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탈함

공든 탑이 무너진 자리에 존재하는 친구

by 감자돌이

제가 마음속에 늘 품고 사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잘해라. 네가 성공해서 돌아왔을 때, 이미 모든 것이 변해있거나 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이 짧은 문장은 제게 성공에 대한 집착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곤 합니다.


사전에서는 허탈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큰 노력이나 기대 끝에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일이 허무하게 끝났을 때, 몸과 마음의 기운이 빠지고 멍하며 공허하고 쓸쓸한 느낌이 드는 상태.’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혹은 모든 노력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그 깊은 늪에 빠집니다. 특히나 그 탑을 쌓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마치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법칙처럼, 큰 노력을 던진 만큼 돌아오는 허무의 크기도 비례합니다. 어쩌면 공평한 세상의 이치 같아 보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이보다 더 잔혹한 형벌이 없습니다.


사실 이 글은 저의 뼈아픈 회상입니다. 저는 과거에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오직 성공이라는 목표만을 위해 어머니, 누나와 연을 끊으면서까지 자신을 채찍질했습니다. "나중에 성공해서 떳떳하게 돌아가면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라 믿으며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토록 갈구했던 성공의 언저리에 닿기도 전에 돌아온 것은 뇌전증이라는 병이었습니다. 과도한 몰입과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을 갉아먹었고, 추가적인 정신적 고통들이 뒤따라왔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약속을 하신 아버지, 남겨진 가족과의 관계는 화합의 기회를 잃은 채 돌이킬 수 없이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제가 쌓아 올린 노력의 탑 끝에서 마주한 것은 승리의 깃발이 아니라, 더 이상 온기를 찾을 수 없는 폐허였습니다. 물론 10년도 지난 그때의 전성기를 기억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결국 실패했지만 많은 것을 이루었었고 할 수 있다는 문장을 널리 퍼트렸습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소중한 기반을 허물며 쌓은 성이 얼마나 무력했는지, 저는 그 차가운 침묵 속에서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분이 목표를 향해 달리고 계실 겁니다. "나는 저 사람과 다를 거야"라고 외치며 목표에만 집중하거나, "더 빨리 성공해서 돌아가면 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하겠지요. 그 의지는 충분히 멋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먼저 겪으며 느낀 점을 감히 말씀드리자면, 대인관계라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시스템을 결코 만만하게 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해관계와 감정으로 얽힌 사람 사이의 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한 번 깨어지면 복구하기 힘듭니다.


학벌을 신앙처럼 여기는 사회에서 수년을 바친 시험의 패배나, 밤낮없이 매달렸던 프로젝트의 허망한 실패는 우리 마음에 차갑게 식은 재를 뿌리고 갑니다. 허탈함이 마음의 문턱을 넘어서면 공허함이 되고, 그 공허함은 곧 우울과 슬픔으로 번집니다. 나 자신을 온전히 갈아 넣어 달려왔기에, 그 노력이 무너진 세상은 그저 텅 빈 구덩이처럼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무너진 탑의 잔해 속에서 다시 질문을 던져봅니다. 우리가 허탈함을 느끼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그만큼 뜨겁게 무언가를 갈구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허탈함조차 허락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볍게 질문을 던지는 저 똑똑한 AI조차 수많은 실패의 데이터 위에서 탄생했습니다. 실패는 오답이 아니라, 정답으로 가는 과정의 로직일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허탈함과 친구가 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허탈함에 몸과 마음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분들이 계신다면, 잠시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저처럼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깨닫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맹목적으로 성공을 향해 달릴지라도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잊지 마십시오. 가족과 친구에 대한 연락, 최소한의 존중과 사랑, 그리고 예의 말입니다. 그것들이 결여된 채 이룬 목표는 설령 꼭대기에 닿았을지언정, 그 끝에서 마주할 것은 더 깊은 허탈함뿐일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허탈함은 끝이 아니라,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 전 잠시 숨을 고르는 쉼표입니다. 다시 일어설 때 잊지 마십시길 바랍니다. 나중에 성공한 뒤로 소중한 것들을 미루지 말고, 허탈함의 그늘에 가려 지금 내 곁을 지켜주는 온기들을 결코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