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죽고 싶나요?
죽음을 앞둔 마지막 계절은 언제인가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겨울이 다가오면 환자들의 상태가 전반적으로 안 좋아지고 사망 환자도 많이 발생합니다. 모든 것이 움츠러드는 시기죠. 꽃도 나무도 지고 봄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그 모든 기운의 영향을 받아 사람도 움츠러드는 것일까요? 제가 죽음을 앞두었다면, 자연의 순리에 따라 다 함께 움츠러드는 시기에 가고 싶습니다. 만개한 꽃과 싱그러운 자연을 보며 삶에 열망을 가지고 싶지 않아요. 죽음의 상황을 온전히 만끽하면서 가고 싶습니다.
날씨는 어때요?
적당히 춥되, 눈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패 냄새가 덜 나고 장례식장에 찾아오는 이들의 발걸음이 위험하지 않았으면 해요.
시간은 언제인가요?
오후 7시~8시경. 퇴근은 했지만 길이 심하게 막힐 시간대도 아니고, 자려고 준비하던 때도 아닌 시각. 적당히 저녁을 먹었을 때쯤이요.
마지막 장소는 어디인가요?
일인실이 제공되는 병원이요. 죽음에 이르기 직전의 사람은 자기 의지대로 행동하려 해도 할 수 없습니다. 걸을 수 없으니 소변줄을 차고 대변은 기저귀에 해야 합니다. 음식은 콧줄로 넣어주거나 수액으로 대체되죠. 정신적, 육체적 판단을 모두 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멋있는 장소에서 죽고 싶다고 해도, 죽어가는 나를 발견한 어떤 이는 나를 병원으로 옮길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거나 법적 책임에 연루될 수 있기 때문이죠. 병원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연명 의료 중단서을 작성해놓지 않으면, 의료진은 환자에게 가능한 모든 치료를 제공해야 합니다. 보호자들도 처음에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주세요”라고 말하지만, 길어지는 투병 생활과 억지로 삶을 연명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쯤 하나둘 마음을 내려놓곤 하죠. 그렇게 보호자의 마음이 환자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환자는 죽음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충분히 슬퍼하고 고민할 수 있게 병원에서 한 달 정도 머물다가 자연스럽게 죽고 싶습니다. 병원에 가기 전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고, 순간순간 후회 없는 삶을 즐기고 싶습니다.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있을 때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삶을 사랑했다면, 마지막 순간은 온전히 타인을 위해 살아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질문 참고 :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죽고 싶나요 [죽음]문답, 지은이 : 전은정 펴낸 곳 : 문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