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열린 침묵

그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다. (루카 1,22)

by 어엿봄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천사의 기쁜 소식을 의심하였다. 그는 자신과 엘리사벳이 늙었는데도 아이를 가질 수 있겠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겠냐며 반문한다. 천사는 말한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 하게 될 것이다." (루카 1,18-20 참조)

가브리엘은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던지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당당히 밝히고는 즈카르야에게 말을 하지 못하는 벌을 내리고 떠나버렸다. 그런데 그건 과연 진짜 벌이었을까?


즈카르야는 어찌 됐든 말을 하지 못해서 손짓 발짓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해야 했다. 그건 어쩌면 말을 좀 줄이고 더 듣게 하려는 천사의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늙은 아내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지 못해 그동안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그의 간절한 바람이 얼마나 큰 기도가 되어 왔는지 그는 제대로 듣지 않아 왔을 것이다. 성전의 사제였던 그는 구원자를 애타게 기다리던 백성들의 마음을 잘 듣지 않아 왔을 것이다. 이제 비로소 그는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침묵은 새로운 소통의 길이 된다. 그의 침묵은 열려 있는 문이다. 그 열려 있는 문으로 선한 영이 들어가 그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그렇게 준비된 마음으로 주님의 길을 닦을 아기를 반기게 할 것이다.


침묵은 나를 말하지 않게 하고, 너를 듣게 한다.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를 투덜대지 않는 침묵은 모든 것을 감추어낸다. 그렇게 자신의 고뇌와 피로를 감추고 침묵은 너에게로 향하니, 너의 삶에로 열려 너를 듣는다. 나는 그 침묵을 사랑하겠다. 목놓아 울고 소리쳤던 시절이 떠올랐다. 나의 외침을 그 누구도 듣지 않을 것 같아 나는 입을 꼭 다물고 속으로 울었다. 그게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오늘의 나는 다시 침묵을 떠올린다. 내 속은 어찌 돼도 괜찮으니 나는 너에게로 열렸으면 좋겠다. 그 열린 문으로 들어와 나를 가득 채운 선한 영이 내게 평화와 안정을 주시기를 청해 본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터진 입으로 찬미와 환호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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