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3일] 되찾은 목소리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루카 1, 60)

by 어엿봄

엘리사벳은 늙은 나이에 아이를 낳았다. 아기의 할례식에 모인 친척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는데,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하고 말하였다. 친척들은 가족 중에 그러한 이름이 없기에 의아해하며 아기 아버지에게 묻는다. 천사 가브리엘이 전한 잉태 소식에 의심을 품은 결과로 그동안 말을 할 수 없었던 즈카르야는 이제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쓴다. 그리고 그때에 그의 입이 즉시 열리고 혀가 풀려 하느님을 찬미하기 시작한다. (루카 1,57-66 참조)

아기의 어머니는 용감했다. 그녀는 아기를 갖게 되었을 때 몸을 숨겼으나 이제 사람들 앞에 선다. 그리고 당당히 목소리를 낸다. 그녀는 이제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오랜 세월 아기를 갖지 못해 가족들 사이에서 멸시를 받다 드디어 아들을 낳아서 찾은 목소리가 아니다. 그녀는 성령께서 자신을 통해 일하셨고, 자신이 주님의 은총을 가득 받았음을 몸소 알게 되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아주 내적인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변화했다.

아기의 아버지 또한 용감했다. 침묵을 하며 더 잘 듣게 된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가 겪어온 힘든 세월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어떻게 자신들을 통하여 일하시게 되는지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전통을 깨고 아내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다. 그 즉시 그는 목소리를 되찾았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그의 목소리는 사실 인간의 생을 찬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찾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감사이자, 환호말이다. 그렇게 그 역시 주님께서 자기 안에서 어떻게 존재하시는지 침묵 속에 몸소 느끼며 변화하였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주님의 선물, 은총" 그리고 "주님은 자비로우시다"라는 뜻을 지녔다. 그들은 진정 주님의 선물을 받아 안고, 그분이 얼마나 자애로우신 분이신지 아주 내밀하게 그 은총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침묵 속에서 이 은총에 대한 감사함을 키워왔으나 이제는 응답할 차례가 되었다.

나는 대림 시기를 지내며 점차 침묵을 갈망해 왔다. 조용히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싶었다. 작은 소음에도 민감한 나는, 늘 이어 플러그를 귀에 꽂고 잔다. 한밤중에 쏟아지는 빗소리에 그리고 타인의 목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고 싶지 않다. 그러나 침묵은 나를 위해 세상이 마련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 내어 놓아야 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낮아져서 나를 비우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서 나의 침묵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나의 땅속 깊은 은총의 샘물을 퍼내기 위해 침묵이 필요하다. 나의 경계를 허물고 들어오는 사랑의 숨이 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더 많이 사랑하는 그 주님의 현존을 존재로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때엔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심장에 손을 살며시 대고 느낄 뿐이다. 나는 다시 다짐한다. 내가 느끼고 체험한 만큼 세상에 모두 꺼내 놓기로. 그러나 이 아름다운 순환을 위해서는 항상 먼저 침묵해야만 한다.

이제 곧 아기 예수님이 오신다. 하루가 남았다. 충분하진 않았지만 나는 침묵에 대한 갈망을 조금씩 변화시켜 왔다. 세상을 듣는 게 괴로워도 피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려 했던 나의 최소한이 노력이 있었다. 침묵의 절정, 성탄 밤이 곧이다. 나는 그 고요한 밤에 찬미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나의 노래는 아기 예수님의 약한 심장 박동 소리보다 크지 않다. 세상 그 누구도 듣지 못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는 아기 예수님의 귓가에 내 모든 힘을 쏟아 노래할 것이다. 되찾은 나 그러나 여전히 달라질 나로서 침묵 속에 환호하며 빛나는 거룩한 밤을 맞이할 것이다. 그렇게 고개를 들고 나의 땅에 일어나 서서 하늘을 향해 있을 때, 반짝이는 별이 나를 주님께로 인도하리니 끝내 나는 내 생애 최고의 경배를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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