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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분화구, 환상적 소사나무숲길의 다랑쉬오름

오름의 여왕 다랑쉬오름을 오르다

by 제주 스토리 작가

제주도의 오름 368개를 다 가보려면 365일 매일 가도 3일이 모자랍니다

그만큼 오름의 개수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다 오른다는 것은 욕심이고, 탐방로가 제대로 지정이 되지 않은 곳도 많기 때문에 368개를 다 오른다는 것은 쉽지 않죠

제주도에 사는 저도 이제 100개 정도의 오름을 탐방했습니다

지인들이 놀러 오면 어느 오름이 좋은지? 몇 개의 오름을 올라야 되는지? 물어볼 때마다

3박 4일 여행 왔을 때 3곳 정도의 오름 투어만 해도 오름을 느끼기에 충분하니
3~5개 정도 오름을 알려줍니다

그중에서 선택해서 가면 되거든요

회사에서도 5개의 오름을 해설하고 있는데, 제주도 여행 와서 '5개 오름 도장 깨기'
한다며 일부러 여행 오시는 분도 꽤 있답니다

그렇게 제주도에 여행 올 때마다 오름의 개수를 차곡차곡 늘려 가면 되는 거죠

어떤 오름이 제일 좋아? 묻는다면?

다랑쉬오름, 따라비오름, 금오름, 저지오름, 새별오름, 왕이메오름, 성산일출봉,
백약이오름, 용눈이오름, 군산오름, 영주산, 송악산, 아부오름,
수월봉 당산봉(한 코스), 윗세오름 까지 15곳의 오름을 알려줍니다

여행객 입장에서 난이도가 높은 오름은 뺐는데, 윗세오름은 도저히 뺄 수가 없었어요
물론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위의 오름들을 올라가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겁니다

오름의 여왕이라는 다랑쉬오름부터 만나볼까요?

2~3년 전부터 딸들과 제주 여행을 올 때 어느샌가 오름을 코스에 하나둘씩 넣고 있었어요

제주에 힐링하러 오고, 쉬러 오는 건데 액티비티는 싫어했던 나였는데 말이죠
그렇게 시작한 오름의 첫 경험은 도두봉!

도두봉의 난이도가 쉬워

오름은 갈만한 곳이구나 생각하고
다음 여행 코스에도 오름을 넣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이 심사숙고해 고르고 고른 오름은 다랑쉬오름!

‘오름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보고 선택!
높이가 해발 380미터가 넘었지만 패기 넘치게 가보고 싶었습니다
오름의 여왕이라 하지 않는가?

제주 동북쪽에 있는 구좌읍 송당리 일대는 드넓은 들판에 가장 많은 오름이 있어
‘오름의 왕국’이라고 불립니다
송당리 일대로 들어서자 다양한 크기의 오름의 능선들이 겹겹이 펼쳐져 있어 시선을 빼앗습니다

그중 제주 동쪽에서 ‘높은오름’ 다음으로 가장 큰 오름이 바로 다랑쉬오름입니다

멀리서 봐도 굳건한 자태로 능선이 우아하게 뻗어 있어,
오름을 오르기도 전에 요즘 아이들 말로 기대 뿜뿜입니다

최근 유명 새를 타고 주차장과 화장실 시설, 그리고 탐방로까지 잘 조성되어 있어
오름 탐방하기에 딱 좋은 곳!

다랑쉬오름은 산봉우리의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한자로
월랑봉(月廊奉)이라고도 불립니다

오름의 대가 김종철 님의 [오름 나그네]라는 책에

“비단 치마에 몸을 감싼 여인처럼 우아한 몸맵시가 가을 하늘에 말쑥하다”라는 표현이 있어요

평소 다랑쉬오름에 오를 때 위 표현이 딱 맞다 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오름의 맵시가 깔끔하고 세련되다고 해야 하나? 군더더기가 하나 없이 매끈하죠
오름 초입부터 100여 미터의 나무 계단을 올라가는데 양 옆으로 삼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예전 박정희 정부 시대부터 심었던 나무들인데 오름 어귀에만 삼나무가 있고,
중턱 위로는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합니다
첫걸음이 삼나무로 둘러 쌓여있어

시원한 피톤치드 향을 맡으며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어 좋죠
잘 깔려 있는 야자매트를 따라 걷다 보면

다랑쉬오름과 닮은 작은 오름 하나가 보이는데요

바로 ‘아끈다랑쉬오름!’

‘아끈’은 작은, 버금간다는 뜻의 제주어로
작은 다랑쉬오름, 다랑쉬오름에 버금가는 오름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조금밖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아끈다랑쉬오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둥근 원형 분화구가 귀엽고 아담합니다

아끈다랑쉬오름은 특히 가을에 새별오름 못지않게 많은 억새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을이면 탐방객들이 넘쳐납니다

양 옆으로 억새가 호위하듯이 펼쳐져 있는 분화구 둘레길을 걷다 보면 저절로 황홀해 지는데요

살짝 힘들어지는 찰나 아끈다랑쉬오름의 전경을 보며 쉼을 갖고 다시 올라갑니다

이후 다시 나무 계단을 올라가게 되는데 정상의 둘레 길을 가기 전까지

철쭉나무들이 점령하고 있어 4월 말 철쭉 시즌이 되면 커다란 철쭉나무가 분홍 터널이 되어 탐방객들을 반겨 줍니다

땅에 떨어져 있는 철쭉꽃을 밟기가 아까워 살살 걸었던 적이 있는데
나무들이 워낙 커서 꽃들이 크고 색깔도 예뻤어요

분홍 색감에 취해 꽃들과 사진 찍기에 바쁩니다

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않나요?

천천히 오르다 보나 파랗게 말간 하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정상이 가까워 오는 것이죠!
30여분 올랐을까? 정상으로 향하는 둘레 길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숨을 돌리며 물 한잔 마셔 봅니다

운동 부족인 분들은 헉헉 거리며 올라야 하는 높이지만 쉬엄쉬엄 뒤도 한번 돌아보고
주변에 꽃들도 관찰하면서 걸으면 갈 수 있는 곳이니 너무 겁먹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곳에서 잠시 마을 전경을 바라봅니다
마을로 시선을 옮기니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 마을 터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다랑쉬 마을은 제주 4.3사건 때 전소된 마을로 10여 채의 가구에 40여 명이 살았던 곳이었는데,
1992년 다랑쉬 굴에서 11구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4.3의 아픔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제주 4.3 평화 재단에 가면 유해가 발견된 다랑쉬굴을 그대로 재연해 놓았는데,
그때 사용하였던 항아리, 그릇, 솥 등이 남아 있어

당시의 참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제주 4.3사건은 제주 곳곳에 아픔을 심어 놓아 이야기가 떠오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자~~ 이제 분화구를 보러 가봐야겠어요
왼쪽과 오른쪽 갈림길이 있는데, 힘들게 올라왔으니 이제 편안한 탐방길을 걸어야 되지 않을까요?
그런 이유로 왼쪽 길로 갈 것을 추천합니다

분화구 둘레 길과 정상은 어차피 돌고 돌기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 가도 상관이 없습니다

왼쪽으로 추천하는 이유는 길이 편안한 것도 있지만
제가 다랑쉬오름에 가는 첫 번째 이유인 소사나무 숲길을 빨리 만나보게 하고 싶은 부분도 있습니다

꽤 길게 펼쳐진 소사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잠시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답니다

봄에는 초록 잎사귀들이 무성한 오솔길을 걷는 게 행복해서 좋고, 겨울이 되면 회갈색의 가지들이 뒤엉켜 있어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이어서 좋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하얀 안개가 잔뜩 긴 소사나무 숲길을 걷는데, 꿈속에서 신선이 되어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어요

그날 이후부터 다랑쉬오름 분화구도 멋있지만
소사나무 숲길은 꼭 가봐야 한다고 적극 추천하게 되었습니다
소사나무 숲길을 걷는 뒷모습을 사진에 담으면 그 역시 인생 샷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소사나무 숲길에서 빠져나와 조금만 오르면 왼쪽으로 동쪽 오름 군락들은 물론 한라산까지 보입니다
지미봉, 은월봉, 말미오름, 성산일출봉, 손지 오름, 용눈이오름, 손지봉,
동거미오름, 백약이오름, 높은오름, 돌오름, 둔지봉, 알밤오름 등 다 열거하지도 못하겠어요
그만큼 다랑쉬오름이 높은 겁니다

이곳에서 동쪽의 많은 오름들이 각기 다른 모양으로 봉긋봉긋 올라온 모습이 흥미로워
오름 이름 맞추기 게임을 하기도 했었어요
지금도 저는 몇 오름이 아직도 헷갈린답니다

거기에 세화, 하도, 종달리, 성산까지 연결된 그림 같은 해안가 풍경을 보면서
오름 높이에 걸맞은 강한 바람에 몸을 맡기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자유인’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40여분 걷기 시작할 때쯤. 이제 분화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랑쉬오름의 하이라이트인 분화구!

다랑쉬오름은 단 한 번의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단성화산으로 커다랗고 둥근 원형 분화구를 갖춘 모습입니다

화구의 바깥둘레는 1,500m, 화구의 깊이는 115m로,
한라산 정상에 있는 분화구인 백록담보다 작긴 하지만 백록담과 비교가 될 정도로 큽니다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운 분화구를 본 분들은 모두 다랑쉬오름에 매료되어
다랑쉬오름의 찐 팬이 되어 돌아오게 된답니다
분화구를 자세히 살펴보면 맨 아래에 작은 밭담이 보이는데
예전에 분화구 아래에서도 농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오름을 올라오는 것도 힘든데, 분화구 아래까지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니,
당시의 고달픈 생활상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정상으로 올라가기 전에 분화구가 잘 보이는 곳에서 잊지 말고 사진을 꼭 찍어야 합니다

다랑쉬오름 최고의 사진 스팟이거든요

단점이 있다면 이곳의 바람이 세기 때문에 모자가 날라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되는 곳.
끈이 있는 모자를 쓰고 가길 적극 추천 합니다

벅찬 감동으로 분화구를 바라보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네요

제주도 여행 중이라면 멋진 분화구와 소사나무 숲길이 있는 다랑쉬오름을 직접 느껴보세요

#다랑쉬오름 #분화구 #소사나무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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