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확실히 기억난다. 상당히 심심하고 울적할 때 엄마가 내게 아빠가 있는 동암마을로 가보라고 하신 그날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병원 입원기간을 빼면 절반 이상의 날을 여기서 지냈을 것이다. 내게는 이제는 고향과 같은 정든 곳이다. 가끔은 내가 선뜻 심심함을 이기지 못해 여기로 오겠다 하지 않았더라면, 여기서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지 못했더라면 상당히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곳은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바다 마을이다. 신축 호텔 앞에 정박해 있는 낡은 어선들이 세월의 야속함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먼 세월이 흘러 나에게도 많은 소중한 것들이 떠나갔을 때 이곳에서의 시간을 가장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정말로 많은 경험과 배움을 겪으며 인간적인 성장을 이루었고 그렇기에 언젠가 사라질 이 보물상자에 너무나도 미련이 남는다. 남들처럼 연애도, 모임도, 단체 여행도 가지 못한 나지만 지금은 여기서의 안식과 짧았던 이곳에서의 추억만으로도 충분히 내 인생이 가치 있다고 여긴다.
붉은 등대와 쌓여있는 테트라포트, 파도소리와 바닷내음, 어부들과 어선, 그곳에서 생선을 노리는 고양이들과 그런 고양이들을 먹여주는 외국인 관광객들. 길을 따라 내륙으로 올라가면 이어지는 도로 사이로 시간이 멈춘듯한 시골집과 슬레이트 지붕 창고를 사이에 둔 골목길이 있다. 그리고 골목을 지나가면 나타나는 푸른 풀밭과 화로. 그리고 초록색 레고 블럭 같은 나만을 위한 작은 카페. 그 속에는 항상 글을 쓰고 있는 어리숙하고 불안정한 내가 있다. 가끔 지칠 때면 밖으로 나가 화로에 불을 피우며 밤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생각에 빠진다. 우리는 어디에서 태어나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 소중한 순간들이 언젠가 지나가버리더라도 저 너머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