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 마음의 준비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by 어엿봄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마리아에게 한밤 중에 나타난 천사는 아들을 잉태하리란 소식을 전한다. 천사의 방문에 깜짝 놀란 마리아에게 천사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으니 두려워하지 말라며 그녀를 안심시킨다. 그러고는 곧장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리라는 엄청난 이야기를 전하는데, 천사와의 대화 끝에 마리아는 대답한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루카 1,26-38 참조)

천사가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떠나갈 수 있었던 것은, 끝내 마리아의 확답을 받아냈기 때문이었다. 천사는 그녀가 하느님 아버지께 어떤 존재인지를, 그리고 그 아버지께서 그녀를 어떻게 돌보고 계시는지를 알렸다. 주님께서 마리아와 함께 계시고 총애하시며 그분의 영이 그녀에게 내려 그의 사랑을 품을 것이었다. 마리아는 이 기쁜 소식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내어 드리며, 그분의 뜻에 동의한다. 단순한 동의를 넘어 그녀 역시 그분의 뜻을 원한다.

마리아는 천사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이제 그녀는 주님의 뜻을 이룰 준비가 되었다. 결국 자신의 정체성은 그녀에게 쏟아진 주님의 관심과 사랑에서 명확하게 밝혀졌다. 내가 누구인지 알 때 우리는 나 자신으로서 무언가를 행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사랑은 사랑을 키워낸다. 주님의 종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마리아의 응답이 참 힘 있게 느껴진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많이 헷갈렸다. 내가 맡은 역할에 충실하면 할수록 나는 왠지 나를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내가 누구에게 부여받은 역할인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또 그 사랑을 내 존재 전부를 통해 더 키우길 원하실 때엔, 그리하여 나를 총애하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구원을 낳는 것이다.


[23] 원리와 기초
사람이 창조된 것은 우리 주 하느님을 찬미하고 경배하고 섬기며 또 이로써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다른 사물들이 창조된 것은 사람을 위해서, 곧 사람이 창조된 목적을 추구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이 이 목적에 도움이 되면 그만큼 사용할 것이고, 이 목적에 방해가 되면 그만큼 버려야 한다. 또 그 자체로 금지되지 않고 우리의 자유 의지에 맡겨진 것에 있어서 우리는 모든 피조물들에 대해 초연해지도록(indiferente) 힘써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편에서는 질병보다 건강을, 가난보다 부를, 불명예보다 명예를, 단명보다 장수를 더 원하지 않을 수 있게 되고 그리고 다른 모든 일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오직 창조된 목적으로 우리를 더욱 이끄는 것을 원하고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영신수련, 정제천 옮김 (도서출판 이냐시오 영성연구소, 2010), 22쪽.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비록 어떤 마음으로 또 모양새로 내게 주어진 일을 감당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것이 우리 주 하느님을 찬미하고 경배하고 섬기며 또 이로써 내 영혼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다른 모든 것들에 초연해지며 오직 내가 창조된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나의 천사가 나의 마음을 차분히 준비시켜 주기를 다시 희망한다. 다른 그 무엇도 구하지 않으며, 오직 내 창조 목적으로 내 마음이 끌리기를 그래서 나는 좀 더 평안해지고 그렇게 얻은 평화를 내 앞의 당신에게 나눌 수 있기를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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