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루카 1,46)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가진 마리아는 깊은 감사와 기쁨의 가득 차 오랜 전통의 찬미가를 부른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루카 1,46-55)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영혼은 주님께 찬미의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그의 마음이 기뻐 뛰고 있다. 오늘의 그녀는 어제를 기억한다. 자신의 가난함 안에 자리 잡으신 성령의 은혜에 깊이 감사한다. 그분께서 어떻게 작은 이들을 보살피셨는지, 그녀는 신앙의 눈으로 역사를 읽으며 감탄해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그녀의 시선은 내일을 향한다. 그분의 자비가 어떻게 이 백성을 보살피실 것인지 그녀는 희망에 차 미래로 나아간다.
곧 태어나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려왔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고 새롭게 희망하는 대림 시기를 보내며 그분의 오심에 대한 설렘을 키워왔다. 그런데 희망에 찬 나의 설렘은 어쩌면 오늘의 고단함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키워온 설렘은 내 지난 시간에 대한 눈을 뜨이게 하지 않았다. 마리아가 깊은 영혼으로부터 울려오는 자신의 찬미가를 부를 때, 그녀는 지난 삶에 대한 감사함으로 오늘을 살며 또 내일을 새롭게 꿈꿔 기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나에겐, 그 감사함이 빠져 있었다. 나의 유소년기도, 청년기도 아닌 바로 어제에 대한 감사함이 부족했다. 요 며칠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 시절에 대한 좋은 기억을 되살리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 과거는 여기 로마에 오기 이전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로마에 온 지 5년 4개월 정도가 지났다. 아직도 나는 이곳의 외국인으로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 속에 현재를 살아가지만 이 현재가 있기까지 분명 여기서 보낸 과거의 시간도 있었다. 오늘을 낳은 지난 5년 4개월은 나에게 참 소중하고 값진 시간이었다. 익숙해졌으나 아직도 낯설 때가 있다. 그래서 어쩌면 마치 매일 오늘을 살고 또 너무 먼 과거 혹은 너무 먼 미래 만을 꿈꿔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넓은 품으로 수용해 주었다. 나의 서툰 말과 행동을 나무라지 않고 그저 이해해 주었다. 그저 따뜻하게 웃어주고 안아주며 격려해 주었다. 그 큰 사랑을 먹으며 나는 무럭무럭 자라왔다. 내 어미가 되어 준 이탈리아어 선생님, 학교에서 만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 또 함께 여정을 걸어온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 그리고 거리에서 오며 가며 인사하게 된 이름 모를 이웃들. 새로운 것을 잘 배웠고 또 나의 옛것을 잘 간직해 왔다. 나는 여전히 나고 또 새로운 나다.
여기서 보내는 마지막 성탄이라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이상하다. 감사할 게 참 많은 시간이었는데, 나는 이 특별한 시기에 대한 찬미의 노래를 따로 부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환하게 웃으며 노래하는 마리아의 목소리에 살짝 화음을 넣어본다. 아주 가끔은 나도 환하게 웃을 줄 아니까. 나의 그 미소로 로마에서의 시간을 잘 감싸 예쁜 선물로 마련하고 싶다. 오늘의 나에 대한 선물이며 내일의 주님께 대한 봉헌이다. 뒤를 돌아보니 온통 감사할 것들 뿐이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누군가는 나를 오해했고 나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그래서 많이 분통해하고 또 울어야 했지만 그 시간마저 감사할 수 있는 건 나는 언제나 살아 있었고 또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를 쓰라리게 하는 당신의 고통에 함께 아파했으니 비록 내 눈물이 그대에게 보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당신을 향했던 순수한 나의 선의가 제때에 결실을 맺지 못했다 하더라도 허무했던 건 아니다. 그 모든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었으리라고 지난 시간의 나에게 관대해지련다. 남의 말을 하고 남의 밥을 먹고 또 남의 땅에서 자는 건, 아무리 꿈같은 로마의 휴일이라 할지라도 어려운 게 사실이니까. 그 약간의 어려움에 익숙해지고자 애써온 나에게 관대해지련다. 그리고 더없이 관대하고 자비로우신 나의 주님께 나는 다시 찬미의 노래를 부르며 내일로 향해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