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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들은 수다쟁이인가? 아니면 소통의 달인인가?

by 마레

수다 너머의 힘, 구전문화

아프리카인들은 겉보기엔 수다쟁이 같지만, 실상은 소통의 달인에 가깝다. 아프리카에서의 삶을 경험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구전문화’가 일상 속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려 있으며, 그것이 공동체의 소통과 결속에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이야기는 이들의 소통 방식이자,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힘이다.


말보다 깊은 이야기의 힘

아프리카인들은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데 탁월하다. 교회에서 목회자들은 설교조차 원고 없이 자연스럽게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풀어간다. 교인들은 그 이야기에 몰입하고 공감한다. 특히 여성들과 아이들은 수많은 노래와 이야기를 암기하고 있어, 1~2시간 동안 가사 없이도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이는 여성들이 노래와 이야기를 통해 공동체의 기억을 지키고, 삶의 지혜와 도덕을 세대에 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버스는 또 하나의 이야기 마당

아프리카의 장거리 이동은 또 다른 소통의 장이다. 완행버스를 타고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할 때, 승객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지루할 새 없이 시간을 보낸다.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버스에 타고 내리며 각자의 삶과 문화를 나누는 이 시간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야기 마당’이 된다.


버스 안 풍경_갈색톤_2025년 4월 16일 오후 02_01_58.png


소통은 곧 돌봄이 된다

한 번은 모잠비크에서 지인을 만나러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긴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버스가 지체되면서,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때 버스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옆자리 여성이 내가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를 다른 승객들과 공유했다.


도착 후 상황을 미처 예측하지 못한 나는 오히려 느긋했지만, 승객들은 “한밤중에 마쉬쉬(타운)에 내리는 건 위험하다”며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논의했다. 결국 승객들이 버스 기사에게 요청해 현지 주민 한 명을 섭외했고, 그는 나를 지인의 집까지 무사히 안내해 주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 여러 사람의 손길 덕분에 나는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공동체적 소통과 협력이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ChatGPT Image 2025년 4월 19일 오후 02_49_33.png


웃음 속에 피어나는 연대

어느 날, 버스로 이동하던 중 옆자리에 앉은 청년과 이런저런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가 자신의 마을에서 내릴 무렵, “고향에 돌아가면 브루스 리에게 안부 전해주세요!”라고 인사했다.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미소를 지으며 “브루스 리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살짝 망설이더니 다시 말했다. “그럼, 재키 찬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그 말투는 농담이라기보다는, 정말로 내가 그들과 아는 사이일 거라고 믿는 듯한 진지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순수한 믿음이 귀엽고 따뜻하게 느껴져, “그래 볼게요”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 짧은 대화 속에서 나는 그 청년의 천진함과 따뜻함, 그리고 공동체적 삶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마치 우리가 공통의 지인을 둔 사이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경청은 삶을 잇는 방식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문자 문화가 상대적으로 덜 발달되어 있고, 문맹률도 높은 편이다. 그렇지만, 구전문화 덕분에 오히려 소통은 더욱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만난 아프리카 사람들은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참여했던 마을 회의나 교회 예배에서도 주민들은 한마음으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아이들까지도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이러한 경청의 문화는 누군가의 말을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기억하고 전하며 이어가는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하나의 도서관

구전문화 속에서 여성들은 단순한 이야기꾼을 넘어, 교육자이자 치유자로서 공동체의 중심을 지탱해 나간다. 약초를 활용한 건강 관리법, 출산과 양육의 지혜, 삶을 이어가는 수많은 지식들이 그녀들의 입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다. 아프리카에서는 사람의 목소리를 공동체를 하나로 엮는 가장 강력한 힘으로 여긴다.

그래서일까. 아프리카에는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하나의 도서관이 사라진다’는 말이 전해진다.


이야기 할머니와 아이들04_2025년 4월 16일 오후 02_37_02.png


우리가 잊고 지낸 목소리의 가치

여성들의 목소리와 지혜가 깃든 구전문화는 오늘도 살아 숨 쉬며, 공동체의 소통과 연대를 이끌고 있다. 말로 전해지는 지혜와 따뜻한 인간미는 우리가 자칫 잊고 지내기 쉬운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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