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자유인의 모습들

사회계약론, 근현대 철학자들의 상상

by 이민영

자유인으로서 인간의 권리는 언제부터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을까

자유라는 단어가 도입된 것은 서양에서 근대에 들어서이고, 그리 오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남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자유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천부적인 권리로 인식하는 단계에 이른 것은 계몽주의 역할이 크다

계몽주의 사상가인 토마스 홉스와 존 로크, 루소 등이 자유에 대한 개념을 이끌어냈다

그들은 순수한 자연상태에서 인간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인간의 자유에 대해 정의 내리기 시작했다

그럼 왜 이들은 자유를 자연상태에서부터 상상했을까?

당연히 중세시대의 종교적 세계관을 부정하면서 인간의 근원을 자연상태에서 찾은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인간과 자연 모두는 신의 창조물이었으나, 신이 없어진 세계에서 인간이 최초로 맞이한 세상을 상상한 것이다

인간은 홀로 자연에 던져진 상태, 고립된 개체들로 시작되었다고 단정한다

그들은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며, 기본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안전하지 못할 뿐 아니라, 갈등과 대립을 조정할 존재를 요구하게 된다

사람들에게는 사회계약이 필요하고 권력을 가진 국가를 요청한다


토마스홉스는 1651년 그의 대표적인 저서 ‘리바이어던’을 프랑스 파리에서 발간하였는데, 그는 이 책에서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존재 양식에 대해 언급했다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계속되었다고 상정한다

자연상태에서 인간들은 살아남기 위해 적대적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고, 살아남으려면 경쟁자들을 누를만한 힘이 있어야 했다.

자연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자연권’이라 불렀다.

모든 사람들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황에서 누구도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안전하게 살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해치지 않겠다는 계약을 맺게 되는데, 이것이 자연적으로 맺어진 최초의 법, ‘자연법’이 되었다고 정했다

국가는 이러한 계약을 강제로 지키게 하기 위해 필요하다

국가는 계약을 어겼을 때 상대를 무자비하게 처벌하여 안전과 평화를 지키도록 하는 힘이라고 정의 내렸다.

자연상태의 인간들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그만두고 사회계약을 만들어 국가를 만들어낸 것이다

홉스의 사회계약 이론, 절대적 권한을 가진 국가의 존재는 이런 전제를 통해 제안된 것이다


홉스는 누구도 권력에 도전할 수 없는 강력한 국가를 요청했다

국가는 인간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리바이어던’은 절대적 권력을 가진 존재로서 국가를 말한다

당시 영국 내전을 피해 프랑스로 도피해 있었던 홉스는 혼란과 전쟁에 무척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홉스는 무엇보다 사회의 질서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를 위해 강력하고 절대적인 국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홉스는 성경에 나오는 바다괴물 ‘리바이어던’을 꺼내 들었다

성경 "욥기" 41장에서는 하느님이 욥에게 리바이어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리바이어던은 갑옷 같은 견고한 피부, 불을 뿜는 입, 그리고 무서운 이빨을 지닌 존재이다.

하느님은 욥에게 리바이어던이라는 거대하고 무서운 해양 생물을 잡거나 제어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리바이어던을 창조한 것은 하느님의 능력이며,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신의 무한한 능력을 보이기 위해 탄생한 상상의 동물이었다.

이런 리바이어던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국가의 권위와 힘을 상징화했다.

‘누구도 감히 맞설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수중 괴물과 같은 존재가 이상적인 국가모델이라고 했다.

즉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유 일부를 포기하고 이 괴물에게 권력을 맡김으로써 평화와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그의 사회계약론이다.

리바이어던 표지 그림

리바이어던 표지 그림 상반부에 한 인물의 큰 화상(畵像)이 그려져 있는데, 그 사람은 머리에 왕관을 쓰고 손에는 힘의 상징 칼과 십자장을 들었다.

얼핏 보기에는 쇠사슬 갑옷을 입은 것같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머리며 어깨들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는 작은 사람들의 자연적 권리를 통치자에게 위임함으로써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절대왕정으로 해석될 수 있었으나, 왕정은 사회계약의 기본원리를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혼란을 끝내고 질서를 잡기 위해 강력한 중앙 권력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구상이었다.

누구도 저항해서는 안되며, 국가가 무너지면 혼란으로 치닫게 된다고 했다

리바이어던 같은 괴물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홉스의 국가는 절대왕정이나 종교국가와는 거리가 멀다

당시 영국은 왕권과 의회의 충돌, 로마 가톨릭과 영국 신교의 대립, 스코틀랜드와의 전쟁 등 혼란스러운 세상이었다.

홉스는 가톨릭교에 대해 비판적 입장이었고 종교폭력에도 반대하였다

그는 가톨릭 교회가 혼란과 분쟁의 주범이라고 생각했다.

국가는 로마교회로부터 독립된 것이고, 신앙은 개인의 내면적인 문제이니 국가는 이것을 구속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자연상태 인간은 자유권 일부를 양도하고 성립된 사회계약, 국가의 절대적 존재 속에서 사람들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다고 보았다



로크는 자연상태 인간과 사회계약에 대한 측면에서 홉스와 대조적 경향을 띠었다.

그는 인간이 최초로 존재했던 자연상태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내놨다.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도 인간은 평화롭고 상호 존중하는 이성적 존재로 상상했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완전한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상태이며, 무질서한 상태로 되지 않은 것은 자연 법률이 지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연 법률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유와 생명, 재산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크의 ‘자연법’에서는 인간에게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만들어 놓은 인간의 도덕과 이성이 존재하고, 이로 인해 이기적 욕망을 억누를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생존 투쟁을 중시하는 홉스의 자연법과 달리, 로크는 도덕과 이성에 의해 도출된 계약이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재산 분쟁이나 의견 차이, 범죄에 대한 처벌 등에 대해 중립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제삼자가 필요하게 된다

로크는 이런 필요성이 사회계약을 통해 정부를 만드는 동기가 된다고 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연권 일부를 정부에 넘겨줘 정부의 권한을 인정하고, 정부는 대신에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고, 법과 질서를 유지하게 된다

자연권이 먼저이고 정부는 개인의 일부 권한을 위임한 2차적인 권리이다


로크는 재산권을 자연권의 중요한 부분으로 보았는데, 사람들은 사적소유를 기본 권리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는 자연상태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을 투자해 무엇인가를 만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재산이 된다고 했고, 개인의 재산권을 굳건히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로크는 소위 ‘반란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사람들은 정부가 그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거나,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그들이 정부에게 위임한 권한을 회수할 수 있다는 권을 반란권으로 명확히 하였다.

사회계약설에서는 저항이라는 수단으로 자신들의 자연권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존로크는 홉스의 견해와 다른 경로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았다.

존로크는 토마스홉스 이후 세대이며 명예혁명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그는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하고 1666년부터 1683년까지 당시 영국정치인 애슐리 경의 비서로 일했다.

1683년에는 영국에서 "류이하우스 음모"라는 정치적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왕인 찰스 2세와 그의 형제인 요크 공작 제임스를 암살하려는 계획이었다

국왕과 그의 형제를 살해하고 애슐리경을 새로운 지도자로서 세우는 것이었다.

존 로크는 이 사건에 휘말리며 생명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네덜란드로 망명하게 되었다

네덜란드에 머무르는 동안 그의 대표적 저서 ’ 인간이해론‘을 집필하였고 1691년 책을 출간하였다.

명예혁명이 발생한 후, 로크는 영국으로 돌아와 '정부론'을 발표했고, 인민의 권리와 군주의 의무, 반란의 합법성에 대해 주장했다.

로크의 주장은 명예혁명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이론이 되었고, 그는 종종 영국의 명예혁명을 예견한 철학자로 지칭되기도 한다


로크 역시 자연상태의 인간을 말하고 있다

홉스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보았던 자연상태와는 다르게 보았다

국가나 정부가 들어서기 이전에도 인간은 완전한 자유인이었다고 상상한다

자연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

자연법은 모든 사람이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이성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자연상태는 방종이 난무하는 상태가 아니라고 보았다

인간은 타인의 생명, 건강, 자유, 소유물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따르고 있었다

로크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불가침의 권리를 가진다고 보았다

생명권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할 권리를 말한다

자유권은 타인의 의지에 구속받지 않을 권리이다

그리고 재산권을 천부인권의 범위에 넣었는데, 자신의 노동을 들여 얻은 결과물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주장했다

로크는 인간은 본래 평화롭고 선한 상태로 보았지만, 그럼에도 '전쟁 상태'로 변질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상태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각자가 가졌던 '자연법의 집행권'을 포기하고 공동체에 양도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계약이며, 이를 통해 국가와 정부가 탄생하게 됩니다.

로크의 사상은 이후 미국의 독립선언문과 프랑스 인권선언 등 근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철학의 모태가 되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홉스와 로크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의 저서 ‘인간 불평등 기원론’ 서문에서는 '글라우코스(Glaucus)의 석상' 이야기로 시작한다

글라우코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바다의 신으로 나오는 인물이었다

그는 원래 인간이고 어부였으나, 마법의 해초를 먹고 바다의 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그는 바다의 폭풍우와 파도에 씻기면서 그의 모습은 괴물이나 맹수처럼 변해버렸다고 한다

루소는 글라우코스가 신과 같은 본래 모습을 잃고 다른 형상으로 변해버렸듯이, 인간의 본성도 사회문명에 의해 변질되었다고 강조하기 위해서다


루소는 바닷속에 글라우코스의 모습을 본뜬 석상이 있었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석상은 오랜 세월 동안 바다와 폭풍에 훼손되어 그것의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렵다

석상의 육체들은 풍랑으로 인해 일부는 부러지고 박살이 났고, 또한 따개비와 해초 그리고 돌들이 그에게 덧붙어 자라게 되었기 때문이다

글라우코스 석상은 오히려 짐승을 닮아보이게 되었는데, 루소는 인류의 영혼도 이 석상과 같다고 보았다

인간의 본래 순수한 모습도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되고 변질되었다

‘진보'나 '사회화'라는 명목 아래 인간이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불평등한 존재로 전락했다고 강조한다

루소의 '글라우코스 석상'은 문명이나 사회 제도로 인해 본래의 선함을 잃고 흉측하게 변해버린 현대인의 영혼을 뜻하는 비유였다

사색하는 루소 그림(출처 중앙일보)

루소는 최초의 자연상태 사람들에게는 순수한 영혼이 있었다고 보았다

'자연적 영혼'은 인간 본성이 순수하고 선하며 자유로운 상태였다고 단정했다

인간본성에는 두 가지 감정이 있었다

하나는 자기애로 스스로 생존하고 자신을 돌보는 감정이다

또 하나는 다른 생명을 존중하는 연민의 감정이며, 자연상태에서 질서를 유지시키는 힘으로 보았다

최초의 인간에는 이기심과 허영심이 없는 평화로운 존재였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주장은 자연상태의 순수한 인간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불평등의 기원은 순수한 인간의 모습을 바꿔버린 사회 문명과 제도라고 보았다

루소가 생각하는 자유인의 모습은 자연상태에서의 순수한 인간으로 보았다

토지 소유권이 생기면서 부자와 가난한 자, 강자와 약자가 발생하고 불평등이 초래되었다고 단정한다

루소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던 땅 주변에 말뚝을 박고, 자기 마음대로 ’ 이것은 내 거야 ‘라고 선언하고, 그 말을 믿는 단순한 사람들을 찾은 자가 시민사회의 진정한 창시자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만약 '땅은 모두의 것이고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면, 인류가 벌인 전쟁과 살인,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로크가 재산권을 사람이 가진 자연권으로 보았던 반면, 루소는 토지소유권을 비극의 시작으로 보았다

사유재산이 자연 상태에서의 평등과 자유를 파괴하고, 인간 사회를 경쟁과 착취의 상태로 이끌었다고 본 것이다

사회의 법과 제도는 자연적 자유를 억압하고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루소가 상상한 자유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있다

루소는 '에밀'에서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를 주인과 노예라는 관점에서 설명한 적이 있다

그는 부모가 아이의 모든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는 방식도, 부모가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며 복종시키는 것 모두 위험한 관계라고 경고했다

유아기 시절에 아이가 울거나 보채기만 하면, 부모가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아이는 '명령하면 이루어진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는 '주인'으로 부모를 '노예'로 인식하게 된다

그 아이는 자라면서 점차 다루기 힘든 폭군 성향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부모가 주인이 되고 아이가 노예가 되는 경우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강요하며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경우이다

아이는 자신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억압당하고, 부모의 눈치를 보는 '노예'와 같은 심리 상태에 놓인다

루소는 이런 압박이 아이의 정직함을 해치고 비굴함이나 반항심을 키운다고 보았다

아이가 자유인으로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보았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주인-노예의 권력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장한다

명령하는 법을 가르치지 말고,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하게 해야 한다

부모가 아이의 종노릇을 하거나 반대로 아이를 억압하는 것 모두를 경계했다

다른 어떤 교육보다 유아기 때 자유롭게 길러지도록 하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공동체를 중시하는 성향이 강하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앞서 언급한 홉스나 로크가 주장한 내용과는 결 다르다

1762년에 발간된 사회계약론 첫 구절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여있다”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다

인간은 본래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사회 체제 속에서 억압받아 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이 자신의 권리를 공동체에 양도하고, 그 대가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는 계약을 맺는 것이 사회계약이다

루소는 국민주권에 대해 주권은 절대 군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으며, 이는 양도하거나 분할할 수 없는 권리로 규정했다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루소는 대의제보다는 시민들이 직접 법 제정에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 형태를 이상적으로 보았다

루소는 일반의지(General Will) 개념으로 사회계약을 설명한다

일반의지는 집단의 전체의지와도 다른 개념이다

개인적인 이해관계의 총합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공익을 지향하는 보편적 의지라고 한다

국가는 이 일반의지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루소의 주장을 보면 그는 계몽주의를 넘어 반문명주의나 초기 좌파의 원류처럼 느껴진다

문명과 사적소유가 인간의 본성을 지우고 변모시켜 버렸으며, 인간은 자연 본성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동체에는 개체들의 사적 이해관계와 다른 '일반의지'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마치 종교적 교리처럼 공동체에도 초월적 정의가 존재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루소는 공동체의 일반의지가 항상 정당하며 결코 틀릴 수 없다고 보았다

공산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공산당의 무오류성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일반의지는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모호한 정의이고, 어떤 선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이상적 원리로 받아들이게 된다


계몽주의 사상은 17-18세기 유럽, 미국의 여러 혁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간은 원래 자유로운 존재라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홉스는 자연상태의 인간들은 "전쟁의 상태"에 놓이게 되므로, 자신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필요한 모든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했다.

로크 역시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존재라고 하였고, 자연 상태에서도 인간은 평화롭고 상호 존중하는 이성적 존재로 상상했다.

인간이 무질서한 상태로 되지 않은 것은 자연 법률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인간은 자연권을 갖게 되는데, 자연권의 내용은 자유와 생명, 재산권을 포함한다고 정의 내린다.

자연권은 인간이 양도할 수 없는 기본 권리를 말하는데 로크는 사유재산권을 자연권에 포함시킨 것이다

서양에서 재산권이 자유와 마찬가지로 기본권리로 인식되고, 재산권은 인간사회에서 합의되기 전에 생겨난 권리로 자리매김되었다.


사회계약설은 바로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시스템이다.

이런 사회계약설은 자연상태의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온 근거가 무엇이며, 국가는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자유(自由)라는 의미는 '자신으로부터 말미암은 의식 또는 행동'이며, 자신의 판단과 의지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이 홀로 자연상태에 놓였을 때를 상상해 보면, 그 사람이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홀로 생존해야 할 공포스러운 상태에 놓여있다고 본다

인간은 애초에 홀로 자연상태에서 존재하지도 않았고, 인류는 늘 집단생활을 하고 있었다

인간의 생존과 안전은 집단을 이루면서 해결해 왔다

인간을 최초의 자연상태의 고립된 존재로 끌고 올라간 것은 서양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창조물이었다

중세시대의 신학적 세계관에서 신이 사라진 세상에서, 인간은 홀로 자연에 생존하는 모습이었을 것으로 상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초의 자연상태에서 사회계약론을 이끌어냈고, 자유로운 사람의 원형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상상을 통해서 자유인을 도출해 낸 사상적 근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근대 철학사에 등장한 많은 철학자들은 자유인의 모습을 창조했다

근대 철학에서 중심이 된 독일 철학자 칸트 역시 자유인으로 살고자 했다

서양의 철학 과제 가운데에서 자유의 문제는 ‘무엇으로부터 자유’에 관한 것이었다.

근대 이전 중세시대에는 오랜 기간 신과 자유에 대한 문제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인간을 신이 창조했지만, 인간에게는 상대적 자유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왜 신은 인간의 악을 허용했는지’라는 질문의 답으로, 신으로부터의 상대적 자유를 생각해 냈다.

그는 인간은 자유의지에 따라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고 악을 행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래야만 인간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칸트 또한 인간이 신으로부터 일정한 자유의지가 없다면 선악의 개인 책임을 물을 수 없어서, 도덕법칙이 성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고 말한다

(철학이 묻고 과학이 답하다. 2020. 홍진표)


칸트가 말한 자유는 그의 묘비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칸트의 묘비명

“내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

(The starry heavens above me, and the moral law within me.)

칸트의 묘비명이기도 한 이 구절은 그의 철학을 압축하는 대표적인 문장이다

칸트철학에 정통한 김상환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볼수록 내가 살아가는 이 지구는 먼지보다 작고 가벼워진다

광대한 우주로 생각이 확장될수록 나의 존재는 한없이 무에 가까워진다

나는 우주 앞에서는 한없는 유한성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내 안에 있는 도덕법칙을 생각할 때면 허무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 안의 도덕법칙은 나를 자유롭게 하고, 이 자유가 나를 자연적 사물과 구별되는 인격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칸트의 자유 개념은 실천이성비판에서 다뤄지는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이해될 수 있다.

칸트는 객관적 세계를 인식하는 질서가 인간의 마음에 이미 내재돼 있다고 하면서, 이를 ‘선험적 형식’으로 보았다

소위 현상계를 인식하는 시간과 공간도 인간의 마음에 이미 있는 능력이고, 어떤 현상을 인과적으로 인식하는 것, 합리적으로 파악하는 능력도 인간의 마음에 내재된 소프트웨어와 같다

칸트의 인식 능력과 사유능력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갖추고 있다

이러한 선험적 형식을 통해 세계를 파악 가능한 것으로 봤다.

인간의 자유도 경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험적 능력으로 보았다

(‘왜 칸트인가’, 김상환, 2019)


인간은 자연 세계의 기계적 법칙만을 인식할 수 있으며, 인간의 직관능력으로는 인간의 자유, 영혼, 신의 존재 등 추상적 문제에 대해서는 인식할 수 없다고 보았다

자유에 대한 인식은 직접적인 방식으로는 불가능하고, 자신 안에 내재된 도덕법칙을 인식할 때 자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고 정의했다.

자유와 도덕법칙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도덕법칙을 따르지 않으면 사람들의 자유는 얻어질 수 없다

도덕법칙은 2가지를 충족해야 했다

하나는 보편주의적 원칙 즉 정언명령을 말한다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보편주의적 입법 원리를 준수하도록 요구한다는 정언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하나는 자신과 타인의 인격을 수단으로 보지 말고 목적 그 자체로 대하라는 것이다

칸트의 자유는 이런 조건을 갖춰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자기중심이어서도 안되고, 쾌락이나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수단이 되어서도 자유라고 할 수 없다

자유도 인간의 마음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선험적 능력이라고 보았다

칸트의 자유를 접하고 나면 우리는 과연 실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우리가 자유인이 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전제조건이 붙어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자유인은 본성과 목적에 따라 행동하지 않아야 하고,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고귀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성과 사유가 만든 지고지순한 자유의 개념이 탄생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출간되었을 당시에도 독일의 많은 사람들이 난해함에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1780년 가을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의 출판을 거절당했고, 한 서적상인의 도움으로 다음 해에야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판매 부수는 매우 미미했고, 칸트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드물었다고 한다

난해한 용어와 복잡한 체계는 모두를 괴롭혔을 것으로 짐작한다

동시대를 살았던 독일의 철학자들 조차 공감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칸트는 대중적인 해설서를 따로 쓰기로 하고 1783년 '프톨레고메나'를 내놓았다

칸트철학의 난해함은 예나 지금이나 모두를 괴롭히는 요인이었던 것 같다


칸트의 자유는 사람들의 감성과 본능이 배제된 성스러운 기운마저 느끼게 한다

그의 자유에서는 특별한 이해관계가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의 행동과 사고에서 이해관계를 빼고 나면 어떤 순수한 동기가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는 자연에 가장 잘 적응해 생존하고 번식에 유리한 본성이 잘 갖춰져 있다

생명체의 반응은 후천적 학습보다 물려받은 유전자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칸트의 도덕법칙과 자유는 정말 실현 가능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덕법칙에 대해서 현대 생물학자들은 달리 생각하고 있다

도덕법칙은 생명체의 집단사회에서 잔존하는 생존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집단의 규칙은 오랜 기간 형성된 생명체 진화의 산물이며, 유전적 정보에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도덕 규칙과 행동방식은 대형 유인원들에게서 수백만 년 전부터 자리 잡은 유전적 토대를 가지고 있으며, 점차 진화돼 인간의 사고와 행동양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영장류 학자들은 이타적인 공감, 규칙위반에 대한 수치심, 처벌에 대한 두려움, 근친상간 금지 등은 유인원 사회에서도 나타난다고 강조한다

동물들도 남을 돕고, 공감 능력을 갖고 있으며, 공정함과 정의의 감각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인원들의 공동체를 오래 관찰해온 학자들은 유인원사회의 도덕규칙이 존재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유인원 개체들은 자기 몫의 일부를 잃을 수 있는데도 자발적으로 동료와 먹이를 나눈다.

또한 몸이 불편한 동료가 이동할 때 도와주고, 물을 떠다주며, 우울해하는 동료를 안아주고 입 맞추고 위로하는 행동이 관찰된다.

포유류는 타자의 감정에 민감하고 그들의 필요에 반응하는 존재이며,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도덕은 집단생활을 하는 영장류의 진화적 압력에서 나왔다고 본다

공감 능력, 공정성에 대한 감각뿐만 아니라 개인보다 집단을 앞세우고 협력 사회를 추구하는 능력은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갖추어 온 것이다.

(『착한 인류』 도덕은 진화의 산물인가, 프란스 드 발, 오준호 옮김 2014년)


도덕법칙은 생명체가 자연적응 과정에서 형성된 생활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결론이다

인간의 도덕법칙 역시 진화의 방향에 맞게 이미 정립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칸트가 말한 선험적 능력과도 유전적 능력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지만, 도덕법칙과 자유에 대한 접근은 완전히 달랐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철학자들은 인간의 자유에 대해 더욱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접근한다.

19세기 현대철학의 문을 열었다고 하는 세 사람을 꼽는다면 마르크스와 니체, 프로이트를 꼽는다.

특히 니체는 현대철학의 선구자라도 평가받는 인물이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기독교 역사 등 서양의 전통과 원리를 통째로 부정하였다

흔히 그를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한다.

당시 서양의 종교적 신념과 전통 철학, 도덕 등 모든 것에 도전하고 질문을 던졌다

‘신이 죽은 시대’는 현대와 더 어울리기 때문이고, 특히 삶의 목표와 가치를 잃은 채 살아가는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삶의 가치를 찾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평가한다.

(의심의 철학, 이진우, 2017)


니체의 삶은 파란만장한 여정을 보였다

니체는 독일 작센지방 작은 마을인 뢰켄(Röcken)에서 루터교 목사 아들로 태어났다.

니체 아버지는 뇌 질환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훗날 니체 말년을 괴롭힌 정신질환 역시 가족력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기독교 환경에 자랐고 신학공부에 전념했지만, 그의 철학은 철저히 기독교 전통과 질서를 부정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다

어머니는 신학자가 되기를 희망했으나, 대학에서는 신학을 포기하고 고전문헌을 택하게 된다

신학보다 그리스 로마의 고대 세상에 더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24살 어린 나이에 스위스 바젤대학 교수에 오르는데, 그의 직책은 고전문헌학 교수였다

건강상의 악화로 35세에 바젤대학교를 퇴직하고, 조용히 산속으로 들어가 요양과 집필에 전념한다

약 20년 동안 병든 자신의 몸을 돌보기 위해 유럽각지를 돌아다녔다

그의 마지막 10년은 정신질환으로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이태리에서 정신병 발작을 일으킨 후 완전히 정신 상실자가 되었고, 20세기가 시작되는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세상을 떠났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기독교 영향아래 성장했지만 근대 기독교 질서를 철저히 부정했다고 할 수 있다


니체에 의해 제기된 자유인은 ‘힘을 가진 존재(위버멘쉬, Übermensch)’로 표현된다.

위버멘시는 니체가 창조한 개념이며 이 개념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구분했다

모든 생물체는 ‘힘의 의지’를 가진 존재로 보았고, 힘의 의지가 높아질 때 자유롭다고 했다.

인간도 힘을 가진 존재와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하고, 각각 주인과 노예상태로 보았다.

니체에게 사람들은 평등한 존재가 아니다.


“동등한 자에게는 동등을, 동등하지 않는 자에게는 동등하지 않음을, 정의에 대한 진정한 표현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그 결과로써, 동등하지 않은 자를 결코 동등하게 만들지 말라” (우상의 황혼)


니체는 인간을 위버멘쉬(Übermensch, 초월적 존재)와 인간말종(최후의 인간)으로 구분한다.

인간은 건강한 상태와 병리적 상태, 주인과 노예상태로 구분한다

위버멘쉬는 건강한 상태에서 주인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인간말종은 병리적 상태에서 노예의식에 머물러 있다고 구분한다.

주인상태에 있는 위버멘쉬는 힘의 의지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뛰어넘는 사람들이며, 스스로를 강화하고 고양시키는 존재로 설정한다

인간말종은 허상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며, 몸과 마음의 안락만을 추구하며, 사후에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종교적 위안에 취해있다

작은 쾌락과 행복에 연연하는 소시민적 인간들도 인간말종으로 분류했다.

함을 가진 존재는 자기 절제도 잘하고, 최대의 질서를 가진 인간으로 압축된다.

본능과 충동의 욕구를 잘 통제하고, 인간 내부의 갈등을 잘 통제할수록 자유의 느낌이 커지게 된다고 한다.

모든 생명체들은 역시 ‘힘의 의지’를 갖는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어디에서나 힘과 힘의 충돌이 일어난다.


니체는 자신이 구상한 생명체의 세계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상징적이고 난해한 말로 인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의 자유에 대한 입장은 뚜렷하다

니체의 자유는 ‘힘의 의지’를 통해 정의되고 있다

자유는 관계들 속에서 충돌할 수밖에 없고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는 모든 사람과 생명체들과의 갈등과 충돌을 통해 쟁취해야 될 대상이다

또한 자유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는 내부 통제력을 가져야 하고, 약속을 지키는 책임도 뒤따른다.


니체 저작물 가운데 자유와 관련된 대표적인 문장들이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것은, 사람이 갖고 있으면서도 갖고 있지 않은 것, 사람이 원하고 쟁취하는 것이다” (우상의 황혼: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가장 자유로운 인간은 자신에 대한 최고의 힘 느낌을, 자신에 대한 최대의 앎을, 자신의 힘들의 불가피한 상호 투쟁에서는 최대의 질서를 가장 큰 투쟁을 자기 속에 지니고 있다”(유고)


“자유란 무엇인가? 자기 책임에의 의지를 갖는다는 것. 자유는 무엇에 의해 측정되는가?

극복되어야 할 저항에 의해서, 위에 머므리기 위해 치르는 노력에 의해서

최고로 자유로운 인간 유형은 최고의 저항이 끊임없이 극복되는 곳에서 발견될 수 있다”(도덕의 계보)


니체는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비판적 견해를 보인다

평등을 외치는 사람들의 한 부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 하고, 또 하나는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끌어올리고자 한다고 구분한다

뛰어난 사람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고 비난하는 것은 무리 동물들의 본능이라고 규정한다

그들은 집단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집단이 원하는 바대로 살아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평등을 강요하는 철학자들을 독거미 타란튤라에 비유했다.

평등을 설교하는 자들은 타란튤라와 같고, 일종의 복수심이며 정의로 위장돼 있다고 강조한다

개인의 평등의 문제에 국한하여 보면, 니체가 바라는 것은 병리적 상태로 존재하지 말고 건강한 상태로 존재하라는 것이다.

병리적인 인간과 건강한 인간의 사이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둘 모두에게 똑같은 권리를 부여할 수 없으므로, 자유와 평등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니체의 평등주의에 대한 경멸은 19세기 사회주의와 유럽의 혁명적 열풍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독거미 타란튤라(tarantula) 언급은 부적절해 보인다

공포영화에 자주 등장하기는 하지만, 타란튤라는 벌 정도의 약한 독을 가지고 있을 뿐이며 공격을 하기보다는 후퇴하는 편이라고 한다.


이러한 니체의 엘리트주의와 이분법적 철학은 나중에 독일 나치들에게 이용당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나치즘의 인종우월주의와 폭압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유대인 학살을 결정한 뉘른베르크법이 추진될 당시 나치는 운터멘쉬(Untermensch)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유대인과 집시 등을 지칭하는 인종차별적 용어이다

열등한 혈통을 의미하는 원터멘쉬는 언뜻 니체의 위버멘쉬의 반대말처럼 들린다

위버멘쉬 독일인과 운터멘쉬 열등민족으로 대비시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니체는 위버멘쉬의 대립적 용어로 '인간말종(최후의 인간)'이라고 했고, 타락한 인간상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그는 반유대주의를 부정했고 독일 민족주의를 경멸했다.

유대인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 나치의 아리안족 순혈주의에 반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많은 독일인은 니체 사상이 나치즘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다

국가가 출산을 관리하고, 우수한 엘리트들을 계획적으로 육성하려는 나치 정책은 니체의 위버멘쉬 육성 발상과 유사하게 보였다

'힘의 의지’를 자유의 근원으로 삼은 니체의 주장 역시 현대에서는 낯선 존재가 되었다

오히려 사람들의 권력 추구 욕망을 의미하는 ‘권력에의 의지’라는 표현이 익숙하게 들릴 뿐이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에 입각하여 세계와 인간사회를 분석한 철학자이다

인간의 자유를 실현할 담대한 구상으로 사회주의 혁명의 길을 제시한 혁명가이기도 하였다

마르크스 이념은 유물론과 경제사관, 사회주의 혁명론 3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그에게서 인간의 자유는 사회경제적 관계에 기초하고 있다

세계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변증법적 법칙에 따라 운동하며, 인간사회의 역사도 물질을 생산하기 위한 인간의 생산관계를 중심으로 해석하였다

물질과 의식 중에 물질이 우선이며 의식은 물질운동의 결과물이다

물질의 운동 법칙은 변증법의 원리를 따른다

변증법의 원리는 대립물의 통일, 부정의 부정의 법칙, 양질변환 원리 등으로 설명했다

인간의 의식은 사회경제적 토대에 의해 규정되며,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경제적 상황을 반영한다고 정의한다.

사람들의 사회관계는 물질생산을 둘러싼 생산관계에 기초한 것이며, 인간의 의식과 제도, 이데올로기 등은 물질적 관계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았다

사적유물론은 인류의 역사를 경제를 중심으로 한 경제사관을 정립한 것이고, 역사발전 단계를 원시공동체와 노예제, 봉건제와 자본주의 사회로 구분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모순으로 인해 반드시 붕괴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이행 간다고 보았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이 고된 노동과 억압으로 벗어나 자유가 고도로 확대되는 이상사회로 점차 이행해 가고 있다고 보았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당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가 박탈되는 원인을'소외'(Entfremdung)로 보았다

소외는 인간이 노동을 하면서도 노동의 결과물을 제대로 분배받지 못하고, 외부적인 힘에 의해 인간이 지배되고 종속시키는 관계를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수단을 갖지 못한 노동자계급이 고용노동자로 전락하고, 자본가에 예속되는 사회경제적 관계가 굳어졌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모습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소외 문제를 핵심적인 철학적 주제로 부각하고 있다

이런 소외는 인류 역사에서 계급이 출현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계급사회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나 농민들이 직접 생산물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나 자본을 소유하는 지배계급이 생산물을 전면 통제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았다.

인간이 소외를 극복하고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계급이 없는 공산주의 사회로 전환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각자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되는 사회"를 형성하게 된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일을 자유롭게 추구하고, 계급지배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될 것이라는 유토피아적 전망을 내놨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자유를 노동과 소외 등 경제적 관계에서 파악한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자유인은 결국 권력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1871년 프랑스 파리에서 성립된 파리코뮨을 열렬히 찬양하고, 노동자 국가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선언했다

엥겔스도 파리코뮨을 프롤레타리아 권력으로 규정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은가? 파리 코뮌을 보라! 그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

그는 '파리 코뮌이 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잡으면 사회가 얼마나 민주적으로 조직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최초의 사례'라고 평가했다

마르크스는 가장 중요한 저작 중 하나인 '프랑스 내전'을 통해 파리코뮌의 역사적 의미를 분석했다.

파리 코뮌은 1871년 파리시민들이 세운 사회주의 자치정부를 말한다

세계 최초로 노동자들이 세운 혁명 정부라고도 불리고, 사회주의 정책을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파리코뮌은 비록 2개월 만에 강제 진압되었고 그 과정에서 3만여 명이 희생되었는데,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의 희망을 보았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파리코뮨이 실패한 직후, 1871년 5월 국제노동자협회 총평의회(제1인터내셔널)에서 노동자의 권력을 강조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사회주의 권력으로 가는 핵심 수단이며, 노동자를 지배계급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모든 자본을 몰수하고, 생산수단을 국가의 수중에 집중시켜야 사회발전을 추진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처음에는 소유권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강압적으로 해체시키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사회주의 사회의 발전은 점차 계급적 차이들이 소멸하고 권력은 그 정치적 성격을 상실하게 될 것으로 보았다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사용하는 조직적 폭력이 국가이기 때문이다

낡은 생산관계가 소멸되면 계급도 없어지고 계급적 지배도구인 국가도 사라지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마르크스의 자유는 계급과 계급의 대립이 끝나고, 개인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가 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 사후 전개되는 사회주의역사에서는 그의 기대가 크게 엇나갔다

1917년 레닌혁명으로 시작된 공산주의 실험은 한 세기를 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그 결과는 설명할 필요도 없고, 계급소멸도 개인의 자유도 실현되지 못했다

그런데 현대의 마르크스 경제사관은 2천 년 전 중국의 묵가사상과 상당히 유사한 내용을 갖고 있다

경제사관은 묵자의 겸애사상과 매우 비슷하다

두 사상은 모두 사람이 평등한 사회를 꿈꾸며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길을 제시했다

마르크스는 계급 없는 사회를 추구하며 생산 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강조한 반면, 묵자는 '겸애'(兼愛)와 '교상리'(交相利)라는 이름으로 모든 사람에게 경제적 평등을 실현하고자 했다

또한 마르크스와 묵자는 혁명적 집단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했다

마르크스는 공산당과 국제공산주의연맹을 창설했고, 묵자 역시 자신의 사상을 추종하는 묵가 집단을 조직하고 실천하였다

동서양에서 약 2천 년의 시간차이에도 유사한 사상이 생겨났다는 사실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경제적 요인이 동일하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다

그는 처음으로 무의식의 세계를 철학의 주제로 끌어들였다

인간의 무의식이 인간의 행동과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마음에는 이성과 의식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욕망, 기억, 충동 등이 담겨 있는 무의식의 영역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무의식은 내 마음과 삶에 깃들어 있지만 어떻게 내 정신세계와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없는 또 다른 존재라고 규정했다

프로이트는 "자아는 자기 자신의 집주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통해, 이성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고 믿었던 기성 철학을 통째로 부정했다


프로이트는 정신과 의사였고, 많은 환자들과 상담하면서 무의식의 세계를 경험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정신분석학자 김서영교수는 '프로이트의 환자들'을 통해, 프로이트가 50년에 걸친 환자들과의 임상경험을 통해 이론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는 프로이트가 만났던 환자들로부터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다듬어졌다고 강조한다

“정신분석의 중심에는 이론이 아닌 사람이 있다. 정신분석은 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던 사람이 당당히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는 여정이다.”

무의식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 감옥과 같다고 말한다

감옥을 깨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는 현재를 만든 사건들과 나를 정의하는 과거들을 기억해내야 한다.

프로이트의 많은 환자들은 무의식의 소리를 부정하고 모든 것을 통제·조절하려 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무의식의 소리를 부정하면 균열이 발생하고, 마침내 신체를 공격하게 돼 질병이 된다

치유의 방법은 무의식을 받아들이고 자신에 대해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왜 형성되고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개인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동, 욕망, 기억, 감정 등을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밀어내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무의식으로 밀어내는 일은 개인이 심리적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과정을 무의식의 억압이라는 용어로 정의한다

그런데 무의식에 갇혀있던 충동과 욕망들이 정말 의식하지 못한 채 부지불식간에 다시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한다

심지어 황당한 생각과 행동, 인간의 꿈 등도 무의식의 발로라고 단정해 버린다

프로이트는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빙산의 일각과 같다고 생각했다

빙산의 대부분은 물에 잠겨 있고, 물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의식'의 세계는 빙산에서 물 밖으로 나온 부분이고, 바닷속에 잠겨 있는 엄청난 크기의 빙산이 '무의식'의 세계라고 했다

의식은 사실 우리 정신에서 얼마 되지 않고 나머지 대부분은 무의식이라고 강조했다


프로이트가 생각하는 자유는 심리적인 것이다

무의식의 억압에서 벗어나 무의식의 영향을 벗어나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무의식의 내용을 알아내고, 심리적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자유를 얻는 중요한 방법이다

사람들이 마음에서 억압된 감정과 욕망에서 해방돼야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프로이트는 사람의 행동과 사고를 개인의 심리와 무의식에서 고찰했고, 자유의 문제를 개인의 심리와 정신적 상태에 주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무의식이라는 창고를 만들어 설명하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에게 자유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건강한 사람의 징표로 일과 사랑을 꼽았다고 한다

일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성취하는 사람은 건강하다

사랑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희로애락을 공유하고 정서적 교류가 있는 인간관계를 중시했다

대인관계가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건강하다고 보았다

프로이트는 일과 사랑을 갖춘 사람이야말로 건강한 사람이고, 무의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프로이트의 시도는 전통적인 철학체계에서 사람을 설명하지 않고,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는 인간의 무의식을 새로운 영역으로 받아들이면서 현대 철학의 한 축을 형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 전체를 이성의 영역에서 설명할 수 없었으므로, 무의식의 영역에서 도출해 낸 것이다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을 무의식을 통해 해명하고자 했다


현대 생물진화론에서도 무의식의 세계를 인정하고 있다

현대 진화론에서 무의식을 생명체의 생존반응으로 설명한다

인간의 뇌가 모든 정보를 의식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생명체의 생존과 직결된 반응은 의식의 과정을 거치면 매우 느리게 되고 에너지도 많이 소모된다

공포와 식욕, 성욕 등은 즉각적인 반응을 하는 것이 유리하게 작용한다

무의식적으로 자동화된 행동이 의식의 과정을 거치는 것보다 훨씬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생명체의 진화과정에서 무의식적 행동이 남아 있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생존에 중요한 정보만 의식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무의식 영역에서 다루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현대철학을 대표하는 세 사람은 자유에 대한 자신만의 구상을 설정하고 인간과 사회를 설명하려 했다.

인간의 자유를 논하면서 사회의 경제적 조건 또는 무의식의 동력, 힘의 의지와 같은 요소를 통해 규명하고자 했다.

마르크스는 경제적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혁명적 인간을 자유인으로 보았다

프로이트의 자유인은 무의식의 지배에서 벗어나 일과 사랑의 균형을 갖춘 사람이었다

니체는 힘의 의지로 자유를 쟁취한 위버멘쉬를 자유인으로 보았다


이제 인간의 자유는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천부적 권리'가 되었다

모두가 자유를 신성불가침한 권리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에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자유인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현대에서도 여전히 사람의 불평등은 심화되고, 인종적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자유를 신성한 것으로 보는 견해에 경계해야 될 점이 있다

어떤 권리도 절대화하고 신성한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자유를 신성한 무엇으로 만드는 순간, 자유의 이름으로 불합리한 행동과 폭력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권리는 사람들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확정되어 갈 뿐이다

자유권을 인간사회에서 창조된 권리로 인식하는 것은 절대화, 신성의 늪에 빠지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인간의 모든 권리는 사람들 간에 합의하고 조정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자유인은 특정한 모습으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살아가는 사회적 환경에서 합의되고 조정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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