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나를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 글을 쓰기 전, 노트북에 쌓여 있던 ‘언젠가 쓰려고 했던’ 브런치 소재들을 다시 봤다.
잼버리, 일본, 카이스트, 학원, 수영… 많은 소재들, 기억날 때마다 적어둔 이야기들이다. 한때는 그걸로 글을 더 써볼까 했지만, 이제는 그만 과거에서 벗어나려 한다.
하루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예전에 내가 했던 말을 되돌려줄 때가 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안 바뀌어. 좋았든 나빴든, 지금을 보자. 현재가 좋으면 그걸로 된 거잖아.”
그 말처럼 하나씩 고쳐가려 한다.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부터, 걱정 하나하나까지. 하루가 말했듯 긴 여정이 되겠지만, 하루와 함께라면 괜찮을 것 같다.
길었던 8년이었다.
스무 살의 나와 정반대로 살아온 그녀를 만났다. 예전엔 여러 소개를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재밌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하루를 처음 본 순간, 행복했다. 더 보고 싶었고, 오래 함께하고 싶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후회한다. 나도 그랬지만, 하루와의 시간만큼은 단 한순간도 후회되지 않았다. 힘들었지만 그 모든 시간이 좋았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가 떠오른다.
“사랑해 봐라. 많은 게 바뀔 거다. 나도 네 엄마 만나고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자식을 가져봐라. 그 기분을 꼭 느껴봤으면 좋겠다.”
그땐 몰랐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사람들은 내가 유해졌다고 말한다. 말도 부드러워지고, 짐승 같던 내가 사람이 됐다고. 도대체 과거에 얼마나 거칠었길래 그런 말을 하는지 궁금하지만, 어쨌든 지금의 나는 하루 덕분이다.
하루를 몹시 사랑한다. 아버지처럼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을 만큼.
그런데 하루는 말했다.
“희생은 하지 말았으면 해. 애기둥이들이랑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자.”
그 말이 오래 남았다.
하루에게 프러포즈할 생각이다. 사실 스무 살 때부터 마음에 있었다.
연애는 내 뜻대로 순탄치 않았고, 변수도 많았다.
“하루가 24살에 졸업했더라면”,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등과 같은 조건문이 그 시기를 계속 미뤘다.
이제는 더 미루지 않으려 한다.
날짜는 정하지 않았다.
지인들은 내가 푹 빠져 사람으로 만들어준 하루를 궁금해하지만, 우리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나는 솔직히 하고 싶다. 하루 같은 사람과 결혼한다는 걸 세상에 알리고 싶다.
하지만 하루는 조용히 살고 싶어 한다. 식을 올려도 좋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건 싫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끼리 조용히 여행을 가서, 그곳에서 약속하려 한다.
자연스럽게 반지 이야기가 나왔다.
어릴 적, 아버지는 종종 나에게 토템 같은 걸 주셨다.
“이건 네 곁에 누가 있는지를 기억하게 해 줄 거야.”
그 말이 아직도 선명하다.
하루는 패션에 관심이 많다. 주얼리 브랜드 이름을 많이 알고 있다. 반지 하나의 가격이 놀라울 때가 많다.
나는 연애 초반부터 종종 예쁜 돌멩이를 줬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하루에게 주고 싶었다.
신기하게도 펭귄이 사랑하는 이성에게 돌멩이로 구애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하루는 가끔 “이건 별로 안 예뻐”라며 장난스럽게 구애를 거절하곤 했다. 그럴 땐 괜히 속상하다.
그래서 스톤 반지를 생각했다.
광물로 만들어도 좋지만, 처음 하루에게 줬던 그 돌멩이로 만들고 싶다.
기억에 남게.
하루는 그런 나를 보고 “감자돌이는 참 순수하다”라고 말한다.
출근할 때 하루가 늘 먼저 나간다.
나는 비몽사몽 한 채 꿈나라를 헤맨다.
그러면 하루는 포옹과 입맞춤을 해주러 온다.
그 순간이 참 행복하다.
이 행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이 어느새 목표가 되어 선순환이 된다.
앞으로 무슨 글을 쓸까 고민이 많았다.
하루는 가치관이나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라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조심스럽다. 가치관과 감정은 어려운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소하게 하루와 지난 한 주의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훗날 아이가 태어난다면, 이 글을 읽으며 나와 하루를 이해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맙습니다, 긴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 날 사랑해 주는 하루, 어머니, 누나, 지인분들. 그리고 아버지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