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나를 다 써버렸다

하루를 사랑하고, 나를 잃어버렸다

by 감자돌이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크기에 서로가 잘됐으면 하기에 싸우는 걸까. 스스로에게 쌓인 감정이 크기에 이성이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푸려는 걸까.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자주 싸웠다. 싸움은 끝이 없었다. 어느 순간 이유도 잘 모르겠었다. 감정은 깊어졌다. 하루는 자주 울었다. 나는 하루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지 않길 바랐지만, 결국 늘 우는 모습을 마주해야 했다. 그 모습을 보면 나도 마음이 무너졌다. 절망정이었다. 얽히고 엉킨 관계였다. 하루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좋아했다. 사랑은 이해와 별개였다. 그냥 멀리 바라보고 싶었다. 하루는 모든 게 싫었지만, 나만큼은 옆에 있길 바랐다. 난 어떡할지 몰랐다.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여자가 내 앞에서, 그것도 나와 싸우다가 울고 있었다. 정말 슬펐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나이지만 울고 싶었다. 슬펐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다.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하루를 좋은 방향으로 도와주고 싶었다. 그 마음은 사랑을 넘어 애증이었고, 어쩌면 하나의 목표 같았다.


그 시절 우리는 서로를 지탱하려 했지만, 점점 버거워졌다. 싸우는 게 지치고, 가끔 이렇게 부딪히고 낫지 않으며, 발전이 없으면 싸움은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픈 깊이만큼 2배 3배 낫는데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했다. 하루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고, 나 역시 하루의 웃음을 보며 안도했다. 사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 줄 알았는데 많은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행복해지기 위해 만났는데, 어느새 나는 내 힘을 다 써버렸구나.’ 하루를 위해 마음을 쏟아냈지만, 정작 나는 나를 돌보지 않았다. 감정이 바닥나자 사소한 말에도 짜증이 났고, 싸움은 점점 더 길어졌다. 이젠 싸울 이유도 없었는데 말이었다. 행복함을 추구해도 턱 없이 모자랐고, 시간도 중요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싸움의 목적이 변질되고, 감정은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나도 변해졌다. 아무리 지쳐도 헌신, 희생, 타인존중을 추구했지만 마음속 불씨를 다 끄니 이기적으로 변하고 남 탓을 했다. 하루 탓으로 돌렸다. 그래도 여전히 하루를 사랑했다.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쉬고 싶었다. 하루는 행복해졌으니 이제 날 떠나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하루와 만나며 감정적인 부분을 많이 보며, 나를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이 컸다.


코로나가 시작되던 때였다. 세상도, 우리도 멈춰 있었다. 그날 나는 하루에게 조용히 말했다.

“하루야, 이제 넌 밝아졌잖아. 행복해졌으니까... 나 없이도 괜찮지 않을까.”

하루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왜 그래, 힘든 거야?”

“그냥... 너무 길었던 하루였나 봐. 조금 더 생각해 볼게”

그 말이 입에서 나왔을 때, 하루는 울었다.


나는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운동을 해도, 공부를 해도, 늘 신체가 포기하기 전까진 끝까지 버텼다. 하루를 구하려다 결국 나를 잃었다. 엄밀히 말하면, 하루가 원인제공을 한 건 아니지만, 하루가 나에게 날 돌볼 기회를 줬었다. 아마 하루가 아니었으면 난 평생 날 돌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내 얼굴에는 공허와 어둠이 내려앉았다. 난 이게 처음엔 수능이 끝나고, 나에게 왔던 포기와 같은 느낌인 줄 알았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난 처음엔 내가 아프단 걸 모두에게 비밀로 했다. 친가와 부딪히기도 싫었고, 강했던 긍정적이었던, 아이로 남고 싶어서였다. 물론 아버지에게 부끄러웠다. 어머니에게도 죄송했고, 누나에게도 미안했다. 그렇게 난 강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자신을 옭매는 방법을 선택했다. 더 많은 자기 발전, 유산소량, 더 많은 세트 수, 무게 명상 자기 관리에 들어갔다. 이 방법은 6개월 9개월을 못 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썼던 방법이었고 몸이 고통스러워했다. 역시나 발작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치료하고 싶었다. 두려웠다. 벤치프레스 95kg 20개, 스쾃 200kg 30개, 데드리프트 240kg 20개 그 무게에 짓눌리는 순간 걱정은 사라졌다.


친구들을, 스승님들을, 선후배들을 만났다. 내가 바뀐 느낌을 받으셨는지 어두워졌다고 말을 들었다. 겉으로 티가 나는 정도가 되었구나. 내 걱정은 이러했다. 아빠가 보고 싶었고 아빠에게 조언을 받고 싶었다.


쉽게 정리해 곪은 속으로 도덕적, 윤리적 의식이 무너졌고 날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조용히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불안장애, 강박증, 인지장애, 자살 고위험증. 내가 어릴 적 나약하다고 말했던 질환들에 다 해당되었다. 씁쓸했다. 이러려고 노력하고 버틴 게 아닌데, 어디서부터가 꼬였을까. 하긴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다 자기를 잃은 것 맞았다. 내가 그 바보였다.


자기를 잃어버린 바보.

삶의 목표가 없는 바보.


난 긱사를 나와 자취방을 구했다. 꽤 좋은 방이었다. 생각을 많이 했다. 어디서 어떻게 왜 등과 같은 원인분석 후 해결방안제시. 혼자 끙끙 앓다가, 너무 지쳐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난 매번 말하지만 효자, 좋은 아들이 아니다. 겉으로 보기엔 지원받은 거 없이, 잘 컸기에 그래 보일 수 있지만 나쁜 아들이었다. 어머니께 말했다. "나 좀 쉬어도 될까?" 어머니는 화를 냈다. 반응을 이해했다. 어머니에게 있어 난 강했으니깐. 나약한 소리를 할 아들이 아니니깐. 저 때, 난 많은 용기를 내서 어머니가 나를 바라봐주기를 원했었다.


결국 난 어둠에 잠식당했다. 24살이었다. 내가 마음에 품고 있던 어둠에 잡아먹혔다. 수업도 안 들었고, 헬스도 가지 않았다. 그 어느 것도 하지 않고 생각만 했다. 하루는 나의 과거를 알았기에 이해는 해주었지만, 힘들어했다.


어느 날, 스승님한테 연락이 왔다.


"잘 살고 있냐"

"네, 삶이 재밌네요"

"이제 힘든 게 뭔지 알았지?"

난 웃으며 말씀드렸다. 오기였다.

"이거 이겨내면 더 높은 전성기가 올걸요"

"감자돌이야, 넌 나의 고교생활 중 본 학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애다. 왜 그런지 아니?"

"대구에서 순간 동안 천재라고 불려서, 아님 저만큼 고점과 저점이 낮았던 학생은 없어서? 너무 짧지만 강렬했던 모습을 보여드려서? 아니면 너무 잘생겨서요?"

"다 맞지 처음 입학했을 때, 신기했지. 운동부가 1등으로 입학했으니깐, 신기했지. 재능이 대단했지. 인강과 학원 다녀도 1등급은 힘든데, 넌 놀 거 다 놀며 독학으로 1을 찍었으니깐. 또 훈훈하고 착했잖아. 근데 선생님들이 너에 대해 말해줄 때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더라. 다들 얘가 목표가 없다고. 불안정하다고. 너 기억나냐? 진로 상담할 때, 대학 다 떨어지면 지게차랑 벽돌 쌓으러 간다고 그럴 때 난 네가 미친 줄 알았다"

"재미없잖아요"

"아니 이제 생각해 보면 이해가 다 돼, 너의 어머니가 부탁하셨었다. 학교를 처음 입학할 때, 전화가 오셨었어 아버지가 아프셔서 아들이 2년 집에 혼자 살고 있는데 아마도 겉으로 센 척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학교 다닐 거지만, 마음은 썩어있을 거라고. 그래도 선생님들은 널 차별화하지 않았어. 완전 정상 같았거든. 근데 네가 발작하고 쓰러질 때 바닥에 흥건한 피를 닦으며 생각했다. 상처가 많구나 너의 재능은 명확해, 속도 끈기 긍정적 근데 하나가 빠졌었어. 자기애 왜 남을 위해 헌신하고 자기비판을 하는데 정작 자기 수용과 자기애가 없니"

"재미가 없잖아요"

"이제 그만 재미 찾고 자기를 사랑해 줘라. 절대 나쁜 마음먹지 말고 자식아"

"더 강해져서 돌아올게요 잘 지내세요"


스승님과 1시간 남짓 통화를 했었다. 스승님은 영상통화를 하자고 하셨지만, 차마 어두워진 얼굴을 보여드릴 순 없어서 거절했다. 스승님은 집주소를 알려주시며 밥 한 끼 하러 오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