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감자돌이의 여자친구야
7월 방학이 되었다.
하루는 꾸준히 알바를 해서 학교 앞에 자취방을 구했다. 그녀는 힘든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사는 아이였다. 물론 때로는 남 탓이나 환경 탓을 하며 동기부여를 얻는 독특한 방식이었지만, 나는 그게 꼭 옳은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하루가 그걸로 힘을 얻는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우리는 방학 내내 거의 매일 만났다. 하루는 편의점, 영어 학원 청소, 피시방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는 잠깐씩 과외를 하는 정도였기에, 오히려 내가 너무 편하게 돈을 버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루는 예뻤다. 하지만 딱 봤을 때, 그 화사함 뒤에 짙은 그림자가 비쳤다. 비가 오기 전 구름 낀 하늘 같은 여자였다. 그래도 좋았다. 그녀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든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이해하고, 함께 발전하면 된다고 믿었다. 내가 믿는 사랑의 힘은 무궁무진했고, 그래서 더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시간이 난 어느 주말, 우리는 이월드(옛 우방랜드)에 갔다. 하루와 함께 보낸 하루는 참 인상 깊었다. 이토록 좋아하는 여자가 생길 줄은 몰랐다. 함께 사진도 찍고, 사진도 찍어주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하루가 있었기에 나는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남을 통해 얻는 동기는 무의미하다. 위험하다. 남에게 종속된 삶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갈팡질팡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득 생각했다. 만약 그 동기의 원천이 내가 좋아하는 이성이라면 어떨까? 감정이 깔려버리면 어떻게 될까? 사랑은 다르지 않을까?
그때부터 나는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하루와 꿈꾸는 미래가 내 동기부여였다. 타인의 압박이나 강요 암묵적인 실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8월, 우리는 룸술집에서 가볍게 술을 마셨다. 나는 원래 술에 잘 취하지 않았다. 스무 살의 건강한 간에, 버티는 정신력까지 합쳐지니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술을 마실 때만큼은 금방 취했다. 아마 술이 아니라 분위기에 취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하루가 몹시 좋았다. 조심스러운 행동, 수줍음, 그리고 가끔 드러나는 차가움까지. 모든 게 좋았다.
그렇게 9월, 개강이 찾아왔다.
나는 ‘1년 동안 하루를 지켜보고, 천천히 알아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솔직히 지키기 어려웠다. 2월 말부터 지금까지, 중간에 조금 비어 있는 시간이 있긴 했지만, 우리는 약 6개월 동안 썸을 타고 있었다.
그리고 9월 16일, 나는 결국 고백했다.
"하루야, 나랑 사귀자.”
하루는 흔쾌히 웃으며 말했다.
“응, 좋아.”
그렇게 우리는 과에서 소문난 CC가 되었다.
그 당시 우리는 ‘비트윈’이라는 어플을 사용했다.
커플 전용 어플이었는데, 귀여운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고, 우리만의 공간 같아 좋았다. 나는 일주일에 다섯 번, 여섯 번 정도 자기 전에 하루에게 편지를 써주곤 했다. 아직도 하루가 그 많은 편지들을 보관하거나 캡처해 두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분명,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어수룩하게 손도 잡아봤다. 그런데 손을 잡을 때마다 땀이 얼마나 나는지, 오히려 잡고 있기 미안할 정도였다. 그래서 겨우 5초쯤 잡다가, 손 땀을 닦고 다시 잡고, 또 닦고 그걸 반복했다. 그 어색함마저 좋았다.
나는 주로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가끔은 기숙사 근처 호수를 함께 걷기도 하고, 하루가 날 데려다주기도 했다. 밤 10시, 11시쯤 기숙사 앞 풍경은 참 신기했다. 수많은 커플들이 서로를 붙잡고 헤어지기 싫어했고, 누군가는 진하게 포옹을, 누군가는 조심스러운 입맞춤을 나눴다. 그곳은 말 그대로 ‘커플 천국’이었다.
우리의 첫 포옹도,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처음이라 어색했지만, 하루를 꼭 안았을 때 느껴지는 따뜻함은 너무 포근했다. 순간 나는 몸이 긴장하며 하체는 살짝 뺐고, 상체만으로 그녀를 안았다. 그래도 참 행복했다. 그렇게 우리는 첫 포옹을 했다.
10월, 평화로운 강의 시간이었다.
강의 중에 톡을 주고받는 건 잘못된 일이었지만, 그날 하루에게서 급한 연락이 왔다. 배가 몹시 아파 움직일 힘조차 없다고 했다.
나는 사촌누나들이 많았고, 친누나도 있었기에 금세 무슨 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오는, 그 ‘마법의 날’이었다. 강의를 마칠 수도 없었다. 가방을 챙겨 조심스레 강의실을 나와, 하루에게 병원에 가자고 말했다. 그리고 학과 건물부터 병원까지 하루를 업고 걸어갔다. 힘들지 않았다. 그저 괜찮기를 바랐다. 주위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원했으니.
그런데 오히려 하루는, 수업까지 포기한 나를 걱정하며 내 옆에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표정이 오히려 안쓰러웠다. 꼭 나를 걱정하시면서 돌아가셨던 아버지와 나를 혼자 놓아둔 것에 대해 후회하시는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았다. 애써 무시하며 난 다른 생각을 했다. 그저 하루가 너무 말라서 더 아픈 건가 싶었다. 정확히 왜 그날의 통증이 그렇게 심한지는 잘 몰랐지만, 그때부터 하루가 조금 더 살이 붙고 건강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43kg이라는 몸무게는 너무 가볍게 느껴졌다.
결국 하루의 통증이 조금 가라앉자, 나는 하루가 좋아하는 빵을 사러 갔다.
그렇게 우리의 10월은 지나갔다.
문득 글을 적다 보니, 하나 떠오른다.
나는 은근히 바라는 게 많은 남자였던 것 같다.
그땐 몰랐다. 발전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하루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명목으로 사실은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의 방식, 내가 추구하는 연애 스타일을 쫓았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게 옳다고 믿었다. 내가 틀릴 거라는 걸 고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이제야 안다.
그 시절 나는 성숙하지 못했다. 내가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을 사랑이라 착각했고, 때로는 강요했다. 하루가 어두워 보였기에 밝아지길 바랐고, 무뚝뚝했기에 사랑 표현을 원했고, 감정표현이 서툴렀기에 편지를 부탁했고, 대화가 부족해 보이니 산책을 하며 대화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것들은 다 내 욕심이었다.
하루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연애 2~3년 차쯤, 크게 다투던 날 하루가 말했다.
“넌 변했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 난 나라고.”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알 것 같다. 그 말속에는 내가 놓쳤던 진실이 있었다.
나는 스스로의 삶과 주변에서 배운 데이터, 수많은 사람들과 유명 인사들의 이야기를 기준 삼아 옳고 그름을 판단했다. 그리고 그것을 진리라 믿고, 그에 어긋나는 것은 모두 틀리다고 여겼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발전을 추구하지 않는 건 사람으로서 있을 수 없어.”
하지만 그건 나의 생각이자, 내가 따르는 가치관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것들에 내 가치관을 덧붙인 것에 불과했다.
하루는 늘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는 발전보다는 만족과 안주를 택할 수도 있어.”
그 말을 그땐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글을 적다가 너무 감정에 사로잡힌 것 같다. 출근길, 팝송을 들으며 회상에 잠겼다. 결국 누구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둘 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에게 하루, 감자돌이 커플에 맡게 리폼하면 되는 거였다. 이해,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