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에 잠기고 싶다
난 결국 휴학을 고민했다. 사람이 무서웠다. 이유를 몰랐지만 공포가 내 안에 살았다. 낯선 시선, 작은 말 한마디, 모든 게 두려웠다. 어느 시점을 넘기자 한없이 좋았던 세상이 무서워졌다.
27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를 마주했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든지, 왜 생각이 멈추지 않는지, 처음으로 나를 들여다봤다. 그때 글이 유일한 숨통이었다. 기록이라도 해야 했다. 그래야 내가 나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고 느꼈다.
내 불안은 뚜렷한 네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자해에 대한 두려움.
어릴 적 사고로 통증에 둔감했다. 아픈 걸 느끼지 못해,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상처나 부상에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걸 싫어해 혼자 이겨냈었다.
난 내가 자해를 하고 있는 줄 몰랐다. 그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밤잠 설쳐가며 열심히 사는 노력인 줄 알았다. 근데 그거는 노력과 약속, 온갖 좋은 단어들로 치장된 자해의 다른 단면이었다. 난 줄곧 나를 죽이고 있었다. 다만 이 모습이 날 성장시켜서 난 이게 좋은 건 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랑 다른, 몸에 상처가 남는 자해를 한 하루를 볼 때 내심 두려웠다. 나도 저렇게 힘든 걸 밖으로 표출하지 않을까. 그래서 괴로울 때마다 두려웠다. 혹시 내가 또 나를 다치게 하지 않을까.
둘째, 성병에 대한 죄책감.
바람처럼 스쳐간 관계들.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간 순간들이 나를 괴롭혔다. 죄책감이 가슴 한쪽을 짓눌렀다. 이건 내 탓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범죄에 대한 공포.
감정을 제때 내지 못했다. 쌓이고, 터지고, 다시 쌓였다. 그 과정에서 머릿속에 끔찍한 상상이 자랐다. 다만 잘 안 터질 뿐이었다. 4년 혹은 5년에 한 번씩 터지곤 했다.
아동, 성, 폭력, 살인 같은 단어들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뉴스에서 보고 소문으로만 듣던 가장 잔인한 방법과 생각들이 시뮬레이션되었다. 실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상상조차 날 괴롭혔다. 그 어둠이 자라며 나를 세상에서 고립시켰다.
넷째, 왜곡된 자기 이미지.
누굴 부러워하지 않았지만, 내 안에는 알 수 없는 결핍이 있었다. 어디서였을까, 불완전한 가족? 말 더듬기? 뇌전증? 어디였을까? 나에겐 어느 순간 성형, 약물, 수술 같은 단어가 맴돌았다.
살면서 비교라는 걸 해본 적이 없고 나는 나를 치켜세우며 살았다. 하지만 어느덧 남과 나를 비교하고, 나를 깎아내렸다. 그러다 스스로가 점점 낯설어졌다.
이 네 가지가 얽혀 불안이라는 괴물을 만들었다.
하루 종일 불안했고, 밤은 끝이 없었다. 손톱으로 살을 뜯고, 피가 나도 멈추지 않았다. 생각을 멈추려고 온갖 행동을 해도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그럴수록 ‘나’라는 사람은 사라져 갔다.
그때 내 옆에는 하루가 있었다.
하루는 내게 “괜찮아”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내 옆을 안 떠나는 하루가 신기했다.
하루는 내 안의 어둠을 보면서도 도망치지 않았다.
나는 하루에게 의존했다. 하루에게 미안하지만 정말 미안하지만 의존을 조금 하겠다고 했다. 내가 다시 인지장애에서 벗어날 때까지였다.
나쁜 걸 알면서도 하루를 보면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다. 하루를 처음 봤을 때, 마음 속에 감정이 새솟았던 그 때를 생각했다.
병원은 가지 않았다. 몇 개월 다니면서 처방받았던 약은 금세 익숙해졌고, 취업에 불리하다는 말이 무서웠다.
그리고 상담이나 조언들은 크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말만 되뇌었다.
하지만 불안은 더 커졌고, 기억은 흐려졌다.
하루일지를 쓰며 스스로를 심문하듯 되짚었다.
“자해했나?”
“감염됐나?”
“범죄를 저질렀나?”
“아무 일도 없었나?”
머릿속이 멈추지 않았다. 뇌전증으로 기억이 흐려진 적도 있었기에, 내 기억은 신뢰할 수 없었다.
불안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그림을 그려가면서, 기록을 적으면서 1초 1분 1시간 단위로 세세하게 기록했다. 봤던 차들, 봤던 사람들, 스쳐 지나갔던 길들 내가 어떠한 행동을 했고 어떠한 말을 했는지 *2배로 시간을 썼다.
혼자 견디려 했다.
과거는 과거라지만,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완벽해야 했다. 깨끗해야 했다.
‘나쁜 생각’을 하면 그것조차 죄로 느껴졌다.
그럴수록 나를 미워했다.
나는 결국 휴학했다. 본가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반겨주셨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괜찮은 척, 곧 나을 척했다.
하루와의 연애는 멈췄다. 하루는 점점 밝아졌고, 나는 점점 침잠했다.
하루가 부디 제발 내 곁을 떠나서 행복해지길 원했다.
하지만 하루는 나와 요리를 함께하고, 내 손을 잡고 사람 많은 거리를 걸었다.
“여기 네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잖아.”
그 한마디에 눈물이 날 뻔했다. 나 같은 놈도 감정이 있고, 눈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24년 만에 깨달았다. 난 감정을 느껴본 적도 잘 없었고 눈물을 흘린 적도 없었다.
나는 하루에게 말했다.
“나을 때까지만 각자 열심히 살자. 그때도 우리가 좋으면 다시 만나자.”
겉으론 괜찮은 말이었지만, 속으론 조용히 사라질 생각이었다.
모든 연락을 끊고, 폰을 버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쉬고 싶었다. 그럴 자본도 충분했고, 중학교 때 혼자 살았던 때처럼 홀로 있고 싶었다.
하지만 하루는 고집스러웠다.
“같이 이겨내자. 네가 날 도와줬던 것처럼, 이번엔 내가 너를 도울게.”
우리는 함께 휴학했다. 누나의 만류, 어머니의 만류, 매형의 만류, 주변 지인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강행했다.
작은 원룸을 구해 동거를 시작했다. 새벽 세 시, 아무도 없는 헬스장.
러닝머신 위에서 숨을 몰아쉬며 생각했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왜 무너졌을까.’
또 다른 자해라는 걸 알았지만, 나 때문에 하루가 고통스럽고 타인이 고통스러워 하는 걸 보기 싫었기에, 최대한 티를 안내면서 좋게 해결해나가려고 했다.
사람을 마주하는 건 여전히 무서웠다.
문 앞에서 1시간을 서 있거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스스로 미쳐간다는 걸 알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보고 싶었다.
한 번만이라도, 날 도와달라고 빌고 싶었다.
하루는 끝내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난 이때 깨달았다. 그리고 하루에게 말했다.
"날 안 떠나는 건 하루의 자유지만, 분명 나는 더 아파질 거고 우리는 상당히 많이 부딪힐 거야 하루야. 네가 부디 편안한 선택을 했으면 좋겠어"
하루는 내가 폭력적으로 변해도, 발작을 일으켜도, 하루는 곁에 있었다.
그러다 하루가 울며 말했다.
“진짜 힘들면 같이 병원 가자. 이제 그 약속에서 벗어나. 제발 너 자신을 사랑해. 널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잖아. 나랑 행복하게 애기 오순도순 낳고 살자며 바보야”
하루의 울음은 내 마음속 가장 단단한 벽을 무너뜨렸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불안은 여전히 내 곁에 있고, 때때로 강박이 다시 찾아온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불안이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해 존재한다는 걸.
내가 스승님께 말했듯이 이걸 이겨내면 나는 너 강한 나로 돌아올 것이다. 물론 그 날이 언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쓴다.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인지를 하기 위해.
언젠가 이 글이, 나처럼 불안에 잠긴 누군가에게 닿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