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패션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한다. 우리는 다양한 디자인과 색감을 통해 자신만의 정체성과 감각을 드러내며, 공동체 안에서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나 역시 한국과 서구권에서 익숙한 패션 세계 속에서 살아오며, 옷차림을 통해 나를 표현해왔다. 하지만 처음 아프리카 땅을 밟았을 때, 나는 완전히 새로운 아름다움의 기준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낯설면서도 신선한, 색채와 감각의 세계였다.
아프리카의 첫 방문지였던 세네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선택하지 않는 대담한 색상들이 사람들의 패션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는 점이었다. 수도 다카르(Dakar)의 다카르대학을 방문했을 때, 특히 여학생들의 패션 감각이 유난히 세련되어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들은 마치 모델처럼 화려하고 강렬한 색상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평범한 사람은 소화하기 어렵다’는 내 선입견을 무너뜨렸다. 실제로 당시의 다카르는 ‘아프리카의 파리’라 불릴 정도로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도시였다. 그들은 단순히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색을 입고, 문화를 입고,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패션의 특징은 그 강렬함과 화려함에 있다. 이는 대륙의 자연환경과 다양한 민족의 문화가 반영되며, 색채와 무늬를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과 개성이 드러난다.
세네갈에서 처음 접한 전통 염색 천인 ‘바틱천(Batik)’은 단일 또는 몇 가지 색을 조화시켜 다양한 무늬를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이를 활용해 자신만의 개성 있는 의상을 만들어 입는다. 바틱천은 그 자체로 하나의 언어였고, 각자의 정체성을 담는 도구였다.
아프리카에는 바틱 외에도 켄테(Kente), 앙카라(Ankara) 등 지역마다 독특한 직물 문화가 존재한다. 이처럼 다양한 직물들은 각 민족과 공동체의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한다.
이후 모잠비크에서 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패브릭, ‘까뿔라나(Capulana)’를 만나게 된다. 까뿔라나는 모잠비크의 국민적인 천이자, 일상과 전통을 모두 아우르는 다목적 직물이다.
처음에는 외국인으로서 그 강렬한 색감과 큰 패턴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현지 여성들이 까뿔라나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 안에서 조화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었다. 익숙하지 않았던 색과 무늬가 점차 나에게도 자연스럽고 매력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모잠비크의 장터를 걷다 보면, 까뿔라나 상점에서 길게 걸어놓은 천들이 바람에 나풀거리며 손짓한다. 온갖 생생한 색조의 천들이 뽐내듯 걸려 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가 함께 어우러진다.
도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서구식 옷차림을 하지만, 전통 행사에는 까뿔라나로 맞춘 정장을 입는다. 농촌에서는 여성과 소녀들 대부분이 까뿔라나를 일상복으로 착용한다. 이 천은 그야말로 필수 아이템이자 패션의 완성이다.
나 역시 지역사회개발 교육을 위해 마을을 방문할 때면 까뿔라나를 입고 갔다. 그것이 곧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예의였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여성들이 바지를 입어도 무방하지만, 농촌에서는 까뿔라나 착용이 일종의 불문율처럼 여겨졌다.
특히 장례식, 성년식과 같은 공식 행사에서는 필수적으로 착용한다. 여러 마을이나 단체가 참여하는 공동 행사에서는 각 지역사회나 단체가 선택한 차별화된 까뿔라나를 착용하여 공동체의 소속감을 강하게 표출한다. 까뿔라나는 단순한 패션을 넘어, 공동체 소속과 전통을 드러내는 사회적 상징이다.
또한, 소유한 까뿔라나의 수는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한 번에 여러 겹을 두르는 것이 부의 상징이기도 하다.
까뿔라나는 일반적으로 2m x 1m 크기의 직사각형 면 천이다. 대부분 면 소재지만, 저렴한 경우 화학 섬유도 사용된다. 매년 새로운 디자인이 나오며, 같은 패턴은 다시 만나기 어렵다. 그만큼 새로움과 개성을 중요시한다.
이 천은 허리에 두르면 긴 치마, 가슴에 감으면 원피스가 된다. 지퍼나 단추가 없어 매듭으로 고정해야 하기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종종 흘러내리는 불편함이 뒤따른다.
나는 까뿔라나의 색감과 무늬는 사랑했지만, 치마 형태로 착용하는 데는 쉽게 익숙해지지 못했다. 결국 허리 부분에 지퍼를 달아 입기 편한 형태로 재단해 입었지만, 이를 본 한 지역 지도자의 부인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
그렇게 입는 건 까뿔라나가 아니에요!”
그 말에는 그들 전통에 대한 깊은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도시에서는 까뿔라나 천으로 블라우스, 원피스, 정장 등 다양한 현대식 의상이 제작된다. 양장점에서는 고객이 패턴을 고르면 맞춤 제작을 해주며, 이 의상들은 천의 화려함만큼이나 대담하고 개성 넘친다. 재단사들은 패턴을 능숙하게 활용하여 의상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이는 하나의 예술로도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런 맞춤 제작은 비용이 높아 서민들에게는 부담스럽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까뿔라나를 아기를 업는 보자기, 물건을 싸는 천, 커튼, 이불, 식탁보 등 일상 속에서 다양하게 활용한다.
무엇보다 까뿔라나는 ‘마음을 담은 선물’로서의 기능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마운 이에게, 특별한 감사를 전하고 싶을 때 사람들은 까뿔라나를 건넨다.
나 역시 교육 활동을 마친 후 여러 차례 까뿔라나를 선물 받았다. 특히 한 번은 훈련 일정이 끝나고, 교육생들이 다과를 차려놓고 노래를 부르며 내 허리에 까뿔라나를 직접 둘러주었다. 그 순간은 단순한 선물을 넘어서, 진심 어린 환대와 감사를 피부로 느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제 내 옷장 한켠에는 여러 장의 까뿔라나가 곱게 보관되어 있다. 그것은 단순한 천이 아니라, 모잠비크와 나 사이를 이어주는 감각적인 기억이며, 문화와 나의 삶이 교차했던 소중한 흔적이다.
아프리카의 패션을 경험하며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익숙한 한국과 서구의 패션이 개인의 취향과 트렌드를 중심으로 한다면, 까뿔라나는 공동체의 정체성과 역사를 담은 문화적 언어였다. 그것은 외적인 치장을 넘어, 공동체 소속감과 개인의 생애 단계를 표현하는 도구이자, 마음을 전달하는 의미있는 상징이었다.
나 역시 까뿔라나를 통해 그들의 공동체에 스며들었던 기억을 지금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