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이야기
A는 알코올 중독자다. 첫 음주의 기억은 희미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따라다녔던 문제다. 학창 시절 호기심으로 한 잔, 반복되는 직장생활 속 일 끝나고 두 잔, 이혼하고 세 잔, 실직되고 네 잔... 이유는 수십 가지다. 인생살이를 안주삼아 마시다 보니 어느새 술 없이는 잠들기 힘들어졌다. 맨 정신으로 깨어있으면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난다. 어쩔 땐 손도 떨린다. 술 때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순간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술을 선택한다.
알코올중독자가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첫 째, 만취상태로 길바닥에 쓰러지거나 난동을 피워 경찰이나 구급차에 실려온다. 둘째, 보다 못한 가족들이 끌고 온다. 셋째, 자신이 심각성을 느끼고 스스로 온다. 세 번째 부류는 그나마 다행이다. 첫 번째, 두 번째 경우는 난감할 때가 많다. 바지에 오줌 지리는 것은 양호한 편이다. 토사물이나 대변을 온몸에 묻히고 와서 닦아줘야 할 때도 많다. 씨 X 개 XX 욕설은 기본이다. 알코올 측정기를 불어 알코올이 측정되면 일인실로 구성된 안정실에 환자를 받는다. 폭력적인 행동이 있는 환자는 안정실 문고리를 부수거나, 인터폰을 고장내고 벽지를 뜯는 등 온갖 난동을 부린다.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아티반이나 할로페리돌 등 안정제 주사를 사용한다.
알코올 사용 장애 환자들은 술이 깨면 다른 사람 같다. 병동 생활에도 곧 잘 적응한다. 중독 재활 프로그램을 열심히 듣는 사람도 많다. 정신증 환자처럼 처방된 약을 숨기거나 위생관리가 필요한 것 도 아니다. 스스로 잘한다. 그렇게 병원에서 몇 개월 간 지내며 술로 망가진 몸도 회복하고, 신체적 금단도 사라지면 슬슬 다시 술에 대한 갈망이 시작된다. 신체적 질환이 있으면 다른 과 진료를 위해 외출이나 외박을 보내준다. 병원이나 중요한 일로 외출을 나간다고 했다가 음주하고 귀원하는 경우도 많다. 병원 밖을 나서기 전엔 '절대 안 마실 거예요' 다짐하고 나가지만, 막상 유혹 앞에 마주쳤을 때 참지 못하고 술에 손을 대는 것이다. 아예 안 들어와 미귀원으로 퇴원 처리 시키는 경우도 있다.
적법한 퇴원 절차를 걸쳐 퇴원하든, 외출이나 외박 후 미귀원으로 강제퇴원 당하든 병원 밖을 벗어난 사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금주를 유지하거나 못하거나. 높은 확률로 후자가 압도적이다. 더 이상 신체나 정신이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 되면 살기 위해 다시 병원을 찾는다. 이것이 대부분 알코올 사용 장애 환자들의 삶을 굴레다.
환자들과 이야기 나누어 보면 내면에 깊은 외로움이 도사려있다. 가족들에게는 원망의 대상이고 친구라곤 술친구들 뿐이다. 그마저도 없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인식도 안 좋다. 어디 하나 설 곳이 없다. 처음엔 이런 환자들을 보면서 고운 마음이 안 들었다. 조현병, 양극성장애 등 기타 정신증과 달리 중독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중독에 대해 공부하면서 치료진이 가져야 할 인식에 대해 되돌아보았다. 대상자 개인의 책임으로 문제를 돌리는 것은 치료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결론을 얻었고, 이젠 개개인의 잘잘못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환자의 외로움과 불안감, 자책감, 분노, 수치심 등을 들어주고 수용해 준다. 어쨌든 살기 위해 병원에 도움을 구하고, 실패해도 다시 시도해 보는 사람들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