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기적이었다
모든 게 조용한 곳이었다.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분식집으로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함께 걸었다. '도란도란' 보다도, 우리는 ‘뚤레뚤레’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 하루는 귀여운 단어를 좋아했다. 최대한 빠르게 걸었다. 학교 주위 이곳저곳을 걷느라 하루의 다리가 많이 아플 것 같았다.
분식집 안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아주머니가 시청하고 있던 TV 소리만 작게 흘렀고, 우리 둘과 아주머니 한 분이 전부였다.
“하루 씨, 분식 좋아하세요?”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나는 원래 분식을 좋아했다.
어릴 적 훈련을 마치고 자주 들렀던 분식집이 생각나기도 했고, 떡볶이·튀김·김밥처럼 다양하게 고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하루와 나는 가볍게 메뉴를 고르고 마주 앉았다.
튀김을 사이에 두고 나눈 대화는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과거 회상. 주로 내가 말했고, 하루가 들어주었다. 한참을 웃고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를 줄은 몰랐다. 행복한 시간은 왜 이리 찰나처럼 지나갈까.
시간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갑자기 아버지 함께 보냈던 시간과 시점이 생각이나며 특정 좋았던 시점을 통제하고 싶어졌다. 행복해지고 좋아지려고하면 항상 이랬기에 애써 무시하고 하루를 바라봤다.
그때, 하루가 휴대폰을 보며 말했다.
“감자돌이 씨, 저 10시 전에 지하철 타러 가야 해요.”
신데렐라가 12시에 마법이 풀리듯, 하루에게도 막차가 정해준 ‘돌아가야 할 시간’이 있었다.
나는 허락을 구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럼 더 늦기 전에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줄게요, 같이 가요.”
내가 먼저 보자고 했고, 시간도 늦었고, 하루는 여자니까.
괜히 걱정이 돼서였다.
우린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었지만, 헤어짐은 조금 슬펐다.
나를 떠난다는 그 느낌들이 싫었다.
지하철역 앞까지 발걸음은 무거웠다.
하루가 교통카드를 찍고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손을 흔들며 작게 인사했다.
그녀는 돌아보며 웃어주었다. 행복했다.
순간적이었지만, 과거 혼자 살며 짊어졌던 무거운 짐과 자기혐오가 씻겨 내려갔다.
나는 하루가 좋았다.
행복하고 또 행복했다.
그날 이후 변한 것이 있다면, 우리는 ‘안녕’ 인사만 주고받던 사이에서 가볍게, 조금 더 편하게 톡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딘지, 뭐 먹었는지, 잘 자고 좋은 꿈을 꾸라는 듯한 기본적인 안부 인사도 챙겼다.
하루와 톡을 하며 기숙사로 걸어가던 중, 알고 지내던 여사친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사친: 감자돌이, 지금 뭐 해?
나: 기숙사 가는 중임.
여사친: 엥, 이 시간에 뭐 하다가?
나: 어떤 예쁜 여성분한테 푹 빠져서, 잠시 걷고 밥 먹고 왔다.
여사친: 또 사귀는 거?(웃음.) 저녁은 뭐 먹었는데?
나: 분식집. 분식이 땡겼어. 훈련받던 옛날 생각나고 좋더라.
여사친: 아니, 좋아하는 여자랑 첫 밥을 먹는데 첫 장소가 분식집이라고? 너도 대단하다.
나: 그럼 어디 가야 하는데?
여사친: 파스타나 레스토랑, 분위기 있는 곳 가야지.
나: 됐다. 그런 거 보고 헤어질 여자라면, 나랑 안 맞는 거겠지. 난 나만의 스타일로 갈 거다.
여사친: 그래, 너답네.
그렇게 우리는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훗날 분식집이 첫 데이트 장소라서 이상하다고 말하는 지인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 시간, 그 분위기, 그 웃음이 가장 좋았다.
내 방식이 틀린 게 아니라, 그냥 다를 뿐이라고 믿었다.
나는 나만의 사랑을 할 것이다.
나의 연애 가치관은 감자돌이 있는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어제 야근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하루와 통화를 하던 중, 문득 첫 만남이 떠올랐다.
“우리 첫 데이트 때 분식집 갔었잖아. 솔직히 어땠어?”
생각해보면, 나도 그때 내심 더 좋은 걸 사주고 싶었는지, 아니면 남들이 말하는 ‘첫 데이트는 근사한 곳’이라는 기준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처럼 그려봤는지 모르겠다.그렇게 되었다면 하루와 현재 어떻게 되었을까?
하루는 잠시 웃더니 말했다.
“맛집이든 레스토랑이든, 사실 앞에 있는 남자가 더 중요하지.
음식점이 어떻든, 그 사람이 좋으면 괜찮아.
물론 음식이 정말, 정말 맛없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근데 너의 음식픽은 항상 옳더라”
그리고는 덧붙였다.
“오히려 그 당시 내가 예민하고 힘들었잖아.
좋은 집 갔으면 부담스러워서 오래 못 만났을 거야.
오히려 분식집이 편했고, 가식 같지 않아서 좋았지.
한창 번호 따이고 소개팅 나갔을 때, 너가 가장 편했어.
다들 잘 보이고 있어 보이려고, 돈이 많이 없는 새내기 땐데도 불구하고 파스타집, 레스토랑, 고깃집 가더라.”
하루의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그날 나는 큰 생각없이 그냥 분식이 먹고 싶어서 갔던 거였는데, 하루는 그걸 깊이 느꼈던 것 같았다.
그건 내 방식이었고, 하루에게는 오히려 가장 편안한 방식이 되었었다.
우리 학교는 전국에서 벚꽃을 보러 올 만큼 유명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그 달부터 하루와 연락을 하지 못했다.
4월은 나에게 ‘죽음의 달’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4월, 할머니도 세상을 떠난 4월.
나는 피를 토하며 병원에서 뇌전증 진단을 받은 4월.
그 와중에 주변에서는 금전 관계를 정리하고, 재수 여부와 미래를 결정하라고 압박했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잠시 세상에서 사라졌다.
하루의 연락은 쌓여 갔지만, 나는 답하지 않았다.
강의 대신 기숙사에 틀어박혀 생각하거나, 기숙사 근처 호수를 지겹도록 달렸다.
그렇게 4월, 5월이 흘렀다.
어느 순간 하루의 연락도 끊겼다.
불필요한 일이라면 학교에도 나가지 않았다.
스승님이 말했다.
“백날 생각해봐라. 결정 낼 문제였으면 진작에 해결됐을 거다. 그냥 안고 가야 할 문제다.”
두 달 동안의 생각은 도움이 되었지만,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학교를 나서는 길, 나는 하루에게 연락을 했다.
참 쓰레기 같은 짓이었다.
저번 글에서 썼듯, 연락은 힘든 일이 아니었다.
역으로 하루가 연락을 안 왔을 땐 속상하고 서운해했으면서, 정작 하루에게 똑같이 행동했다.
나는 상처를 쥐고, 이기적이며, 모순적인 사람이었다.
하루는 무심하게 받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