨우고 싶었다. 엄마의 손길이 묻어난 내 존재니 나의 손길 역시 그 따스함을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뿐 아니다. 분명히 오랜 세대의 경험이 내 핏속에 흐른다. 그 긴 세월 동안 쌓인 삶의 힘이 내 안에 있다. 그 힘이 나를 살게 할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태초에 하느님 아버지가 계셨다. 그분으로부터 우리의 역사도 시작되었다. 나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살아 있는 말씀이신 그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인간의 모든 애환을 받아들이며 깊이 쌓인 세월의 노련한 지혜를 살아낼 것이다. 방법은 나도 모른다. 그냥 이렇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보면, 가진 힘 다 털어내는 노화의 끝에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치환할 수 없는 새로운 생명이 있지 않을까. 그러니 조금만 더 버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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