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존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필수적이다
경제적 환경은 개별 사람들의 능력에 맡기기보다, 사회가 함께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류 문명이 발생한 이후 가장 오래된 고통은 빈곤과 질병이었다
인간이 출현한 이후부터 생의 문제는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 왔다
그런데 문명이 발생한 이후부터는, 대규모 사회 속에 생존하는 문제가 개인들에게 맡기게 되었다
사람은 자연 속에서도 홀로 살아온 적이 없었고 항상 집단속에서 생존해 왔다
문명과 도시가 발생하면서 생존은 각 개인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현대에 이르러 복지가 제도적으로 도입되었지만, 아직도 각자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이 있었다
일반 국민들의 가난한 살림을 도와주기에는 왕의 절대적인 권력으로도 역부족이라는 말이다
가난과 재앙은 구별돼야 한다고 본다
재앙은 모두 협력해서 극복해야 할 과제이고, 가난은 상대적인 개념이고 경제적인 소외를 의미한다
헌법에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본권리가 있다고 정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국가가 개인들의 삶을 책임진다고 장담했던 사회주의 체제는 실패한 실험이 되었다
여전히 각자의 생존문제는 공동체 단위에서 해결해야 할 주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국민들이 먹고사는 경제문제는 고대에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요한 이슈였다
그리스의 고대 도시국가에서도 부의 불균등 문제가 중요한 개혁이슈였다
그리스 스파르타와 아테네, 로마 초기 신분투쟁시기, 중국의 묵가사상에서 경제적 평등이 중요한 목표로 등장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소위 먹고사는 문제는 토지에 대한 열망으로 분출되었다
고대그리스와 로마 공화정에서도 토지개혁을 통해 농민들의 빈부격차를 해결하고자 했다
농업국가인 그리스 스파르타에서도 빈부격차도 매우 심각했고 토지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했다
개혁가 리쿠르쿠스는 토지를 무상으로 공평하게 분배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토지를 일정한 크기로 분할해 스파르타 시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스파르타의 시민들은 철저한 금욕주의적 공동생활을 추구했다.
스파르타인은 모두 공동 식사를 해야만 했는데 공동 식사 비용 역시 개인들이 각자 부담했다
당시 그리스 도시국가들 중에서도 스파르타 식사는 맛이 없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모두가 ‘검은 국’에 부풀지 않은 보리 빵을 먹으며 살았다
BC 479년 스파르타가 이끈 그리스 연합군이 페르시아와 벌인 플라타에아(Plataea) 전투에서 페르시아를 격파했는데, 이때 스파르타의 왕이 페르시아인들이 차려 놓은 산해진미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런 욕심쟁이들, 이런 것을 먹으면서도 우리의 보리 빵을 빼앗으려고 쳐들어왔단 말인가’ 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스파르타는 모두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억제하고 검소함으로 사회를 유지한 측면이 있었다
고대 아테네에서도 솔론의 토지개혁이 단행되었다
소수 귀족들이 토지를 독점하게 되고, 토지를 잃고 빚에 허덕이는 농민의 불만이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아테네는 언제든 내전이 일어날 위기에 빠져들었다.
이때 아테네 시민들은 개혁가 솔론에게 전권을 맡겼다.
솔론은 부자들과 귀족들의 토지를 몰수하여 가난한 소농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대신 개혁의 첫 조치는 부채 탕감이었다.
농민들이 토지를 저당 잡히고 노예상태에 놓여 있었으므로 이들에게 빼앗긴 자유를 되찾아주는 일이 중요했다
농민들이 자신의 신체를 담보로 해서 돈을 빌릴 수 없게 만들었고, 저당 잡힌 농토도 농민들에게 돌려주었다
이런 솔론의 개혁에 대해 귀족이나 농민들 모두 만족하지 못했다.
귀족들은 자신들만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았다고 불평했고, 농민들은 빼앗긴 토지를 찾기는 했으나 귀족들의 토지를 나눠갖지 못해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불만에 차 있었다.
양측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토지개혁은 개인들에게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로마 공화정에서도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그라쿠스 형제들이 토지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라쿠스 형제는 로마 최고의 명문 귀족이었지만 평민들의 편에 서서 귀족들과 맞서 싸웠다
귀족들의 토지 독점을 제한하고, 공공토지를 평민들에게 제공하려는 시도였다
대농장을 경영하던 귀족들에게는 자신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것이어서 그들의 반발이 거셌다
그라쿠스 형제들은 귀족들에 의해 살해되었고 토지개혁도 좌초되었다
호민관의 자리에 오른 그라쿠스 형제들의 토지개혁이 좌초되면서, 공화정의 기본 원리도 무시되었다
원로원은 호민관을 제거하였고 추종세력들을 철저히 무력으로 짓밟았다
로마는 시민들의 경제적 몰락에 직면하게 되면서, 공화정의 균형 원리는 깨져 버렸다
부의 독점은 권력 집중으로 이어지고, 고대 로마 자유주의도 붕괴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중국에서도 사람들의 경제적 기초를 최우선시하는 집단이 존재했다
묵자가 주도한 묵가라는 집단이다
묵가는 전국시대 가장 유력한 학파였고, 대중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유교를 발전시킨 맹자는 당시 중국에서 '묵자(墨子)와 양주의 사상이 천하에 가득 찼다'라고 탄식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양주의 사상은 개인을 가장 중심에 놓는 사상으로, '위아설(爲我)・이기주의'로 불리고 있다
자신의 생명과 신체를 가장 소중히 여기고, 천하를 이롭게 한다 해도 자신의 털 한 가닥 뽑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명예나 겉치레를 무시하고 실질적인 가치를 중시했다
양주사상은 묵가와 달리 극단적 개인주의를 취해 상반되는 입장이었지만, 전국시대에는 묵자 사상과 함께 가장 대중적인 사상이었다고 한다
묵자의 핵심사상은 겸애(兼愛)와 교상리(交相利)로 압축될 수 있다
겸애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박애(博愛), 불교의 자비(慈悲)와 비슷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겸애는 서로 사랑하라는 정신적 의미가 아니다
겸애는 현실에서 상호 이익과 결부되는 개념이다
사회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평등하게 제공하는 것이며, 이를 위한 사회체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대 중국사회에서 사람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해석한 사조였다
묵자의 사상은 경제적 이익, 물질적 이익을 중심에 놓고 전개된다.
민중이 겪는 고통은 세 가지 고통으로 삼환(三患)이라고 하였는데, ‘추운 자 입지 못하고, 일한 자 쉬지 못하고, 배고픈 자 먹지 못한다.’고 했다.
묵자는 사람의 의식주 문제 해결을 가장 중시했다.
당시 공자의 유가에서는 사람들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면 정치적 질서가 무너지고, 공동체의 의로움이 사라진다고 했다
묵자는 유가사상과는 정반대로 의(義)란 경제적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라고 주장했다
‘의(義)’는 정당한 기준에 따라 분배되고 공유하는 이익이라는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은 그들이 생산하는 이익과 생산물을 공유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독점하고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은 불의(不義)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다
묵자의 의로움은 사회체제에도 적용된다
세상을 다스리는 데 있어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을 의정(義政이)라고 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을 역정(逆政)이라고 구분한다
의정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공격하지 않고, 큰 집안이 작은 집안을 빼앗지 않으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강탈하지 않고, 귀한 자가 천한 자를 업신여기지 않으며, 꽤 많은 자가 어리석은 자를 속이지 않는 것이다.
역정은 이와 반대로 하는 것이다.
인간세계에 존재하는 왕과 통치체제도 의로움을 구현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견해이다.
하늘이 왕에게 권위와 권력을 부여한 이유는 인간 사회의 의로움을 구현하라는 의미이며, 의정이 곧 천명(天命)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묵자는 전국시대 전쟁과 가난으로 가장 고통받고 유린당한 사람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것이다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근원을 물질적 이해관계에서 찾았다
인간의 조건은 경제적 자유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경제적 생존을 보장하지 않고서는 자유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고 보았다
현대에서도 우리 사회의 정치적 이슈 중에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말은 민생이다
모든 정치의 출발은 민생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일 것이다
그럼에도 흔히 민생 이슈는 권력자들이 정쟁을 하면서도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용된다
민생이 전면에 등장하는 시기는 대체로 정치세력 간 극심한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이다
정치가 본업인 민생과는 상관없는 말이 되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국민들에게 물질적 기초를 제공하는 정치는 중국의 고대 묵가사상에서 배워야 할 것 같다
동양에서 이상적인 토지제도로 정전제(井田制)가 있었다
고대 중국의 주나라 때에 실시된 제도로 알려져 있고, 토지의 이상적인 분배 방식으로 삼았다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에서도 유교의 이상국가인 주나라의 제도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토지문제를 개혁하고자 했었다
정전제는 정방형의 토지를 우물 정(井) 자형으로 9 등분하여 8 가구가 제각기 사전(私田)으로 경작하게 하고, 중앙의 토지는 공전(公田)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물은 모두세금으로 나라에 바치는 제도였다
정전제의 핵심은 1/10의 수조세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있다고 판단했다
세금의 상한선을 1/10로 정하는 것이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농업생산성이 거의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10%를 넘는 세금은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중국역사에서는 실제로 정전제를 실행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한나라 통치 중간에 잠시 신나라(新, 8년~23년)가 들어서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이 정전제를 시행하였다
한나라는 전한 과 후한으로 구분되는데, 전한 과 후한의 사이에는 존속기간 15년의 신나라가 존재했다
왕망은 유교의 이상 국가 주나라를 현실에 재현하려 했던 복고주의적 개혁을 실행했다
그는 먼저 토지국유화와 노예제개혁을 실행하였다
한나라 당시에 토지는 왕실과 귀족들의 대지주들이 대부분 소유하고 있었고 농민은 토지로 이탈돼 유리걸식하는 신세였다
<한서>에는 "배고파서 죽고, 죽어도 묻히지 못했으며, 개와 돼지들에게 먹혔고, 사람이 사람을 서로 먹었다." 살아남은 농민은 기본적으로 모두 노예로 전락했다고 전한다
왕망의 토지개혁은 바로 토지를 국유로 하여 정전제 원칙에 따라 농민들에게 나눠주어 경작하였다
일정한 세금을 납부하게 하며 토지매매는 허용하지 않았다
노예제개혁은 바로 노예매매를 허용하지 않고, 노예를 '사속'으로 바꾸는 것이다
두 가지는 가장 민심을 얻었지만 실행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농민들이 토지를 나눠 받은 후에는 농기구 같은 생산도구가 없어서 경작할 수 없었다
지주들은 토지를 경작할 고용농이 없어져서 일거에 많은 토지가 황무지로 변했다
두 가지 제도는 3년간 시행하다가 폐지되고 말았다
왕망은 문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중적 인기를 배경으로 왕위를 찬탈하고 새로운 국가를 세웠다
정작 유교 이상을 적용하여 개혁을 추진했지만 기득권의 반발에 부딪혀 실패하고 말았다
현실의 여러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고 이상적 개혁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결과이다
서기 23년 왕망은 반란군에 의해 살해되었고 신나라는 15년 만에 멸망했다
전통적인 유교층에서는 황위를 찬탈한 '역적'으로 평가받는다
중국 4대 역적을 일컫는 '망탁조의(莽卓操懿)'를 꼽는데 첫 번째 인물로 꼽힌다
조선의 유교에서는 왕망과 동탁, 조조와 사마의를 사문난적으로 취급했다
스스로 신(新) 나라를 세워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유교의 핵심 가치인 '충(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망은 이상적인 사회개혁가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본다
정전제 이상은 조선시대 정약용도 토지제도 개혁방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자신의 저서 경세유표에서 정전제를 실현가능한 토지제도로 보았다
정전제를 비판하는 유학자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였다
정전제의 9분의 1 세법을 원용하여 이를 실시할 것을 주장했다
정전제는 조선시대 당시에도 실시 가능한 정책이라고도 했다
모든 토지를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구획을 하는 것이 아니고, 산골짜기의 논밭처럼 정(井) 자 모양으로 획정이 불가능한 곳에서는 계산상으로만 같은 넓이의 9구역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약용의 정전제론에서 또 하나 중요한 원칙은 토지국유제이다
농민들은 8개 구역의 경작권만을 가질 뿐 소유권은 갖지 않았다고 보았다
정약용의 토지개혁 역시 이상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기존 왕실과 집권양반층의 기득권을 제압할 혁명적인 사회변화가 선행되어야 했다
농민들의 토지 소유 욕망을 무시하고 국가소유제로 대체한 것도 이상적 측면이 있었다
유교가 성행하던 동아시아지역에서는 주나라 정전제가 토지개혁의 이상으로 거론되었다고 할 수 있다
토지를 잃고 빈곤의 나락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평민들의 이야기는 단지 고대의 먼 이야기가 아니며, 가장 문명이 발달한 미국의 20세기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기 농민들이 경작하던 토지에서 추방되고, 많은 대도시 빈민들이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1940년대에 개봉한 옛날 영화 '분노의 포도'는 당시의 실상을 잘 묘사하고 있다
분노의 포도는 미국의 작가 존스타인벡이 1939년에 발표한 소설이고, 그는 이 소설로 노벨문학상(1962년)과 퓰리쳐상을 수상했다
주인공 톰과 가족들은 1930년대 미국 오클라호마주에서 땅을 일구며 살던 사람들이었다
대가족이었던 그들은 부모와 형, 남동생, 여동생 부부 등 12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대공항이 닥치고 자연재해가 겹치면서 토지를 잃고 부채에 시달리는 농민들과 별반 다름없었다
토지는 은행들이 독점하게 되었고, 대규모 기계경작이 도입되면서 농민들은 토지에서 추방되어 강제로 내몰리는 신세가 되었다
톰과 가족들은 고향을 버리고 서부 캘리포니아로 향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고난이 시작되고 가족들은 차츰 해체되어 간다
서부로 가는 길은 2천 마일이 넘는 긴 여행이고, 6인승 차량에 12 사람의 사람과 살림 세간살이를 모두 실고 출발했다
서부로 가는 길에는 똑같은 처지에 놓인 수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톰의 가족들도 서부로 가면서 점차 가족들이 사라져 간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고향을 떠나면서 아프기 시작하고 결국 가는 도중에 세상을 떠났다
톰의 형은 홀로 강가에 살겠다면서 자기 갈길을 찾아서 가족을 떠나간다
여동생의 남편도 기술을 배우겠다면서 임신한 아내를 버리고 갔다
아버지는 고향에 대한 생각과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무기력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농촌에서 이탈된 가족들은 점차 해체되는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엄청난 고생 끝에 도달한 약속의 땅 캘리포니아에는 더욱더 큰 불행이 기다리고 있다
톰의 가족들은 이주자들이 모여사는 야영지에 겨우 몸을 기댈 곳을 만든다
캘리포니아에서는 기대와 달리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고, 대지주들은 극단적인 저임금 체계로 사람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있었다
서부의 거대한 농장에서는 오렌지와 포도가 넘쳐나지만, 땅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최소한의 생활도 보장받지 못한다
톰의 가족들은 복숭아 농장에서 일하는데, 그들이 버는 돈은 겨우 1달러 밖에 되지 않았다
톰은 여기서 보완관을 폭행하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그의 가족들과 함께 오클로하마에서부터 동행한 케이시 신부가 톰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연행된다
그 후 케이시는 대지주들의 횡포에 맞서 노동자들이 단합해야 한다면서, 단결된 행동을 선동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지주들의 무리들에 의해 케이시는 살해된다
이 장면을 목격한 톰은 분노에 사로잡혀 케이시를 해친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이 사건 이후 톰은 가족들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자신은 케이시가 한 것처럼 대지주들의 임금담합에 맞서 노동자들을 설득할 것이라고 말한다
톰이 어머니와 헤어지면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사방에 있을 것이에요. 배고픈 사람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싸울 때에 거기에 있을 겁니다.
경찰이 사람이 때릴 때에도, 사람들이 화가 나서 고함을 지를 때도 거기에 있을 거예요"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 대공황을 겪은 사람들의 격한 공감을 불러왔고 단번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39년 퓰리쳐상을 받았고, 사실주의 작가로 높이 평가받았던 존타인 벡은 196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미국 대공황시기의 농민들의 모습은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 토지를 잃고 부채에 허덕이는 고대 농민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미국에서 대공황이 지나고 인간의 자유에 대해 말한 유명한 연설이 있었다
프랭클린루스벨트 대통령은 1941년 1월에 발표한 연두교서 연설에서 '4대 자유'에 말한다
첫 번째로 언론과 의사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 and expression),
두 번째로 신앙의 자유(Freedom of worship),
세 번째로 결핍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want),
네 번째로 공포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fear)를 언급했다.
세계인권선언의 전문에 "인간이 언론과 신앙의 자유, 그리고 공포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세계의 도래가 모든 사람들의 지고한 열망으로서 천명되어 왔으며,…"라는 구절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네 가지 자유를 반영한 것이다
'4대 자유' 가운데 가장 근본이 것은 사람의 생존과 직결되는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일 것이다
세계인권선언 제25조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의식주, 의료 및 필요한 사회복지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실업, 질병, 장애, 배우자 사망, 노령 또는 기타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인한 생계 결핍의 경우에 보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어머니와 아동은 특별한 보호와 지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아동은 적서에 관계없이 동일한 사회적 보호를 누린다.”
인간이 공동체를 통해 최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문제는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즉 경제적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대공황을 겪었던 미국 사회의 모습은 현대에서도 자유의 기초는 경제적 생존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미국에 넘쳐나던 아메리칸드림은 점차 몰락해 갔고, 미국인들은 점차 분노하며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집권한 지도자가 프랭클린 루스벨트대통령이다
정부가 국민들의 소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회의 안전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으로 번진다.
루스벨트는 자유방임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새로운 정책 ‘뉴딜(New Deal)’을 제시했다.
당시의 자유는 국가가 개인과 기업의 활동을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자유방임주의와 맞물려 있었다.
자유방임주의는 시장의 자유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에 정부의 경제 개입에 반대한다는 원리에 집착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겪고 있는 실업과 빈곤은 자유를 누리는 대가인 셈이다.
국가는 경제에 개입할 수 없고, 사람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나서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상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자유방임주의 이념이나 가치가 무슨 설득력을 얻을 수 있겠는가.
1933년 3월 루스벨트가 취임했을 때, 미국은 역사상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었다.
천만명이 넘는 실업자들을 구제해야 했고, 농산물 가격은 60%까지 떨어져 농부는 농산물을 내다 팔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처지였다.
뉴딜 정책의 핵심은 정부가 빚을 내 공공복지 사업을 벌여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다시 수입이 생긴 사람들이 그 돈을 소비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루스벨트는 경제에 적극 개입해 경기 부양에 나선다.
가장 먼저 농산물의 과잉생산을 규제하는 농업조정법을 시행하여, 수급을 조절하고 가격 폭락을 막았다.
농가 수익을 높여 그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고, 농사일을 하지 않는 농민에겐 정부가 보조금을 줘 생계를 지원했다.
제조업도 과잉생산을 차단하기 위해 생산량을 조정하는 산업부흥법을 제정했다.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 등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키고,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고 노동자들의 구매력을 늘려 경제를 살리자는 것이다.
그는 노동자 권익을 보호했고, 1935년에는 사회보장법도 만들었다.
뉴딜정책을 시행한 지 4년 만에 미국의 GNP는 대공황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고, 60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루스벨트가 뉴딜정책을 추진할 당시 든든한 지원그룹은 젊은 경제학자들이었다고 한다.
케인즈이론을 지지한 이들은 자유방임주의와 완전히 반대편에 있었다
노동자들에게 노조결성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주었고, 실업급여와 연금 등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었으며, 소득세, 법인세, 상속세 등 각종 세금을 대폭 인상했다.
젊은 경제학자들 중 하나였던 갈브레이드는 훗날 그때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고 한다.
“우리는 평화적으로 세상을 개혁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케인즈 사상에 끌린 것도 우리의 보수적인 성향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케인즈 이론을 주장하면, 사람들은 우리를 위험한 급진주의자라고 비난했지요.”
이들 경제학자들은 보수주의자들에게서 공산주의자, 혹은 나치라는 욕을 들었다.
이념이나 특정이론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자신의 신념과 이론과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면 그들에게 적대적 성향을 보인다
과거에 수없이 쏟아냈던 말과 행동들을 모두 부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주장이 옳다고 해도, 이들은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는다
그 대신 현실을 부정해 버리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찾는데 노력한다
소위 인지부조화 현상의 대표적인 결론이다
거시경제이론이 나오고 수정자본주의라는 개념이 나온 것은 뉴딜 정책의 결과이다.
당시 자유방임주의자들에게는 새로운 정책이 어떤 이념에 가까운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였지만, 사람들의 절박한 상황과는 무관한 주장이었다
사람의 자유는 사회에서 생존해야 하는 절박한 문제에서부터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최소한의 경제조건은 무엇인지에서부터 생각해 본다
개인의 소득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자산에서 얻어지는 소득과 일해서 번 소득,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소득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해서 번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자산소득으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며, 사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은 정부 지원으로 생존하고 있다
복지체계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며, 약자와 함께 동행하는 것이다
복지체계는 빈곤과 질병에 빠진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을 의미한다
현대사회에서는 복지 지원을 넘어서 국민들에게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아직 실험단계이지만 기본소득제 도입이 제기되고 있다
사회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우리는 국민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대담한 구상이 필요하다
늘어난 복지예산만큼 우리 사회 절대빈곤층이 사라졌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기초생활수급자는 2023년 11월 말 기준으로 255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소득과 자산이 없어 정부의 지원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국민들 가운데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사람들은 훨씬 비중이 늘어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10년 동안 정부예산은 400조가 늘었다
공무원과 예산을 늘리지 않았다면 매년 4천만 명에게 천만 원씩 지불할 수 있는 돈이다
해마다 400조를 늘려 우리 생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돌아봐야 한다
복지예산은 늘어나지만 복지 관련 공무원의 숫자가 증가하고, 각종 복지사업을 집행하느라 수많은 인프라가 구축된다
정작 국민 각 개인이 체감하는 복지혜택은 얼마나 증대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각 가족수에 맞춰 현금으로 매달 지급할 수 있다면, 각자가 알아서 빈곤과 질병에 대처할 능력이 그만큼 커질 수 있다
기본 소득에 각자의 소득을 합하면 훨씬 잘 사는 사회가 아닐까 생각된다
무엇을 하든 개인의 선택에 맡기고 정부는 뒤편으로 물러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제 선택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한다
국민들이 정부의 기능을 최소화하고 기본소득을 선호할지, 현재의 사회복지제도를 유지하면서 정부의 낭비를 방임할 것인지 갈림길에 마주할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빈곤과 질병문제가 한꺼번에 몰려온 것은 코로나대유행이었다
그러나 이미 코로나대유행이 시작되기 이전에도 빈부 간 소득격차는 커지고 있었고, 하위 20%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말 소득격차는 역대 최악이었다.
하위 20%에 해당하는 국민들은 소득이 무려 17.7% 줄어들었다.
소득 상위 20%에 해당하는 계층은 소득이 10.4%가 늘어 빈부격차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근로소득에서 엄청난 격차가 벌어진 이유는 '고용쇼크'가 소득감소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 소득부문 결과‘이다
소위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 분위 배율은 5.47배이고, 사상 최대치이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 분위 배율은 상위 20% 소득과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양계층간 소득차이를 나타낸다.
소득 하위 20%인 1 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23만 8000원으로 전년동분기 150만 5000원보다 무려 17.7%(26만 7천 원)가 감소했다.
처분가능소득도 전년보다 19.5%나 감소했다
처분가능소득은 가구의 소비여력을 나타낸다.
소득이 줄고, 소비에 쓸 여윳돈마저 줄어들어 최저생계도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소득 상위 20%인 월평균 소득은 932만 4000원으로 전년동분기 845만 원보다 87만 5000원(10.4%) 증가해 역대 최고 소득증가율을 기록했다.
한국사회는 점점 불평등구조가 심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노인들의 빈곤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2020년 기준으로도 노인 10명 중 4명이 빈곤 상태이고, 나이가 많을수록 빈곤율도 더 높았다.
OECD가 공개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 보고서를 보면, 2020년 한국 66살 노인 인구의 빈곤율은 40.4%로, 37개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회원국의 평균 노인 빈곤율이 14.2%로 한국의 3분의 1 정도다.
(노인 빈곤율 : 노인 중에서 가처분소득이 전체 인구 기준중위소득의 50% 이하인 사람의 비율)
노인문제해결에서도 기본 소득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이 심각하게 진행되었지만 구체적 실행방안이 강구되지 않았다
기본소득은 전 국민에게 동일하게 기본소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기존 사회복지제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접근법이었다
예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을 우려하여 포퓰리즘으로 취급한다
현재 정부예산 구조와 공무원제도를 유지하면서 기본소득에 필요한 돈을 추가 투입하기 어렵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더구나 AI시대가 오면 각 개인마다 AI 행정서비스가 일반화되고, 상당수 공무원은 AI로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이다
비대한 관료제도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거대한 예산을 집행하는 거대한 조직 체계와 공무원들을 줄여야 한다
정부가 공무원 수를 증가시켜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낭비가 심한 구조이다.
정부 예산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소위 복지 관련 예산이다.
2023년 정부예산규모 약 639조 가운데 복지 고용 등 사회복지 관련 예산은 약 220조에 이르고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복지예산의 상당 부분은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폐지될 수 있는 정책이다
정부가 알아서 나눠주는 정책은 낭비가 심하다
기본소득을 제공하고 각자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미래 산업구조의 변화를 예측하면 기본소득제 도입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게 되면 점점 더 인간의 노동이 필요한 것은 줄어들게 되고, AI가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서 전문직 영역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각종 사회보장 정책은 모두 통합해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는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수많은 복지정책에 들어가는 행정비용이 줄어들고 그 대신 일정액을 돈으로 지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물론 필수불가결한 일부 정책은 남겨둘 수밖에 없다
돈이 부족하거나 더 큰 소득을 원하면 일해서 벌어야 한다
기본소득제도는 재산, 소득, 고용 여부 및 노동 의지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최소 생활비를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소득계층별로 차별 지급하는 문제는 사회적 합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소득이 부족한 빈곤층에게 최소생계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기본소득제를 시험해 본 국가가 있다
핀란드에서는 2015년 설문조사를 통해 국민의 약 69%가 무조건적 기본소득에 찬성하여 시범 실시 중이다.
임의로 선정된 실업자 2000명을 대상으로 2년간 월 560유로(한화 약 7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했다.
그리고 2019년 실험결과를 발표했는데, 기본소득제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다.
기본소득제가 고용시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지 못했다며 실험을 ‘실패’로 평가한 사람들이 많다.
기본 소득이 노동 동기를 부여하지 않았고, 고용시장에서 당근과 같은 효과는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실험이 성공적이라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행복도가 높아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본소득제가 노동을 장려하고 고용을 증대시키기 위해 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기본소득제는 모든 국민에게 빈곤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는데에서부터 논의가 시작되어야 하고, 선별적 사회보장 대신 모든 국민에게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 프랑스와 네덜란드, 캐나다에서도 기본소득제 도입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사람은 한 번도 자연 속에서 개인 혼자서 삶을 살아온 경험이 없다
6백만 년 전 인류가 새로운 종으로 분리되었을 때에도 인간은 집단생활을 통해 생존했었고, 문명이 발생한 1만 년 전부터는 대도시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인간은 한 번도 홀로 생존하지 않았고 지금도 국가단위로 집단을 이루고 생활하고 있다
사람들의 자유는 집단생활 속에서 가능해야 하며, 집단 속에서 개인이 생존하고 생활하면서 닥치는 문제이다
자유와 개인주의는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국가 단위의 공동체가 구성원 모두의 생존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