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기

이 수가 맞니?

by 감자돌이

불예측성의 파도 위에서 최선의 수를 둔다, 이 수가 맞을까?


오늘날 인류는 초지능의 도래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저는 인공지능이 아직 인간의 온전한 지성에 도달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매 순간의 선택이 지닌 불예측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AI는 주어진 데이터 안에서 정답을 도출하고 확률적 최적값을 찾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학습 모델에 점수를 부여하며 강화 학습을 거치지만, 가치관과 감정이 얽힌 삶의 변수를 수치화하는 것은 이론처럼 심플한 문제가 아닙니다. 수많은 AI 연구자가 이 불예측성을 정복하려 노력하지만, 삶은 여전히 계산 너머에 존재합니다.
몇 년 전, 바둑판 위에서 벌어졌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경기는 이 지점을 명확히 시사합니다. 알파고는 수만 번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승률이 높은 곳을 찾아내지만, 인간이 던지는 ‘의외의 한 수’, 즉 데이터로 규정할 수 없는 직관과 고뇌가 담긴 불예측의 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인공지능에게 경기는 계산의 연속이지만, 인간에게 경기는 생존과 철학의 충돌입니다. 인간의 선택은 단순히 확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패배를 예감하면서도 던져야만 하는 ‘신념의 한 수’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AI가 감정과 가치관, 나아가 철학이라는 무게를 수에 담게 된다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한한 경우의 수가 펼쳐질 것입니다.


경기가 끝나고 판 위에 놓인 돌들을 다시 하나씩 놓아보는 ‘복기’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복기는 단순한 회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수가 맞을까?’라는 현재형의 의구심에서 시작하여, ‘이 수가 맞는 것일까?’라는 존재론적 고민을 거쳐, 마침내 ‘과연 그때 그 수가 맞았던 걸까?’라는 과거 완료형의 성찰에 도달하는 치열한 자기 대화입니다. 이 과정은 스스로의 경험치에 따라 때로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기도 하고, 숙련된 이에게는 성장의 지름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사소하게는 수면 시간이나 식사 메뉴부터, 인생의 향방을 가르는 중대한 결정까지 매초 선택의 돌을 바둑판 위에 내려놓습니다. “오늘은 이 일을 해내겠어”, “그녀에게 반드시 이 말을 전해야겠어”라고 다짐하며 던지는 수들은 제각기 다른 무게로 삶의 무늬를 형성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결과가 나타나면 피드백 없이 “그저 이렇게 됐네”라며 운명론적으로 결과를 수용하곤 합니다. 하루(여자친구 가명)의 말처럼,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삶은 편안하고 스트레스가 적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진화를 쫓는 인간은 결과를 수용하기 전, 반드시 복기의 과정을 거칩니다. 승리했을 때는 오만을 걷어내고 더 완벽한 승리를 설계하기 위해, 패배했을 때는 비굴함을 떨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판을 다시 차리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제게 늘 말씀하셨습니다. 결과가 어떻든 매 순간 본인이 생각하기에 ‘최고의 수’를 두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설령 그 수가 훗날 패착으로 판명 난다 할지라도, 그 순간의 저에게 그것이 최선이었다면 그 수는 존엄합니다. 복기는 바로 그 존엄함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복기를 하다 보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그때의 내가 왜 그런 무모한 수를 두었는지, 왜 사랑 앞에서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히는 수를 선택했는지 말입니다. 인공지능은 감정을 배제하고 승률만을 계산하기에 결코 ‘숭고한 패배’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복기를 통해 깨닫습니다. 때로는 승리보다 값진 패배가 있으며, 안전한 길을 버리고 험로를 택했던 그 한 수가 사실은 제 영혼을 지키기 위한 최고의 수였음을 말입니다.


그러나 복기가 언제나 빛나는 성장만을 약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게 복기는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강박증, 불안장애, 인지장애라는 이름의 저주에 갇힌 이들에게 복기는 때로 멈출 수 없는 고통의 굴레가 됩니다. 저 역시 매일 한 시간 정도를 이 ‘부정적인 복기’에 소모하곤 합니다. ‘소모’라는 단어가 이보다 더 어울릴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문득 ‘오늘 내가 범법 행위를 하지는 않았나?’ 하는 터무니없는 걱정이 고개를 듭니다. 그러면 저는 고통스럽게도 본인의 윤리와 도덕적 의식을 증명할 증거들을 찾기 시작합니다. 스스로 ‘하지 않았다’고 인지할 때까지 끝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려야 하는 이 과정은 말 그대로 영혼의 낭비입니다. 발전을 위한 목적이 아닌,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이 반복적인 행위 앞에서 하루의 말은 때로 정답이 됩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이미 지나간 것은 바꿀 수 없어.” 의미 없는 걱정의 늪에 빠져드는 복기는 우리를 무너뜨릴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다시 복기의 판 앞에 앉습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을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은 바로 ‘후회’와 ‘결심’이기 때문입니다. AI는 오류를 수정할 뿐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복기를 통해 뼈저리게 후회하고, 그 후회의 끝에서 비장한 결심을 끌어냅니다.
“그때 그 수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나는 그 수를 두었을 것이다.”
이 모순적인 문장이야말로 복기의 정수입니다. 과거의 나를 긍정하면서도 미래의 나를 수정하는 것, 불예측성이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서 흔들리면서도 다음 돌을 쥐는 것. 그것이 제가 믿는 복기의 철학입니다.
결과를 그저 받아들이는 자에게 미래는 우연일 뿐이지만, 매 순간을 복기하는 자에게 미래는 필연적인 성장의 무대입니다. 저는 오늘도 저의 부족했던 수들을 복기합니다. 때로는 강박의 저주와 싸우고, 때로는 아버지가 말씀하신 ‘최고의 수’를 고민하며 말입니다. 비록 내일의 선택이 또다시 세상이 말하는 패착이 될지라도, 저만의 복기 노트를 채워갈 저의 행보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