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어. 나약해질게
강해지기 위해 버렸던 과거의 나 '감자돌이'에게
제 인생의 문법에서 ‘나약함’은 결코 허용되지 않는 오답이었습니다. "나약해지지 마라", "그건 나약한 소리다"라는 말들은 제 삶을 지탱하는 문장이자 저를 옥죄는 사슬이었습니다. 과거에 겪어야 했던 폭력과 강압적인 순간들 속에서, 저는 늘 그 원인을 저의 '나약함'에서 찾았습니다. 내가 약해서, 어려서, 힘이 부족해서 당하는 것이라 믿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강해지기로 결심했습니다. 누구에게도 맞지 않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저를 단련했습니다.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운동으로 몸을 키웠고, 정신력을 다스렸으며, 밤잠을 설쳐가며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노력은 저를 배신하지 않았고, 저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외피를 갖게 되었습니다. 남을 돕고 조율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을 만큼 여유도 생겼습니다. 외적으로 보기에 저는 온전한 성인이었습니다. 통제와 강함이라는 단어 속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제 안의 날 선 칼날은 여전히 '나약함'을 향해 있었습니다. 내면은 여전히 차가운 금속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조차 슬퍼하기보다 그 모습이 나약해 보인다고 생각할 정도로, 저는 저 자신과 타인에게 냉정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어느 날, 곧 아내가 될 하루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꼭 GPT 같아. 틀린 말은 안 하는데, 인간미가 하나도 없어. 내가 대학 1학년 때 알던 그 '감자돌이'는 어디 갔어? 그 모습은 다 거짓이었어?"
그녀는 저의 뇌전증이나 마음의 병, 저의 모습을 단순한 질병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의 완고한 '마인드셋'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녀에게 나약함이란 인간이 가진 고유한 산유물이었습니다. 적당히 자신을 놓아줄 줄 알고, 슬플 때 울며, 아플 때 아픔을 충분히 느끼는 것. 그것이 하루가 말하는 인간다운 삶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환경의 차이가 만든 가치관의 간극이었겠지 생각했습니다. 제게 나약함은 여전히 패배와 굴복의 상징이었습니다. 굳건하였고 바뀌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루는 저에게 '따스한 나약함'이라는 생소한 감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나약함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에 닿을 수 있다는 그녀의 말은, 강철 같던 제 마음에 균열을 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저를 보며 "하루가 짐승 같던 놈을 사람 만들어 놓았다"며 늘 말씀하셨습니다.
이 균열을 내는 데 무려 3000일이 걸렸습니다. 하루는 제가 강해지려 애쓰는 방식을 때론 '무식하다'라고 할 만큼 걱정했습니다.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은 좋지만, 저는 늘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있었습니다. "오늘은 무조건 15km를 뛴다", "200kg 스쾃를 50개 채운다", "이걸 해결 못 하면 잠들지 않는다"는 식의 극단적인 몰입은 저를 지탱해 오고 발전시킨 힘이었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소외시키는 이기적인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오직 저의 강함만을 위한 거였습니다.
저는 강해지는 것만이 보호라 믿었지만, 정작 하루가 원한 것은 강철 같은 보호막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고 멈춰 설 줄 아는 "심리적 유연성"이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아직도 어디까지가 '열정'이고 어디서부터가 '과각성된 강박'인지 그 경계선을 잘 모릅니다. 어디서 멈추고 어디서 끊어야 할지 몰라 여전히 휘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애기처럼 하루에게 감정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진정한 강함은 자신을 파괴할 정도로 밀어붙이는 에너지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잠시 멈춰 서서 옆 사람의 눈을 맞추는 여유에서 나온다는 것을요. 저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잠시 쉬는 그 시간조차도 아까웠던 저는 이제는 강함을 놓아주기로 다짐했습니다.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나약함'을 죄악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계신 분이 있나요? 강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믿음은 때론 우리를 생존하게 하지만, 결코 행복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그토록 혐오했던 나약함은 사실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통로입니다. 완벽한 강철에는 꽃이 피지 않지만, 갈라진 틈 사이로는 들꽃이 피어납니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살겠다는 가장 용기 있는 선언입니다. 저와 함께 그 무거운 갑옷을 조금씩 내려놓아 보시는 건 어떨까요. 저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려도 괜찮습니다. 그 틈으로 비치는 햇살은 생각보다 훨씬 따스할 테니까요. 그럼 다들 좋게 나약해지길 행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