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나

온전히 다 받아들였던 힘

by 어엿봄

아무도 나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지요.

어린 소녀였던 나는 단 한 번이라도 "나는 괜찮지 않다."라고 외치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내 안에는 차마 토해내지 못한 피가 고이고 있었습니다.

당신 역시 내 눈엔 어린 소년에 불과하지 않았기에 나는 아무 말 없이 울었어요.

나만큼 아플 그 소년이 안쓰럽고 괜히 미안해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을 살아냈으니, 나는 실로 힘 있는 아이였던 것일까요?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지요.

나는 이미 그때 그 영을 받았습니다. 나를 일으킨 그 힘이 아니었더라면 그대로 주저앉았겠지요.

모든 걸 다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린 소녀가 어떻게 그런 큰 용기를 지녔던 건지.

기적과도 같은 그런 시절을 살고 또 살아왔습니다.


당신의 살과 피가 나를 늘 새롭게 하였으니 단 한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 모습 알아보진 못했을지언정 새로운 영이 나에게 늘 부어졌으니 그것이 당신 현존의 증거였습니다.

나를 유지해 준 힘이 참으로 컸지요. 나는 그렇게 힘 있는 아이였던 것이지요.

나만의 씩씩함으로 어린 소년이었던 당신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돌아보면 모든 게 감사함으로 남는 시간들이며 나의 역사입니다.

진심으로 감사해요.


어린 소녀가 자랐듯, 장성한 소년은 나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내가 그를 위로했던 시간에 대한 고마움이며 내가 살아낸 시간 전체에 대한 고마움입니다.

이젠 나를 위로해 주시겠다니 아무것도 더 바랄 게 없어요.

그땐 아무도 내게 괜찮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감히 그 누구도 문을 두드릴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더 가까이 나와 함께였습니다.

그 긴 침묵을 버틴 힘의 원천이 당신이었음을 사실은 가장 잘 아는 제 자신이지요.


당신에게로부터 쏟아진 힘 버려지는 일 없게 온전히 다 받아내었던 나에게 이제는 고마워할게요.

그 힘으로 일어서며 밝게 웃은 내가 좋아서, 곱게 곱게 자라오려 노력해 온 내가 좋아서,

아니 그냥 이렇게 살아있는 내가 좋아서 참으로 행복합니다.

그러니 나에게 참으로 고마운 날이에요.


keyword
이전 02화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