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이 아니다, 우리는 '긍정'이라는 도구로 대화해야 한다
인생의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습니다. 서류상의 공식적인 절차가 가지는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다 가늠할 수는 없지만, 이제 등본을 떼면 서로의 이름이 나란히 나오고, 머지않아 둘에서 셋이 될 미래를 설계하는 지점에 와 있습니다. 하루(여자친구 가명)와 혼인신고 날짜를 조율하고,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기 위한 전반적인 생애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수많은 변수를 계산하고 가장 보수적인 관점에서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대비해야 하기에, 그 과정이 결코 녹록지만은 않습니다. 2017년부터 긴 시간을 함께해 왔기에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고, 이제 더는 부딪힐 일도 없을 것이라 자만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저희는 다시금 서로 다른 각도의 설계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의 설계도는 '완벽한 준비'에 기반합니다. 자본을 조금 더 모으고, 꼭 서울이 아니더라도 인천이나 경기도 등 외곽 지역에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마련한 뒤에 아이를 낳자는 생각입니다. 약 1억에서 2억 정도의 자산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녀는 환경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아는 사람입니다. 본인의 삶에서 겪었던 결핍과 불편함의 싹을, 자식의 세대에서는 애초에 잘라버리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참으로 선하고 귀하게 느껴집니다. 더 좋은 환경을 물려주려는 그녀의 의지는 가장 정석적이고도 숭고한 형태의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어쩜 헌신적이라고 보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의 시선은 조금 다른 곳을 향합니다. 경제와 기술의 변화를 완벽히 꿰뚫지는 못하더라도, 지금의 물가 상승률과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보건대 '기다림과 준비'가 반드시 정답은 아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오늘 저희가 목표로 세운 그 자본의 가치가 훗날에는 지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생각한 수치가 훗날 몇 배로 불어나 저희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 수도 있겠지요.
이러한 시각의 차이는 사실 '과거를 어떻게 극복해 왔는가'에 대한 믿음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지난 글들에서 고백했듯, 저희 둘은 그리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하루는 나름의 최선과 치열한 노력으로 훌륭하게 성장해 왔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리고 저와의 비교를 통해,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는 지점들이 있는 듯합니다. 저 역시 제 성장의 결과에 온전히 만족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잘 성장해 왔다'라고 믿습니다. 저의 삶에 타인의 지표나 평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준 환경이 무엇이든, 물론 최선을 다해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도리겠으나, 그 너머의 몫은 장차 태어날 저희의 귀염둥이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헤쳐 나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학생 시절부터 제 마음은 단 하나였습니다. 하루가 자본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부족한 제 자신에게 화가 나고,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신혼부부 청약이나 임대 주택의 문턱은 생각보다 훨씬 높고 타이트합니다. 당첨의 행운을 거머쥔 분들에게 경외심이 들 정도로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결국 결론을 내렸습니다. 예정대로 올해 말부터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시작하려 합니다. 제가 더 많이 저축하고, 더 많이 일하면 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매 순간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주거 문제에 있어서도 변화를 주기로 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머니의 역할과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해질 것이기에, 제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여자친구의 직장 근처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행복한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요즘은 신혼부부와 임산부, 다자녀 가구를 위한 수많은 혜택과 정책들이 쏟아집니다. 각 조건마다 지원의 폭과 성격이 다르기에 마치 복잡한 알고리즘을 해석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사회라는 큰 틀 안에서 정해진 규칙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겠지요.
다만, 제가 말하는 것은 무조건 잘될 거라는 식의 '낙관'이 아닙니다.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고 자원은 한정적입니다. 어쩌면 저의 생각이 구시대적이고 투박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두 사람이 서로를 신뢰하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면, 헤쳐 나가지 못할 일은 없다는 것을요. 풍족한 재화와 완벽한 환경이 갖춰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것이 행복의 전제 조건은 아닙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적용되기에 힘이 듭니다.
하루가 겪는 걱정은 타당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녀가 그 불안과 부정의 늪에 깊이 빠져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스트레스가 그녀를 갉아먹는 것을 보는 것은 제게 큰 고통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완벽한 질서를 추구하려는 저의 강박증과도 맥을 같이 할 것입니다. 부정적인 변수를 제거하고 '긍정'이라는 상수를 대화의 전제로 삼는 것, 그것이 제가 지키고 싶은 저희만의 시스템입니다.
불안을 확신으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긍정이라는 발판을 깔고 대화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저희는 비관할 시간조차 아껴 서로를 사랑하고, 당면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하는 '팀'이기 때문입니다. 풍족함보다는 단단함을, 완벽함보다는 함께함에 무게를 두며 저희는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