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정한 성장과 서로의 그림자
하루와 나는 자주 다투었다. 아니, 싸움이라기보다 서로 추구하는 방식이 달랐다.
하루가 치료를 원하거나 더 나은 삶을 바랐다면, 나는 한없이 좋은 남자친구였다.
하지만 하루가 변화를 원치 않거나 불편함을 느꼈다면, 나는 집착하는 남자친구였다.
관점에 따라 의사와 환자, 아버지와 딸, 혹은 연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나는 하루의 이야기를 오래 들었다.
우리의 연애는 대화와 산책이 많았다. 서로에게 있어 자신과 정 반대 모습이었기에 너무 궁금해했다.
거의 매일 해가 지는 걸 함께 보고, 달이 뜰 때까지 걸었다.
감자돌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을 때, 하루와 약속했다.
“정말 솔직하게 쓸 거야.”
다만 아무리 자전적이라 해도 선은 필요했다.
그래서 이번화는 하루의 스토리도 있기에, 하루가 먼저 초고를 읽고 발행해도 되는지를 판단하기로 했다.
하루는 사실 서울, 그것도 종로에서 태어날 뻔한 아이였다. 집안은 여러 사업을 하다 무너졌다고 했다. 태어날 때 하루의 어머니가 “이렇게 못생긴 애는 내 딸이 아니다”라고 했다는 웃픈 스토리도 있었다. 하루의 어머니는 실제로 아름다우신 분이다.
하루의 집은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어린 시절엔 유복했지만, 아버지의 문제로 가정이 무너졌다.
하루는 예쁜 얼굴을 가졌지만, 아버지로 인한 상처가 깊었다. 그는 술과 담배, 여자까지 좋아했고, 결국 하루에게는 성적 트라우마가 남았다. 그 일 이후 하루는 남자를 경계하게 되었고, 누군가 다가오면 모두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라 생각했다. 차가움이 몸에 배어, 얼굴에도 그 기운이 스며 있었다.
아버지의 외도는 집안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하루는 어린 나이에 결혼과 가정에 대한 꿈을 접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하루를 원망했다. 집은 지원으로 겨우 유지됐고, 하루는 점점 자신을 아끼지 않게 되었다.
초등학생이 된 하루는 이뻤고 매력적이었기에, ‘인싸’ 아이들의 제안을 거절했다가 왕따를 당했다. 심한 욕설과 폭력이 이어졌고, 그 상처는 중학교까지 계속되었다.돈이 필요해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했고, 고등학교에선 나와 같은 학교에 오고 싶어 했지만 시험을 포기하곤 했다.
그렇게 간신히 졸업했고, 대학에서 나를 만났다.
우리는 서로를 다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지금도 난 하루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진 않다.
부부가 될 예정이지만, 서로의 과거까지 완벽히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니니, 그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이 이야기를 적는 이유는, 과거의 나처럼 세상을 단순하게 믿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아서다.
나는 한때 이렇게 믿었다.
“세상 사람들은 좋아지고 행복해지길 추구한다.”
“마음만 바뀌면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하루의 과거를 알기 전엔, 왜 하루가 불행해지기를 원하듯 행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나는 운동을 배우고, 유교적 사고가 남아 있던 어린 ‘꼰대’였다. 하루에게 종종 명언을 던졌다.
“공부, 운동, 외모, 재능, 노력. 의미 있는 결과는 시간이 필요해.
하지만 마음은 먹으면 바로 바뀔 수 있어. 사람은 마음먹기 나름이야.”
하루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내 태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부드럽게, 가끔 존댓말을 쓰며 애정 표현을 했다.
수학과 컴퓨터를 결합한 데이터 분야로 가고 싶었다. 비전이 높다고 알려진 교수님과 면담 기회를 얻었다.
1년에 한두 명만 뽑는 분이었다. 약 1시간 30분 동안 면담을 하며 느꼈다.
진실하게 답한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가 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걸.
건강 문제 덕분에 눈에 띄어 면담까지 갔지만, 인연은 닿지 않았다. 그래도 절망하지 않았다.
어릴 적의 나에 비하면 충분히 잘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학년 2학기가 되자 하루는 새로운 자취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하루가 좋은 방을 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첫 자취방을 급하게 구했다. 나는 불안했다. 그래서 하루의 오빠인 척하며 집을 함께 알아보러 다녔다.
하루는 자존감이 낮았다. 과거의 환경이 그녀를 무너뜨려놓았던 탓이었다. 늘 수동적이었고, 거절을 잘하지 못했다. 나랑 사귀면서 난 하루에게 거절하는 법, 싫다고 말하는 법을 조금씩 알려주었다. 결국 내가 나서서 월세를 깎고, 보증금을 낮췄다. 짐을 옮긴 뒤엔 하루가 저녁을 사주었다.
그날 우리는 고기를 먹으러 갔다. 그 무렵, 나는 과외를 그만두고 있었다. 2학년이 되면서 내면이 비뚤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하나씩 정리하고 있었다. 멀리 바라봤지만, 사실 정리 대상에서 하루가 완전히 제외된 건 아니었다.
새내기 시절이 떠오른다. 그 시절 이월드에 애슐리가 있었다. 가본 적은 없지만 하루와 꼭 가보고 싶었다.
그때 나는 돈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과할 정도였다.
어머니가 통장 내역을 보시던 날이 떠오른다.
“대학생이 어떻게 1년에 몇 천만 원을 쓰니?”
거의 매일 밖에서 밥을 먹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출이 컸다. 집에 혼자 있을 때의 외로움과 부족함을 돈으로 덮으려 했던 것 같다. 그때의 허기와 식욕은, 마음의 공허함과 닮아 있었다.
그래서 하루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애슐리 가격이 1인당 10만 원이었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꽤 큰돈이었다. 나는 하루와 함께 먹으려 2인 저녁을 예약했다. 하지만 결국 가지 못했다. 하루에게 개인적인 급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하루 앞에서 금전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혹시나 기분이 상하거나 의기소침해질까 봐, 예약 사실도 말하지 않았다. 약속이 취소되자마자 절친에게 예약을 넘겼다.
그날 만약 하루와 함께 갔다면 어땠을까.
하루는 웃었을까, 아니면 불편했을까.
나중에 하루는 말했다.
“그때 갔으면 난 감자돌이가 돈으로 연애한다고 생각했을 거야.”
이야기가 고기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흘러왔다.
하지만 이런 글쓰기 방식이 좋다. 잊고 있던 과거가 다시 떠오르니, 그 시절의 공기와 감정이 선명해진다.
나는 하루와 대학가의 무한리필 고깃집에 자주 갔다. 하루는 반찬을 세팅했고, 나는 고기를 가져왔다.
고기의 질이 어떻든 상관없었다. 운동부 회식과 바비큐 경험 덕에 고기 굽는 실력은 자신 있었다. 목살을 큐브로 썰어 촉촉하게 구웠다. 하루는 맛있게 먹었다.
“고기 너무 잘 구워. 이거 때문에 반했잖아.”
그 후 8년이 지나며, 나는 하루에게 내 레시피를 알려주었다.
이제는 서로 번갈아 가며 고기를 굽는다.
사랑해. 하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