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향

허상인가

by 감자돌이

허상이라는 이름의 성냥, 이상향이라는 이름의 집


너에게 다가가던 150m 동안 수많은 미래를 보았다.


요즘 들어 부쩍 주변의 소중한 여성들과 부딪히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여자친구인 하루(가명)를 비롯해 어머니, 그리고 둘째를 임신 중인 누나까지. 어쩌면 제 곁의 그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가치관의 잣대를 들이밀며 저를 압박하곤 합니다. 때로는 저 역시 그들이 말하는 ‘현실’이라는 가치관을 암묵적으로 무시해 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대화의 끝에서 저는 늘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정말 실체 없는 허상만을 쫓고 있는 걸까?’


하루는 제게 말합니다. “너는 너무 현실을 몰라. 둘만의 사랑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니야. 제발 그 차가운 현실을 좀 봐. 난 결혼에 적합한 여자가 아니고, 너 정도면 나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어.”


저는 감정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말을 유려하게 잘 못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비관 섞인 말들 앞에서 제 마음속엔 수많은 대답이 소용돌이쳤습니다.


‘나한테는 네가 가장 좋은 여잔데, 왜 굳이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할까? 사람은 늘 더 좋은 조건을 찾아 헤어지며 살아야만 하는 걸까? 제약이 많아서 우리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나는 그저 내 앞에 있는 너에게 최선을 다할 뿐이야. 그러니 제발 울지 마. 네가 아니었다면 사서 고생할 일도 없었겠지만, 너를 처음 만나러 가던 그날, 그 거리에서 너에게 다가가던 그 짧은 150미터 동안 나는 이미 너와 함께할 수많은 미래를 보았어. 그 풍경이 정말 좋았어. 네가 네 과거와 우리 집안의 사정을 알고 스스로를 결혼 상대로 부족하다 말해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


이런 진심을 다 뱉어내지 못하고 돌아설 때면 가슴 한구석에 허탈함이 차오릅니다. 제가 쌓아온 노력들이 모두 신기루에 불과했던 걸까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달렸던 시간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저의 모든 것을 걸고 무모한 도전에 뛰어들었을 때 주위 사람들은 늘 말했습니다.

“그건 허상이다, 결국 다 죽는 길이다, 제발 어린애처럼 굴지 말고 현실을 받아들여라.”


그들이 말하는 현실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다가오는 현실 앞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무력하게 순응하는 것이 정답일까요. 저는 차라리 온몸으로 부딪히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지금 부딪쳐서 깨질지언정 최악은 면할 것이고, 운이 좋다면 제가 꿈꾸던 지점에 닿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일찍이 아버지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매 순간 본인이 생각하는 '최고의 수'를 두라고 말입니다. 설령 그것이 결과적으로 패착이 될지라도, 그 순간 스스로 내린 최선의 수였다면 후회는 남지 않는 법입니다. 하루와의 사랑 역시, 제 인생에서 제가 둘 수 있는 최고의 수입니다.


하루를 먼저 재우고 홀로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하루의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그 어둡고 암울했던 사춘기 시절부터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허상 속에 갇혀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추위 속에서 성냥불을 켜며 오지 않을 따스함을 꿈꾸듯, 저 역시 어둑한 현실을 견디기 위해 찬란한 미래라는 최면을 걸며 달려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 시절 제가 바랐던 허상은 지극히 단순했습니다. 부모님과 누나가 곁에 있는 것, 따뜻한 밥을 먹는 것, 집안에 온기가 도는 것. 그런 소박한 풍경들이 제게는 가닿을 수 없는 이상향이었습니다. 그 작은 온기를 지키기 위해 저는 성냥을 켰고, 이제는 그 성냥불을 모아 하루와 함께 살 집이라는 실체를 지어보려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허상을 동력 삼아 현실을 바꿔왔습니다. 학창 시절, 제가 성공하도록 도와주신 감사한 분들도 계시지만 저를 비웃던 분들도 많았습니다. 제가 유명해지겠다고 했을 때, 전교를 넘어 전국에서 손꼽히는 1등이 되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들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아무도 제게 힘을 실어주지 않았을 때 저는 가장 강했습니다. 비웃음을 동력 삼아 결국 제가 말한 것들을 증명해 냈고, 그 성취는 오롯이 저만의 것이 되었습니다. 비록 모든 결과가 완벽하진 않았을지라도, 최악을 면했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그림을 그려왔기에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제 하루와의 문제는 결을 달리합니다. 결혼, 임신, 육아. 이것은 저 혼자만의 승리가 아닌 ‘우리’의 생존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저의 일방적인 이상향을 강요할 수 없다는 하루의 마음을 가슴 아프게 이해합니다.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는 25살 때 아기를 가지자고 했지만, 그때 제 생각엔 너무 급박하고 이룬 게 없어서 미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결혼과 육아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오랜 시간을 하루와 함께했지만, 여전히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고 세상에 날을 세우는 그녀를 대하는 일은 참으로 고단한 일입니다. 1년에 10% 씩 오르늕것같습니다. 어제 하루가 이제 90%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하루는 이전보다 많이 성장했고 마음을 열어주었지만, 가끔은 제가 충분한 믿음을 주지 못한 탓은 아닐까 자책하곤 합니다. 그녀의 아픈 과거와 트라우마를 더 깊이 보듬었어야 했는데, 저의 이상향에 취해 그녀의 불안을 이기심으로 치부했던 것은 아닐지 반성하게 됩니다.


누나는 제게 현실적인 지표를 들이댑니다. “집은 어떻게 할 건데? 애 키우는 게 장난인 줄 알아? 돈은?” '정말 하루집이 돈을 달라할지 어떻게 알아 사람일 모른다니깐' 어머니 역시 양가의 상황을 거론하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십니다. 어머니와 누나를 미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느낌을 물씬 받았습니다. 제게 그들의 ‘안정’이라는 단어는 그리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사실 그들이 안정을 논할 때마다 제 마음 한구석에서는 서운함이 고개를 듭니다. ‘내가 2~3년을 혼자 고립되어 버티고 있을 때 찾지도 않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무슨 안정을 말하는 걸까’ 하는 해소되지 않은 원망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전 조언은 고맙고 감사하며 참고해 보겠다고 그럴 때마다 경험자의 말은 들어서 나쁠 게 없다고 하십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경험을 믿었으면 전 이렇게 성장하지 못했다는 걸 알기에 그들에게 대적하기보단 참고합니다. 대가는 제가 치르며 되는 겁니다.


제가 믿는 안정은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더 치열하게 노력해서 쟁취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와 하루는 각각 매달 200만 원 남짓을 저축하며 함께 살 집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있습니다. 양가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방향성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노력이 결국 많은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전히 믿습니다. 이상향을 쫓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다만 하루처럼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 ‘가시 돋친 장미’ 같은 이에게는 저의 꿈이 허황된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음을 이제는 압니다. 그녀를 둘러싼 환경이 만들어낸 육아에 대한 두려움, 화목함에 대한 낯섦, 폭력에 대한 공포. 그 거대한 성벽을 제가 깨 주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정말 대가 없이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구나.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도 그저 사랑이라는 본질 하나로 자신의 시간과 돈, 노력과 감정을 기꺼이 쏟아붓는 사람이 존재하는구나.’


이 진실을 그녀의 삶에 새겨 넣어 주고 싶었습니다. 하루가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길 원했습니다. 그래야 함께 미래의 그림을 그리고, 함께 살 집을 설계하며 같은 이상향을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하루가 좋았고, 그녀와 함께하는 행복을 저의 새로운 이상향으로 삼았습니다.

최근 하루와 함께 중국 영화 '만약에 우리'를 보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하루가 제게 말했습니다.

“너도 저 남주인공처럼, 내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잡지 않았어야 했어. 그랬다면 넌 지금보다 훨씬 더 크게 성공했을걸.”

저는 하루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니, 나였다면 너와 함께 지하철을 탔을 거야. 네가 떠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면, 네 곁에서 보란 듯이 성공해서 널 지켰을 거야. 서로가 헤어져야만 발전할 수 있다는 건 슬픈 핑계일 뿐이야.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그 존재를 동력 삼아 더 치열하게 성공해야 하는 거야.”

이상향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허상이 아닙니다. 또한 불가능도 아닙니다. 정말 어떤 것이 특정인의 이상향이라면 그건 가장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기 위해 현실의 진흙탕 속에서도 끝내 피워내야 할 꽃입니다. 이상향을 위해 무지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찰나의 순간이 굴욕이 아닌 용기였듯, 현실의 벽 앞에서 이상을 말하는 것 또한 저의 가장 뜨거운 책임감입니다. 저는 오늘도 하루의 가시를 피하지 않고 안으려 합니다. 그 가시 아래 숨겨진 그녀의 여린 진심이 저의 이상향 안에서 비로소 안식하기를 바라며.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