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벚꽃이 만개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준다. 살다 보면,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누군가의 호의와 헌신 덕분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지난겨울, 민주주의의 기반을 지키기 위해 앞장섰던 많은 사람들을 보며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들의 용기와 참여는 우리 사회가 위기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곧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정치적 위기나 자연재해는 익숙했던 일상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특히 그러한 위기는 사회의 취약한 지점, 그중에서도 여성과 소녀들에게 더 오래도록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기곤 한다.
회복력은 재난으로 무너진 삶과 시스템을 다시 일으키고, 공동체가 새롭게 나아가는 힘을 의미한다. 최근 정치적 위기와 산불 재난에서 우리 사회가 보여준 회복력은 성숙한 시민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이는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여전히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갈등들이 존재하는 만큼,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회복력은 우리 사회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시야를 넓히면, 전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는 재난과 위기가 다른 공동체들을 시험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와 같은 지역에서는 기후 재난과 분쟁이 빈번하고, 그 여파는 가장 약한 이들에게 집중된다.
빈곤한 가정의 여성과 소녀들은, 사회 안전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재난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가뭄이나 홍수처럼 반복되는 재난은 이들에게 삶의 기반 자체를 흔드는 사건이 된다. 회복은커녕, 살아남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펼쳐진다.
재난 속 여성과 소녀들의 현실
재난은 누구에게나 고통을 안기지만, 그 무게는 모두에게 같지 않다. 특히 여성과 소녀들은 재난의 충격에 더 취약하게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생존을 위해 더 많은 노동을 감당해야 하며, 평소라면 당연하게 여겨졌던 일조차 재난 상황에서는 몇 배의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음식이나 땔감을 구하는 일부터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의 의료 접근까지,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크게 흔들리게 된다.
생계 기반이 무너질 때, 상황은 더욱 절박해진다. 일부 가족은 극심한 빈곤 속에서 어린 딸을 신부값을 받고 결혼시키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전통이나 문화적 관행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마지막 수단처럼 여겨지는 현실이다.
또 다른 소녀들은 성적 착취에 가까운 위험한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먹을 것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가족과 공동체는 감당하기 어려운 선택 앞에 서게 된다. 이러한 결정들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삶의 기반이 무너진 구조적 조건 속에서 강요되는 생존 방식일 때가 많다.
2019년 모잠비크는 사이클론 이다이와 케네스에 직면하며 약 110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 농경지가 침수되고 생계 기반이 붕괴되면서 많은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았던 이들은 그나마 유지하던 삶의 토대를 잃었고, 다시 일어설 기회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런 조건에서 여성과 소녀들은 특히 더 극단적인 위험에 직면한다. 조혼이나 성적 착취와 같은 방식이 생존 전략으로 선택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그 피해는 현재를 넘어 이들의 미래와 존엄까지 위협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변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여성과 소녀들을 지원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으며, 필자 역시 아프리카 지역에서 진행 중인 ‘여성 청소년의 성 건강과 자립 역량 강화’ 프로젝트 조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중 "달빛 클리닉"은 성매매에 노출된 여성 청소년과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야간 보건 서비스와 피임 도구를 제공하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단지 긴급한 지원에 그치지 않고, 여성들이 자기 삶의 선택권을 갖고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혼모 대상 농업 교육 프로그램은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기술을 익히도록 돕는 동시에, 자립의 경험을 쌓고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에게 농업 기술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또 다른 이름이 되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삶의 기반이 무너진 여성과 소녀들에게 구체적인 희망을 전하고 있으며, 그 희망은 이들이 다시 일어서는 데 필요한 회복력의 첫걸음이 되고 있다.
재난과 위기는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지만, 특히 빈곤 가정이나 취약한 공동체는 그 충격을 더 깊고 오래 겪는다. 이들은 사회 안전망이 거의 없거나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위기를 마주했을 때 스스로 회복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들이 완전히 외면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기구, 공여 기관, 비정부기구(NGO)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들을 지원해 왔고, 지금도 다양한 방식으로 연대하고 있다. 현지의 필요를 파악하고, 가장 손길이 닿기 어려운 사람들에게까지 도움을 전하기 위한 노력은 전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매년 다양한 개발협력 사업을 통해 재난으로 삶의 기반을 잃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과정에는 현지 정부와의 협력뿐 아니라 국제기구와의 연대도 함께 이루어지며, 특히 여성과 소녀처럼 구조적으로 더 취약한 계층을 대상으로 한 인도적 지원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단지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한다. 누군가의 삶이 무너진 자리에서 시작된 연대는,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이 된다. 그리고 그 회복의 과정은,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여정의 일부이기도 하다.
벚꽃은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피어난다.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는 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위로가 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봄조차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재난 속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더 깊은 상처를 겪는 여성들과 소녀들을 떠올려 보면, 우리가 누리는 일상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자연재해와 위기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킬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우리의 선택이며, 동시에 우리의 책임이다. 벚꽃처럼 피어날 희망은 우리의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작은 실천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용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