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물어뜯기

자기 파괴적 충동

by 감자돌이

사람은 본래 자기 파괴를 지향하는 동물일까요? 이 질문은 제 생의 몇 안 되는 오래된 궁금증이자, 요즘 다시금 제 입가에 맴도는 비릿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한동안 잠잠했던 이 잔인한 습관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손톱 및 살점 물어뜯기"입니다. 마치 저 스스로가 무너지기를 기다렸다는 듯, 비릿한 금속성 향을 풍기는 이 습관은 제 손가락 끝을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하루(여자친구 가명)의 예쁜 손을 맞잡기 위해, 거친 살점이 아닌 부드러운 온기를 건네주겠다던 저의 굳은 다짐들은 맥없이 무너졌습니다. 뜯겨나간 손가락을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립니다. 강한 통증을 느끼기 위해 더 날카롭게 물어뜯습니다.


제 손톱은 이미 그것이 신체의 일부인지, 혹은 찢어진 비닐 조각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형체를 잃었습니다. 주변의 살점들은 무참히 뜯겨나가 선홍색 피를 토해냅니다.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건축물을 스스로 허물어뜨리듯, 질서를 거스르는 엔트로피의 법칙에 순응하듯, 저는 제 신체를 향해 난폭해집니다. 피부가 벗겨진 자리는 쓰라리지만, 치아 끝에 걸리는 딱딱한 저항감을 기어이 끊어낼 때 느껴지는 묘한 해방감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이 저항감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스스로를 옥죄는 사슬일까요, 혹은 통제할 수 없는 불안의 발현일까요. 아니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행위일 뿐일까요.


초등학교 4학년, 그 무렵부터 시작된 이 행위를 저는 오랫동안 '심리적 압박'이라는 고상한 단어로 포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정직하게 대면한 진실은 훨씬 더 투박하고 아픕니다. 저는 그저 쏟아지는 스트레스를 갈무리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였을 뿐입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시골 마당의 강아지처럼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꼬리를 흔들며 다가가 누군가를 돕는 일을 순수하게 사랑했고, 그것이 저의 본성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밖으로 발산되지 못한 타인의 감정과 억눌린 자아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저 제 몸 안의 어두운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쌓여갈 뿐이었습니다. 내면의 감정이라는 잔이 찰랑거리다 못해 넘쳐흐를 때, 저는 비로소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명백한 자해였습니다. 붉은 피를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가슴속의 응어리가 잠시 가라앉는 정적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피는 역설적으로 저를 가장 차분하게 진정시키는 매개였습니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저의 이 나약한 의식을 꿰뚫어 보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꾸짖으면서도, 동시에 고칠 기회를 여러 번 주셨습니다. 저희 집안의 가풍은 서늘할 정도로 냉정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떤 일이든 두 번 이상의 기회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하나, 둘'이라는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그 후에는 자비 없는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람 대우를 해줄 때, 즉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전에 고쳐야만 했습니다. 어릴 적엔 그런 아버지의 칼 같은 모습이 원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지독한 일관성이 외경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 저는 아버지를 꼭 닮은 성격을 가진 아들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주신 첫 번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식사 도중 제 엉망인 손을 발견하신 아버지는 호통도 없이 그저 짧고 낮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쳐라." 무거운 공기에 눌려 고쳐보려 애썼지만, 엄격한 집안 환경과 계속되는 훈련 속에서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뒤, 아버지는 제 앞에 요오드와 과산화수소를 가져오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소독약이 아니라, 제가 손톱과 살점을 물어뜯었는지 여부를 낱낱이 밝혀내는 심판의 도구였습니다. 요오드 용액은 피부의 결을 짙게 착색시켜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든 미세한 균열과 거친 피부 단면을 적나라하게 시각화합니다. 반면, 과산화수소는 상처 부위의 효소와 반응하여 산소를 발생시키며 하얀 거품을 일으킵니다. 뜯어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선한 상처일수록 거품은 더욱 격렬하게 일어나며, 이는 곧 제가 숨겨둔 자해의 흔적을 고발하는 비명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거품 섞인 손가락을 보시고는 마지막 한 달의 시간을 더 주셨습니다. 그것이 두 번째이자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고, 긴장은 오히려 제 손톱 상태를 악화시켰습니다. 약속한 한 달이 지났을 때, 저는 아무런 핑계도 대지 못한 채 아버지 앞에 섰습니다.

아버지는 조용히 철이 감겨 있는 묵직한 단소를 들고 오셨습니다. "무릎을 꿇고 손등을 내밀어라." 아버지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습니다. 곧이어 단소가 차가운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제 손가락 위로 떨어졌습니다.


스무 대. 손가락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둔탁한 통증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얼얼함을 넘어 감각이 마비될 정도의 고통이었습니다. 실제로 뼈에 금이 갔고, 어린 제 손은 흉측하게 부어올랐습니다. 아버지는 고통에 찬 저를 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고통이 두려우면 끊어라. 순간의 충동이 떠오를 때마다 지금의 이 고통을 기억해라."


하지만 아버지가 간과하신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인간의 불안은 고통보다 훨씬 질겼습니다. 저는 그 지독한 매질을 당하고서도, 그리고 그 후로 환경이 더 거칠어지고 스트레스가 증폭될수록 더욱 필사적으로 손톱 끝에 매달렸습니다. 아버지는 그 이후로도 제 손톱을 꾸준히 확인하며 매질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무렵 부모님이 멀리 떠나시게 되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던 그 슬픈 날에도, 저는 관 앞에서 몰래 손톱을 물어뜯었습니다. 어쩌면 아버지의 매질조차 순간의 감각으로 치유해 버릴 만큼, 제 안의 결핍은 깊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십 수년의 굴레를 멈추게 한 것은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하루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녀의 따뜻한 손을 잡을 일이 많아지면서 저는 비로소 제 손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았던 흉측한 상처들이, 그녀의 온기 앞에서 치유되어야 할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지금도 완벽하게 고치지는 못했습니다. 마음이 휘청이는 날이면 저도 모르게 다시 손가락을 입가로 가져가곤 합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피가 낭자하거나 살점이 너덜거리지는 않습니다. 물어뜯긴 자리에는 이제 제법 단단한 손톱이 돋아나 있고, 손 모양도 꽤 봐줄 만해졌습니다.

손톱을 물어뜯는 행위는 저에게 있어 마음의 잔이 넘치지 않게 비워내는 슬픈 배출구였습니다. 이제는 그 잔을 자학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비워내는 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손가락 끝에는 희미한 흉터가 남아있지만, 저는 하루의 손을 잡기 위해 매 순간 마음을 다잡습니다. 혹시 자신만의 고치기 어려운 자해의 습관이나 방식을 가진 분들이 있다면, 고통에 자신을 내던지기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한 걸음씩 나아가 보시길 권합니다. 파괴보다는 수호가, 고통보다는 온기가 우리를 더 멀리 데려다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