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 덮어 버린 밝음을 향한 용서

by 어엿봄

그렇게 웃어야 했을까?

라일락 잎은 참으로 쓰다. 마음을 살랑이는 달콤한 꽃향기와는 다르게 참 쓰다. 그 잎 살짝 깨물어 물고는 얼굴 찡그리지 않고 꿋꿋하게 펼치며 웃었다. 사방이 다양한 빛깔의 꽃들로 빛나는 딱 오월의 밝음만큼 나는 웃었다.


어린 시절 내 눈 속 젊은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빛났고 가장 아름다웠다. 엄마처럼 웃고 싶었다. 그리고 그 예쁜 엄마의 눈가에 슬픔이 차오를 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엄마의 미소를 되찾아야 했다. 마치 엄마 눈에 비치는 내가 그 슬픔이 되는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엄마를 잃으면 나는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았다.


세상이 웃으면 내가 그 웃음인 듯, 세상이 울면 내가 그 눈물인듯하여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로 살아왔다. 엄마 뱃속에 자리 잡은 작은 아가가 모든 것을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탯줄이 잘려나간지도 모른 채로 오랜 시간 타인의 눈물에 나를 적시며 살아왔다.


참 희한한 건, 나를 적시는 슬픔이 커질수록 더 웃고 싶어 졌다는 것이다.

경계를 세우지 않은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돌멩이를 모았고 벽을 세우고자 했다. 내 안의 어둠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눈물로 꺼뜨린 마음의 불씨. 켜켜이 싸인 감정의 재들이 바람에 날려 저 세상에 흩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 먼지 한 톨도 내 아름다운 세상인 엄마의 눈에 닿아 아프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나의 웃는 얼굴은 엄마를 닮았다. 사람들은 나의 미소를 좋아한다. 내가 활짝 웃으면 내 세상인 엄마가 밝아지리라 믿었다. 가끔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재미난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세상이 밝아지면 나도 잠시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혼란스러움이 남았다.

탯줄이 닿아있는 곳이 어딘지 몰랐다. 이미 나는 완전히 자라서 더 이상 어디선가 물길을 끌어올 필요가 없는데도 목이 마르면 주저앉아 몸을 웅크려버렸다. 흘려보내고 싶었던 회색빛 강물은 작은 돌맹이벽 안에 가둬져 댐이 되었다.


그 댐 위로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오월의 비는 그리 차갑지도 구슬프지도 않다. 세상에 만발한 가지각색의 꽃들을 충분히 적시는 사랑스런 방울들이다. 그 방울들 하나하나가 나의 댐으로 들어와 빛을 밝힌다. 모든 것을 덮어버렸던 밝음을 뚫고 저 깊은 어둠의 바닥에 닿는다. 바닥을 새롭게 채색하는 하늘의 빛이다.


혼란스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 어떤 것도 닫히지 않았고 또 다치지 않았으므로, 너무 염려하며 세상을 내 미소로 밝히려 하지 않아도 된다. 굳이 그대의 슬픔을 마음에 물고 쓴맛에 올라오는 눈물 참지 않을 것이다. 내 이미 그것을 삼켜버렸대도 너무 괴로워하지는 않겠다. 억지로 웃지도 않겠다.


선을 아무리 그어도 구분할 수 없었던 그대의 행복과 불행이, 아니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그저 나란 세상에 스쳐가는 작은 빗방울인지도 모른다. 그 어떤 것도 영원히 남지 않으며 그 어떤 것도 완전히 나를 설명해 낼 수 없다. 한 때 나는 웃음이고 또 한 때 나는 슬픔일 것이다. 밝음으로 다 감추어버렸다고 믿어왔지만 애초에 영원히 덮어버릴 수 없는 자유로운 오월의 빛깔들이었다.


그러니 세상인 엄마를 비춘 웃음에 잘못이 없고 세상인 작은 아가를 적신 눈물에 죄가 없다. 그 모든 것을 그저 하나로만 여기고 다 덮으려고 했던 형체도 의미도 없는 밝음을 탓한다. 아니, 용서다. 스스로를 모른 채로 어쩌면 허둥대며 모두 가리려 했을 밝음이 안타깝게 느껴져 용서해 주련다. 사실 너는 너의 진실을 몰랐을 뿐이다. 나의 용서는 네게 내미는 손길이라 너의 가리어진 눈을 벗겨주리라.


마음껏 울고 또 마음껏 웃자. 마음껏 손을 뻗어보고 또 느껴보자. 세상이 나와 얼마나 같고 다른지는 그제서야 알게 될 것이다. 끊어진 탯줄의 끝에 닿는 향기를 그때엔 제대로 맡을 수 있길 바란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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