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주님의 선물

by 어엿봄

한걸음 뒤로 물러나는 일이 조금은 쉬워졌어요.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게 작은 기쁨을 주었습니다.

늘 남들보다 먼저 도착해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익숙한 세상에 삽니다.

조금 더 빨리 움직이고 더 많은 시간을 쏟으면 그에 따른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요.

그것이 세상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자유로이 한걸음 뒤로 물러났고 그에 따른 값으로 기쁨을 얻었습니다.

드러나지 않을 뒷자리를 스스로 택하는 것이 조금은 더 쉬워졌습니다.


오늘 하루 편안하게 쉬고 싶었지만 나는 끊임없이 시간을 내주어야 했어요.

해야 할 것들을 하지 못한 채 한참을 기다리고 내어주며 그러나 불안하진 않았습니다.

사람들 틈에 섞여 버려지는 시간에 많이 안타까워하지는 않았습니다.


주변의 소음이 나를 방해하지 않는 그 어떤 깊은 차분함을 살고자 합니다.

네, 저는 차분했습니다. 그리하여 한걸음 물러났습니다.

옆에 있던 한 젊은이가 자신의 진로를 두고 고민 중이라며 기도를 청했습니다.

그에게 말했지요. 무엇을 택하든 주님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요.

그 순간 나는 나의 행복을 살고 있었습니다.

환호하는 군중 속에서 어쩌면 나의 자리는 역시나 가장 끝이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끝을 살다 보면 가끔은 엄청난 행운이 오니까요. 가장 작고 약한 이를 하늘에서는 크다 할 것이니까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당신께서 주시는 평화가 그렇게 다릅니다.

남들이 다 달려 나갈 때 천천히 걷겠습니다.

남들이야 어떻게 보든지 간에 저는 저의 가난한 끝자리가 그렇게 좋습니다.

언제나 휘파람 불며 당신께서 제게 남기신 평화를 살겠습니다.

존재의 평안함. 그 소명이 빛나는 오늘입니다.



교황 레오 14세의 산타 마리아 마죠레 대성전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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