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10대 임신이 자신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수많은 소녀들에게 임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유엔인구기금(UNFPA)과 세계은행에 따르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청소년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2022년 기준 매년 1,000명의 15~19세 소녀 중 평균 약 94명이 출산한다. 이는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52명)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이며, 특히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163명에 달해 세계 평균인 39명의 약 4.2 배에 이른다. 이처럼 아프리카의 소녀들은 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어린 나이에 결혼이라는 ‘선택 아닌 선택’을 강요당하게 된다. 그렇게 소녀들의 미래는 너무 쉽게 꺾이고 만다.
청소년 임신은 대부분 계획되지 않은 채 발생한다. 이러한 10대 임신은 단순한 실수나 방심의 결과가 아니다. 빈곤은 소녀로 하여금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생리용품 하나 사기 어려운 현실, 통학비조차 없어 집에 머무는 일상 속에서 일부 소녀들은 생존을 위해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남성과 거래적 성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것은 로맨스도, 자율적인 관계도 아니다. 오직 살기 위한 절박한 선택일 뿐이다. 경제적 요인뿐 아니라, 문화적 관습 역시 청소년 임신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구체적으로 동·남아프리카 지역의 일부 공동체에서는 ‘신부값(lobolo)’과 같은 문화적 관행이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어린 소녀를 조혼시키는 유인책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해로운 관습은 소녀의 자율권을 박탈하고 빈곤의 악순환을 반복하게 만든다.
COVID-19는 이와 같은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팬데믹 동안 많은 국가에서 학교가 폐쇄되었고, 특히 케냐, 우간다, 르완다, 모잠비크 등 동·남아프리카 국가들은 7개월 이상 장기 휴교에 들어갔다. 장기 휴교 동안 학교는 더 이상 소녀들을 보호하는 공간이 되지 못했고, 그 결과 수많은 소녀들이 임신하거나 조혼을 강요받는 일이 벌어졌다. 케냐에서는 학교 폐쇄 후 단 3개월 만에 15만 명이 넘는 10대 소녀가 임신했다는 충격적인 통계도 발표되었다.
학교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다. 소녀들에게 학교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이며, 때로는 가정이나 지역사회보다 더 안전한 공간이다. 그러나 임신한 소녀는 ‘문제가 있다’는 사회적 낙인을 피하기 어렵고, 수업이 재개된 이후에도 학교로 복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여전히 임신한 소녀의 등교를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학업 기회를 상실한 소녀는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다리를 잃게 된다.
임신한 소녀는 종종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명목 아래 결혼을 강요받는다. 이른바 ‘조혼’이다. 특히 팬데믹으로 생계가 막막해진 상황에서는 신부값을 받고 미성년 딸을 시집보내는 일이 더욱 잦아졌다. 일부 부모는 이를 자녀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 믿지만, 그것은 결국 소녀의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0대 소녀들은 아직 출산을 감당할 신체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 시기의 임신과 출산은 산과 누공, 자간증, 감염 등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정신적으로도 큰 부담을 초래한다. 출산 이후에도 학업 복귀나 일자리 확보는 매우 어렵다.
이러한 일련의 문제는 한 개인의 불행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을 받은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더 많은 소득을 얻고, 출산율도 낮다. 교육은 소녀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한다. 반면 교육 기회를 박탈당한 소녀는 평생 낮은 소득과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는 단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구조적 과제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임신한 소녀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단순히 임신을 예방하는 데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이미 임신한 소녀들도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한다. 학업을 이어가고, 삶을 다시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예방이다. 남부 아프리카 개발 공동체(SADC)의 아동 결혼 근절을 위한 모범법(Model Law)은 지역 차원의 대응을 제시하며 희망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누구든 어디에서 태어났든,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소녀들에게도 그 권리는 당연하다. 소녀들이 다시 꿈을 꿀 수 있도록, 그 미래를 지켜주는 일이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