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으로 어둠을 이기지 마

최악의 해를 지나, 다시 삶을 배우는 법

by 감자돌이

최악의 해

최악의 해였다. 관계들은 엉켜버렸고, 감정은 뒤섞였다. 하루가 말한 대로 되어버렸다. 마음 깊은 곳을 공유하고 이해하기 시작했지만, 하루의 말처럼 매번 좋을 수는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최악으로 치달았다. 우리의 관계도 최악으로 치달았다.

난 기억을 지우고, 가짜 기억을 만들어내며 무너졌다. 말은 거칠어졌고 행동은 난폭해졌다.

결국 하루에게 떠나라고 했다. 늘 그랬다. 누군가 떠나면 나는 강해질 거라 믿었다. 늘 혼자였고, 그래왔으니깐. 하지만 하루는 그 말을 싫어했다.


“그런 남자를 사귀었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미 내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던 하루는 끝내 이렇게 말했다.


“어둠으로 어둠을 이기지 마.”


난 그건 루프라고 했다. 나는 그저 버티기 위해 그렇게 한다고 했고, 하루는 감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어쩌면 내 뇌에 저렇게 각인되어 버린 게 아닐까, 이겨낼 수 있는데 사실은 익숙함이 편해서 이성을 택하는 게 아닐까, 조금씩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무너짐

치료는 되지 않았고,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운동만 한다고 치료되는 건 역시 아니었다. 다양한 사람, 외향적인 활동을 많이 했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하였다. 결국 우린 시간을 버린 거였다. 1년이 더 흘렀다. 재정 문제까지 겹쳤다. 난 두려움과 망상에 시달리며 외출을 포기했다. 고통스러웠다. 그때 아버지가 떠나시기 전, 마약성 진통제에 의지하며 괴로워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그를 보면서 되게 나약하다 생각을 했었다. 그게 내가 될 줄은 몰랐다. 내가 본 나는 정말 나약했다. 불쌍할 정도로 나약했다.

경찰이 필요했다. 자해를 넘어 타인을 해칠까 두려웠다.

누군가 나를 강제로 병원에 데려가주길 바랐다.

결국 나는 정신병원 입원을 자처했다. 난 정말 최악의 남자친구이자, 최악의 아들, 최악의 동생이었다.

생각이 너무 많았을까 결국 대발작을 일으켜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 모든 사실을 하루는 어머니께 알렸다. 우리 둘의 힘으로는 안 되는 문제였고 어쩌면 진작에 이랬어야 했었다


어머니와 하루

나의 어머니는 하루와 유사하게 닮으셨다. 어머니는 하루에게 내 성격, 취향, 성장환경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헤어져라.”라고 했다. 우리 어머니는 본인 자식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자식도 아꼈고, 하루가 불건강한 연애를 끝냈으면 바랐다. 하지만 하루는 거절했다. 왜였을까. 하루도 나만큼 무너져 있었던 걸까. 아니면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돌아가고 싶어서일까. 며칠 뒤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대화는 매끄럽지 않았지만,


“이제 네가 원하는 걸 해라.”


그 한마디에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더 이상 어머니가 기억하던 밝은 아들이 아니었다. 이젠 눈에 총명함도 사라지고, 얼굴에 웃음도 사라지고, 두려움이란 것과 공포, 후퇴, 부정이 뭔지도 몰랐지만 이젠 그 누구보다 알게 되었다. 어찌 보면 현실적으로 바뀌었다고 보이기도 하겠지만 어머니 앞에선 한없이 소중한 아들이었다.


다시, 하루와


우리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나는 하루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감정적 의존이 심해졌다.

자취방은 두 개였지만, 거의 함께 있었다. 그러다 결심했다.


‘10년이 지나기 전에 살아야 할 이유를 새로 만들자.’


난 아버지가 죽을 때,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의 발전을 위해 10년을 대출했었다. 그래서 10년이 지나면 엄청 나약해지고 여러 가지 감정, 정신적인 문제가 터질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기 전, 하루를 만나버렸고 난 하루와 더 밝고 행복한 꿈을 그렸다.

어느덧 약속보다도 하루가 내 삶에 있어 중요해지는 거였다. 난 이걸 목표로 버티기로 했다.

약을 삼켰다. 그래도 좋았다. 지금의 나는 불안정했고, 그 불안 속에서 나 자신을 버리기로 했다.

하루는 금세 눈치챘다. 너무 많은 시간을 함께했으니까. 내 말투, 눈빛, 숨결까지 다 알고 있었다.

매번 말했다.


"꼭 사람이 강할 필요는 없어, 상황에 맞게 감정적으로 살아가는 게 사람이야. 넌 기계가 아니잖아."


아버지의 제사

다음 해 4월, 아버지의 제사가 다가왔다. 나는 제사에 잘 가지 않았다. 가도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누나와 싸운 뒤에야 겨우 술을 따르거나 절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부터는 차 안에서 혼잣말을 했다.

보러 갈 면목이 없었다.


“아빠, 너무 힘들다. 자신이 없다.”

“두 여자를 책임질 자신이 없다.”

“그래도 일단 해볼게.”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아예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하루와 함께 가기로 했다. 그리고 10년 넘게 하지 않았던 일을 하기로 했다. 꽃을 사서 드리고, 그 약속을 놓아주기로 했다.

아버지와의 좋았던 기억, 힘들었던 기억, 약속, 모두 다 깔끔하게 과거의 기억 속에 묻어둘 예정이다.


새 생명, 새로운 약속

그 무렵 누나는 결혼했고 조카가 태어났다. 생명의 탄생은 신기했다. 그 작은 손을 보며 웃음이 났다.

그때부터 하루와 처음 만났던 스무 살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 하루와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선명해졌다.

우리 나이는 스물여섯이었다.


“내가 다 나으면, 우리 아기 가지자.”


하루는 가족환경 때문에 비혼주의였지만, 나와 함께하며 결혼과 아이에 대한 생각이 생겼다고 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하루와 아이를 갖기 위한 준비를 목표로 삼자. 그게 내가 다시 밝음을 찾는 이유였다.


다시 걷기 시작한 길

졸업과제와 시험을 치르며 대학생활을 마무리했다. 가끔 길을 걸으며 과거를 이야기했다. 평범하고, 행복하고, 고통스러웠던 연애의 모든 단계를 함께했다. 다양한 감정의 맛을 느끼며, 어느덧 6년이 흘렀다.

이제 우리는 결정해야 했다. 취준생 신분이 된 지금, 사회의 첫걸음을 어떻게 내딛을지. 그리고 우리의 연애를 어떻게 이어갈지.


서울로

많은 대화를 나눈 끝에 결심했다.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고 돈을 모아 서울로 가자. 나는 롯데리아, NBB버거, 택배 상하차를 전전했고, 하루는 편의점과 PC방에서 일했다.

땀 흘릴수록 돈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살아야 할 이유’를 조금씩 되찾았다.


“돈의 소중함은 좋지만, 힘든 속에서 이유를 찾진 말아 줘.”


하루의 말이 오래 남았다. 그렇게 우리는 자본을 조금씩 모았다. 운 좋게도 14평짜리 작은 집을 구했다.

이사차에 몸을 실으며 생각했다.


‘이제 새로운 추억을 쌓자.’


새로운 시작

2024년 2월, 우리는 서울에 도착했다. 3층 주택의 2층에서 살며 3층까지 관리했다. 방 두 개, 화장실 하나, 작은 주방과 거실. 소박했지만 충분했다. 집을 꾸미고 미래를 계획했다. 취업상담을 받고, 국비교육을 들으며

서울 곳곳을 걸었다. 남산타워에서 자물쇠를 걸며 서로의 미래를 약속했다. 그해 말, 우리는 둘 다 취업에 성공했다. 그리고 올해, 2025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