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의 향수보단 시간의 향수에 대하여
향수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대개 멀리 떠나온 고향 집이나 낯선 타국 땅을 떠올리곤 합니다. 사전적으로도 고향을 그리워하거나 지나간 시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라 정의되어 있습니다.
저는 대구를 떠나 서울로 온 지 어느덧 2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제게 공간으로서의 고향에 대한 향수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제가 진짜 앓고 있는 향수는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나간 시대’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삶이 싫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를 절실히 그리워하기에 지금의 제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가끔은 요즈음의 차가운 도시 공기보다 그 시절의 ‘사람 온기’가 사무치게 그리울 뿐입니다.
그 시절엔 지금과는 결이 다른 시끌벅적함이 있었습니다.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면 고민 없이 친구에게 "너희 집 가도 괜찮아?" 물어본 후, 친구네 집 대문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아직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 앳된 목소리로 “아주머니, xxx이 친구 감자돌이 왔어요!” 한마디면 당연하게 숟가락 하나가 더 놓였고, 해가 지면 내 집처럼 편안하게 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었지만, 우리를 묶어주던 건 ‘이웃’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공동체였습니다.
수요일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장날의 풍경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거리는 사람들의 흥정과 웃음소리로 활기가 넘쳤습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소음이 아니라, ‘우리가 여기 살고 있다’고 외치는 생의 생생한 박동이었습니다.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에 이해와 양해가 당연했고, “밥은 묵었나”라는 안부 인사가 참견이 아닌 진심 어린 걱정으로 다가오던 시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시절의 물가는 지금처럼 매정하지 않았습니다. 주머니에 든 동전 몇 개만으로도 배를 불릴 수 있는 불건강한 주전부리가 넘쳐났고, 설령 돈이 조금 모자라더라도 "신뢰"라는 웃음 섞인 외상 한마디가 통하던 시대였습니다. 숫자와 효율로 계산되는 지금의 물가와 달리, 그때의 물가 속에는 사람 사이의 '에누리'와 '덤'이라는 따뜻한 여백이 존재했습니다. 만 원 한 장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울 수 있었던,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부유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소위 MZ세대라 불리는 범주에 속해 있으면서도, 저는 가끔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에 경이로움을 넘어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어린 시절 겪었던 IMF의 기억부터 플로피디스크, CD, MP3, 폴더폰을 거쳐 지금의 태블릿 PC, AI 로봇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참으로 변화무쌍한 시대를 통과해 왔습니다. 이토록 수많은 경험을 한 시대에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일 것입니다.
가끔 상상해 봅니다. 지금 제가 브런치에 적어 내려가는 이 글도, 머지않은 미래에는 타자를 치는 수고로움 없이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 창조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요. 그런 미래가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잠들기 전, 저는 머릿속에서 오래된 영화 테이프를 하나 꺼내 봅니다. 지지직거리는 노이즈를 뚫고 그 시절의 풍경이 재생되면 저는 천천히 꿈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하지만 꿈은 결국 꿈일 뿐입니다. 눈을 뜨면 마주하는 현실은 겨울바람보다 더 시린 사람들의 무관심과 차가운 마음들입니다.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세상은 더 깨끗하고 편리해졌을지 몰라도, 우리 마음의 온도는 조금 더 높여야 하지 않을까요. 플로피디스크에 담기던 투박한 진심과 장날의 시끄러운 정, 그리고 넉넉했던 덤의 문화를 지금 이 차가운 고지능의 현실로 조금씩만 끌어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억 속의 향수는 우리를 쉬게 하지만, 그 향수를 현실의 온기로 재현하려는 마음은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고 믿습니다. 오늘도 저는 그 시절의 온기를 기억하며, 무미건조한 키보드 소리 너머 누군가에게 조금 더 따뜻한 안부를 건네는 사람이 되고자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