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으로 떠난 첫 여행

내가 바보 할게, 하루는 눈치 보지 말고 맘껏 놀아

by 감자돌이

부산으로 여행을 갔다.

여자친구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늘 꿈꿔온 일이었다. 훈련받을 때, 늘 남자들과 갔었지만, 이제는 남자들이 아닌 드디어 여자친구랑 가다니. 풋풋하고 순수한, 둘만의 시간을 바랐다. ‘여자와 함께라면 여행은 어떤 기분일까? 그게 심지어 하루와 함께라면?’ 몇 번이나 상상하고,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곤 했다.


그래서 조심스레 물었다. 부담되지 않게, 가볍게 다녀오는 건 어떻겠냐고. 불편하거나 그러면 거절해도 안 속상해할 자신 있고 편해질 때까지 기다릴 거라고. 나의 걱정과 달리 하루는 흔쾌히 동의했고, 하루도 무척이나 가고 싶었는데 내 눈치를 봤다고 했다. 서로 뜻이 맞았으니 목적지는 단번에 부산으로 정해졌다. 2017년, 놀기에 적당한 도시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기차표를 예매했고, 이어 호텔을 알아봤다. 첫 여행이니만큼 하루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랐다. 하지만 경비가 하루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원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하루가 불편하다면 그 여행은 의미가 없었다. 하루가 행복했으면, 그리고 그 행복을 지켜주고 싶었다.


상의 끝에 적당한 호텔을 골랐다. 순간, 각 방을 쓸까 잠시 고민했지만, 하루는 오히려 웃으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더블베드가 좋아.”라고 했다. 나는 동의했고, 각자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기차역에 도착해 함께 음식을 먹었다. 하루는 여전히 귀여운 표정과 말투로 맛있음을 표현했다. 매번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많다니 할 때 너무나 귀엽다. 부산행 기차에 올라 나는 잠에 들었고, 그 사이 하루는 내 어깨에 기대어 셀카를 찍었다고 한다. 하루는 이때의 사진이 지금까지 몇 안 되는 리즈시절 사진이라고 좋아한다.


“부산에 가면 밀면도 먹고, 회도 먹고, 백화점도 가자.”

“찜질방도 꼭 가야지.”


우리가 주고받던 말들 속에서 설렘이 커졌다. 그 여행에서 지금도 선명히 남아 있는 일화가 두세 개 있다.


첫 번째, 부산 신세계 스파랜드에 갔다.

하루는 늘 나랑 샤워 시간이 달랐다. 나는 길어도 10분이었지만, 하루는 최소 30분, 길면 1시간씩 씻곤 했다. 따뜻한 걸 무척 좋아하는 하루와 달리, 나는 오래 씻는 걸 잘 못했다. 차가운 게 좋았다.


스파랜드는 우리 둘 다 처음이었다. 시설이 달랐고, “이게 백화점 안에 있다니?”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상당히 컸다. 각자 씻고 찜질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대충 샤워기로 씻고, 뜨거운 걸 좋아하지 않아 적당한 탕에 있다가 5분도 채 안 되어 나왔다. 그런데 목욕탕에서 찜질방으로 가는 길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어린아이부터 나이 많은 어른까지 다양했다. 그제야 알았다. 다들 자신이 기다리는 가족이나 일행을 만나기 위해 서 있는 거였다.


나도 30분쯤 안마의자에 앉아 하루를 기다렸다. 이윽고 하루가 환한 얼굴로 나왔다. 이뻤다.

“오래 기다렸지? 오래 기다릴까 봐 금방 씻고 나왔어.”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며, 하루와 함께 식혜, 구운 달걀, 오징어를 즐겼다. 가끔은 과분할 정도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행복을 내가 누릴 수 있다니, 그저 고마웠다.


우리는 세네 시간을 그렇게 즐기다, 다시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두 번째, 신세계 백화점을 둘러보기로 했다.

정말 컸다. 하루는 의기소침해 있었고, 나도 없지 않아 기가 눌린 듯했다. 꼭 시골사람이라서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는 낯선 공간의 화려함 앞에서 작아진 기분이었다. 이 정도 화려함은 대구에서 본 적이 없었다.


하루가 긴장하고 풀이 죽어 있을 때면, 나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루야, 맘껏 둘러보고, 맘껏 사고, 맘껏 말해도 돼. 아니면 나한테 시켜서 대신 물어보게 해도 괜찮아. 부끄러움이나 바보 같은 행동은 내가 다 할게. 넌 즐기기만 해.”


하루가 소심했기에, 나는 일부러 더 어리숙하고 바보 같은 모습을 해 보였다. 그러면 하루는 편안해져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곤 했다. 향수도 시향해 보고, 화장품도 보고, 옷도 보고… 하지만 선뜻 사지는 않았다.


나는 하루에게 “이거 잘 어울리네, 이거 어때?” 하고 여러 번 물었다. 하지만 하루는 부담스러워했고, 결국엔 가격 때문에 망설였다. 나는 하루의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경에 익숙해져서 원하는 걸 갖지 못할 때 느끼는 속상함, 그 속상함을 탓했다. 저걸 내가 이겨내도록 도와주기로 다짐을 했다.


그래서 약속했다. “내가 엄청 많이 벌 자신은 없어도, 열심히 해서 하루가 원하는 건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게 해 줄게.”


그리고는 말했다. “하루가 좋아하는 음식 먹으러 가자. 맨 위층에 아이스크림 파는 곳이 있던데?”

놀랍게도 하나에 15,000원이나 했다. 토핑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루에겐 귀여운 비밀이 있다. 정말 갖고 싶거나 먹고 싶을 때 이렇게 말한다.

“감자돌이야, 저거 되게 맛있겠다, 그렇지? 저거 진짜 신기하다, 봐봐.”

귀여웠다. 내가 입에 앙 물려주면 하루는 엄청 좋아했다.


스승님께서 “커플은 닮아간다”라고 했었다. 하루는 내 어릴 적을 꼭 닮았다. 소소한 것, 작은 것에 행복해하는 삶. 하루는 그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았다.


비싼 아이스크림을 하나밖에 사주지 못한 건 미안했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어느덧 밤이 되었다.

가끔 하루는 나를 무서워했다. 밤이 되면 나에게는 여러 트라우마가 찾아왔다. 그럴 때면 예민해져서 모든 소리가 다 들리고, 모든 게 인지되며, 뇌가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들곤 했다.


내가 다시 생각에 잠길 때면 하루는 꼭 안아주며 말했다.

“놀러 왔는데 과한 생각은 금지!”


그 말에 마음이 풀리곤 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을 집을 찾아 나섰다. 고른 곳은 양곱창집이었다.

들어가기 전 하루는 “어떻게 곱창을 먹어. 냄새나~ 불쌍한 양이야.” 하고 귀엽게 말했지만, 막상 들어가니 몇 인분을 먹었는지도 모를 만큼 쫄깃쫄깃한 맛에 푹 빠져 버렸다.


우리는 그렇게 배부르게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감자돌이의 연애 가치관을 잠깐 적어본다. 혹시 글의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나는 꽤 보수적인 남자다. 정치적인 의미와는 무관하다. 단정하고 깔끔한 옷차림을 선호하고, 노출이 많거나 선정적인 옷은 부담스럽다 못해 두렵게 느껴 피하게 된다. 하루도 나만큼은 아니지만 보수적인 성향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면 진도를 늦게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이지만, 결코 진도가 빠르다고 해서 사랑이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나는 하루를 본 순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했다. 하루와 연애할 때는 심장이 터질 듯했지만, 손을 먼저 잡아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쩌면 부모님의 영향일 것이다. 어머니는 늘 예쁜 꽃들을 눈으로 바라보며 난초들을 애지중지 돌보셨다. 아버지 역시 항상 어머니를 먼저 생각하셨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서일지도 모른다.


난 여전히, 하루란 아이를 좋아하고, 함께 미래를 준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으로 아껴주고 보듬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