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에서 생존한 모잠비크 여성들의 이야기
2007년, 나는 모잠비크 북부 니아싸 지방에서 사용되는 현지어인 마꾸아어를 배우기 위해 가톨릭 신부님이 운영하는 언어 과정에 참여했다. 이곳에서의 2주는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시간을 넘어, 아프리카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가까이에서 마주한 특별한 경험이었다. 특히,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과의 만남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언어 과정은 마꾸아어 사전을 편찬한 신부님이 직접 강의하는 프로그램으로, 나를 포함해 세 명의 수강생이 참여했다. 교육 기간 동안 성당 내 기숙사에서 숙식했는데, 시설은 매우 열악했다. 조그마한 방에는 작은 탁자 하나와 바닥에 놓인 매트리스가 전부였다. 전기와 수도가 연결되지 않아 양초를 켜고 생활해야 했으며, 씻을 때는 플라스틱 드럼통에 담긴 물을 사용해야 했다. 밤이면 벌레에 시달려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마치 수도원에서 지내는 듯한 기분을 주었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신부님은 언어 교육 외에도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한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폭력에서 벗어난 여성들이 재봉틀과 양재 기술을 익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직업훈련은 성당 근처에서 이루어졌기에, 나는 수업이 끝난 후 이 여성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직업훈련을 받던 여성들과 나눈 대화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나는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았다. 가족사진을 인화해 주기 위해 찍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녀와 함께 사진을 찍었지만, 한 여성은 도망칠 때 자신의 아이를 데려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초록색 플라스틱 거북이 인형을 보여주며, 아이를 대신해 늘 이 인형을 품고 다닌다고 했다. 그녀는 인형과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사진 속 그녀는 초록색 거북이를 소중히 쥔 채, 그 눈빛 속 깊은 슬픔을 사진에 남겼다.
당시 나는 그녀가 겪은 아픔과 트라우마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후 한국에서 가정폭력 상담원 교육을 받으며 생존 여성들이 겪는 고통과 상처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에게 초록색 거북이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잃어버린 가족과 삶을 상징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이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다. 폭력을 피해 떠난다 해도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다. 많은 여성들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지만, 여성 단독으로 토지를 소유하거나 구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법적 보호와 경제적 자립의 기회가 부족한 상황에서 많은 여성들은 폭력을 견디며 살아갈 수밖에 없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도 발생한다.
유엔 여성기구(UN Women)와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친밀한 파트너 또는 가족 구성원에 의한 여성 살해율을 기록하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약 85,000명의 여성이 살해되었으며, 이 중 60%인 51,100명이 친밀한 파트너 또는 가족 구성원에 의해 살해되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이러한 살해율이 100,000명당 2.7명으로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다. 또한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평균 140명의 여성이 친밀한 파트너 또는 가족 구성원에 의해 목숨을 잃고 있으며, 이는 아프리카 내 여성들에게 집이 안전한 장소가 아님을 드러낸다.
모잠비크를 포함한 남부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성적 및 신체적 폭력이 매우 흔하며, 일부 국가에서는 최대 70%의 여성이 젠더 기반 폭력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폭력은 사회적 불평등과 법적 보호 부족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여성과 소녀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을 받을 기회, 토지를 소유할 기회, 농사 기술을 배울 기회, 지역사회에서 권한을 가질 기회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와 지역사회는 협력하여 법적 보호 체계를 강화하고 경제적 자립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직업훈련과 같은 실질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교육과 권리 의식을 높이는 캠페인이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진다면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난 여성들이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날 찍은 사진 속, 초록색 거북이를 꼭 쥔 그녀의 눈빛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녀와 같은 여성들이 더 이상 폭력에 희생되지 않고, 온전한 자유와 스스로 삶을 선택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국제기구, 각국 정부, 시민사회가 협력하여 법적 보호 체계를 강화하고 젠더 기반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